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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발언 10월웹소식지>기획>통제적 돌봄을 넘어,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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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일시 : 2017-10-31 20:44
  • 조회 : 67



통제적 돌봄을 넘어,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작성 : 이은지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에서는 최근 몇 년 동안 IL과 젠더 포럼을 통해 독립생활의 고민을 젠더적관점으로 풀어내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올해는 탈시설을 주제로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들을 나눴습니다. 독립생활을 잘 준비하고 의존하며 살아가는 의미, 시설 밖의 삶에 대한 제한된 상상력에 대한 이야기들을 드러내었고, 비장애남성 중심의 잘사는 삶에 대한 개념과 돌봄의 개념을 깨는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발제문 및 토론문은 공감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1. 들어가며: 독립에 대한, 제한된 상상력


왜 누군가는 독립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누군가는 독립하기 어려운 사람으로 상상될까? 시설 안에서, 지역사회 안에서 자유로운 삶의 경험이 없고 지금의 일상과 다른 삶을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독립의지를 물어보는 의미는 크지 않다. 독립가능성이 있는 사람, 없는 사람으로 판단하고 상상하는 것 자체가 문제이다. 그러한 판단을 누가 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져야 한다. 또한 그러한 판단으로 매겨진 등급대로 어떤 사람은 지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지원을 받기 어려운 것은 적절하지 않다.

시설 거주 외에 다른 삶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독립이 무엇인지, 시설에서 나가서 사는 것은 어떨 거 같냐, 독립하고 싶냐, 당신이 선택해봐라’ 하는 질문들은 아주 어려운 질문이다. 선택도 책임도 연습해보지 않은 사람에게, 지금의 삶 외에 다른 모습의 삶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이 사람은 독립의지가 없기 때문에 독립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식의 이야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삶의 경험을 잘 모르기 때문이다.

다른 삶에 대한 상상이 어려운 것은, 다른 삶을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럴 수밖에 없고, 이렇게 경험이 차단되는 이유는 다른 삶의 가능성을 보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는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어떻게 살아? 하는 물음에,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생각하는 ‘잘 사는 삶’과 다른, 우리의 ‘잘 사는 모습’들이 어떤 것인지 드러내고자 한다.

이 글은 본 포럼을 위해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이하 [숨]센터)에서 진행한 장애여성 2명과의 인터뷰, 장애운동 활동가 3명과의 간담회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다. 인터뷰에 참여한 장애여성 2명은 지역사회에서 살다가 거주시설에 입소하였다. 그리고 거주시설에서 생활하다가 시설에서 나와서 지역사회에서 살고 있다. 간담회에 참여한 3명은 시설 거주 장애인의 탈시설을 지원하고, 시설에서 나온 후의 생활을 지원하고 있는 활동가들이다.




2.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기

1) 독립은 무엇일까?

독립의 사전적 의미는 ‘다른 것에 예속하거나 의존하지 아니하는 상태로 됨’, ‘독자적으로 존재함’이다. 이러한 뜻은 독립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도 맞닿아 있다. 흔히 독립이라고 하면 혼자 사는 것, 혹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고 의지하지 않는 것을 많이 상상한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든 것을 혼자서 해결 할 수는 없다. 누구나 다른 사람의 돌봄과 도움을 필요로 하고 그것을 주고받으며 살아간다. 그러므로 독립적인 삶이란 의존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의존과 돌봄을 주고받으며 그것들을 주체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에 더 가깝다.

IL운동에서는 독립과 주체성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고, 독립은 물리적으로 공간을 분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장애여성의 낮은 사회적 위치는 장애여성이 보호와 통제의 대상이 되기 쉽게 한다. 장애여성을 수동적이고 의존적인 사람으로 보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는 시선이 여전히 존재한다. 또한 남성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장애남성과 장애여성은 ‘독립에 관한 경험’이 다를 수밖에 없으며, 접근해야할 문제 또한 다르다.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2013, 장애여성공감.
예를 들어 공간의 문제만 보더라도, 비장애남성 중심의 구조에서, 동일한 공간이 주어지더라도 장애여성이 주체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물리적 공간은 비장애남성과 동일하지 않다.

시설에서 나와서 살아가는 데 시설 종사자가, 복지관 선생님이, 부모님이, 활동보조인이 등등 주변에서 지나치게 간섭을 하고 통제한다면, 물리적인 공간은 달라졌어도 그것은 거주하고 있는 곳만 달라졌을 뿐 마음대로 하지 못하는 생활의 연속일 수밖에 없다. 또한, 거주시설이라는 형태로 공동생활을 하지 않았지만, 집 안에서 의견과 요구가 존중받지 못하고, 동거인의 학대 속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숨]센터에서는 독립을 고민하면서 물리적 독립 외에 독립을 더 넓은 의미로 바라보아야 함을 이야기해왔다. 관계적인 독립, 심리적인 독립 등 공간 이외에도 독립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요소들이 있다.


<인터뷰>
“자고 싶을 때 자지 못하고, 먹고 싶을 때 먹지 못하고. 시설 원장말 들어야 하고..그렇게 3년 살았는데, 300년 살았던 것 같아요.”
“독립이란 자유, 뭘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어요.”


독립에 대해 당사자들은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공동생활을 하는 거주시설의 특성상 개인의 욕구에 따라 어떤 것을 하고, 하루를 계획하는 등의 생활을 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하고 싶은 것들을 할 수 있는 환경은 물리적으로 시설에서 나옴으로써 모두 보장될 수 있을까?



<간담회>
“저는 어느 시설에 상담하러 갔는데 (거주인이 저를) 만나지 않겠다고 하세요. 나는 여기 죽을 때까지 살거니까 너네 오지 말라고 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제가 느끼기엔 여기서 평생 사시던 분이였는데, ‘왜 너네 갑자기 와서 내쫓으려고 그러냐’ 이런 느낌이였던 것 같아요.”
“여기(시설)서 살래요, 밖(지역사회)에서 살래요? 했을 때, 독립이 무엇인지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 막막해요. 발달장애, 중증일수록 독립에 대해 말하기 어려워요. 체험을 통해 경험을 가지는 것인데 단기는 한계가 있고 여행 같은..답답하게 있다가 잠시 나와서 경험하는 것..”


<인터뷰>
“(시설에서 나오는 게 어떻겠냐고 친구한테 물어보니까 친구가) 시설에선 빈혈을 지원해줄 사람이 있는데 나와서는 없다고. 활동보조인 이야기도 했는데, 어디 나갔다오면 몸이 힘들고 그러니까.”
“독립은 생각도 못했죠. 활보, 집 없어서. 그땐 시설로 가는 게 독립이였어요. 그것이 내 살길이라고 생각하고 들어갔죠.”



시설에서 나오기 전에, 왜 지역사회에서 살아야 하는 지를 생각해보지 않았거나, 시설 거주 외의 삶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았다면 살게 될 장소가 바뀌는 것은 자유로움보다는 불안과 걱정이 클 수 있다. 시설 안에서 정해진 스케줄대로, 안전하고 안정적인 생활을 하지만, 그러한 생활을 위해 제한되고 있는 것들이 많다. 시설에서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통제되어지는 것이 많다. 그렇기때문에 다른 모습의 삶을 이야기했을 때 위의 간담회 내용처럼 나의 안락한 환경을 빼앗는 것으로 느낄 수 있다.
장애여성이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갈 것이라고 일상적으로 느낄 수 없을 때, 독립은 장애여성에겐 먼 이야기, 생각하기 어려운 것이 되어버린다. 시설에서는 장애여성의 생활을 지원해주지만, 시설 밖에 나왔을 때의 삶을 상상하기 어렵다. 또, 인터뷰의 사례처럼, 가족들로부터 떨어져 사는 선택지를 독립이라고 생각했을 때에 그 선택지의 실현은 시설에 스스로 입소하는 것이었다.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꿈꾸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장애여성은 당연하다는 말 대신 ‘어쩔 수 없는’이라는 말을 들으며, 제한된 선택지를 가지고 살아간다. 예를 들어 안정적인, 그리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에서 살아가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공간이 주어진다고 해도 독립생활자체에 대한 경험과 상상이 없다면, 그 공간에서 내가 편안하고 나를 위한 공간으로 지내기에는 어렵다.




2) 독립을 어렵게 하는 것들



① 제대로 하기 어려운 독립생활 연습

독립은 위에서 이야기 하였듯이 ‘일상적인 작은 부분에서부터 삶 전체를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나의 독립찾기, 2012, 장애여성공감
하지만 삶 전체를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에 대해 누군가는 어릴 때부터 꾸준하게, 당연하게 익히고 연습해왔지만, ‘독립의 가능성’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그 과정들을 익힐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살고 있던 환경과 다른 환경에서 적응하며 살아가는 법, 그리고 누군가가 내 일정을 정해준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은 자유롭지만 어려움과 막막함을 동반하는 일이다.
개인별로 어떤 것이 필요한지, 얼마의 기간 동안 무엇을 해야 할 지는 개개인마다 다르겠지만 탈시설 이후 연습과정이 충분히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점을 인터뷰와 간담회의 참여자들은 이야기했다.



<인터뷰>
“저는 ***에서 하고 왔잖아요. 그런데 자립주택 들어가서 똑같은 거 하려니까 또 하라고.. 그래서 전에 했는데요, 그랬는데도 또 해야 한다고..”

<간담회>
“경험을 해야 연습이 되는 건데. 그런 곳이 없잖아요. 연습을 해야 경험을 쌓고, 경험을 해야 선택을 할 수 있는데.”
“단기체험 할 수 있는 곳이 확보되면 좋겠어요. 연습기간에서 경험을 쌓는 것이 필요한데, 여기서 돌아가면(단기체험했다가 시설에서 나오지 못하면) 실패인 것처럼 이야기되고..”



무언가를 선택하고 결정하고 주체적으로 하기 위해서는, 나의 욕구를 알아야 하고, 선택지에 대한 정보를 알아야 한다. 그리고 결과를 책임질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과정이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을 위한 지원이 된다면, 그것은 장애여성 중에서도 ‘좀 더 능력이 있는..’과 같이 또 다른 배제와 가르기가 될 것이다. 독립을 하기 위한 자격으로 연습을 생각하기보다는, 준비의 과정, 혹은 경험할 수 있는 시간으로 바라본다면, 조금 더 이 시간을 폭넓게 생각하고 필요한 시간들로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것이 독립생활을 위한 연습이다’라는 틀이 너무 굳혀져 있다면, 아는 내용을 다시 들어야했던 인터뷰이의 경험처럼 내가 생각하는 독립의 의미를 찾기보다는, 타인이 바라보는 독립에 필요한 것들을 학습하는 경험이 될 것이다.

또한 몇 박 며칠의 짧은 체험은 말 그대로 ‘체험’이라서, 일상의 고민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비일상적이고 외부에 나가서 놀았던 하나의 체험, 혹은 시설에서의 일상과 비슷한데 지내는 공간만 달라진 경험이 되지 않으려면 시도하고 실패를 겪을 수 있는 만큼의 시간이 필요하다.

시설 퇴소 후에 주거마련에 있어서 기간 확대 및 통합적인 관리망을 통해 안정적 지원체계를 마련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주거공간을 마련하는 것에만 집중하고, 어떤 지역에 주거가 마련되는지, 그 공간에서 누구와 살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어떤 하루를 계획할 수 있는 지 등의 복합적 논의가 수반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장기간 시설에서 거주한 사람이 다른 형태의 집으로 이동하는 의미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실패나 개인이 적응하지 못한 것으로 바라보기 보다는 준비와 경험의 과정으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② 사회적 배제라는 외로움
특수학교설립 반대 사건, 장애여성이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듣는 선의를 가장한 불편한 관심들, 턱이 있어서 들어갈 수 없는 가게, 사고가 아닌 장애를 예방한다는 말 등등..우리 사회 곳곳에서 배제, 혐오, 차별의 사건과 표현들은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비장애인, 그리고 남성중심적으로 디자인된 사회구조 속에서 장애여성은 환영받는 사회구성원이 아니다.

<인터뷰>
“계속 나 혼자 있어요. 혼자만의 공간이 필요할 수 있어요. 식구가 많다고 외롭지 않은 건 아니에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많이 있으면 외롭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러니까 혼자가 좋아요.”


<간담회>
“언어표현이 되지 않는 중년의 발달장애여성, 이 분들이 갈 수 있는 곳은 어디인가. 복지관에서도 프로그램 거부당하고.. 이 사람들에게 ***(시설이름)만 시설이었을까? 하는 생각. 이 동네도 시설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탈시설을 한 다음에 취업을 하는 사람들이 거의 센터로 오잖아요. 그런데 왜 센터밖에 없을까. 저는 동료상담을 하면서, 동료상담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다른 방법도 있다는 말을 하지만 그 사람들입장에선 내가 동료상담가니까 그거 말고는 방법이 없어 보이는 거죠. 다양하게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뭔가 할 수 있는 걸 하면 좋겠는데..”



간담회 참여자의 사례처럼, 지역사회에 나와서도 장애여성이 지역사회에서 참여할 수 있는 곳은 제한적이고, 중증발달장애를 이유로 복지관에서도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가 센터 안에서 동료로 당사자를 만나서 상담을 하는 것은, 자립생활센터 안에서 중요한 역할이기도 하지만, 센터활동 외에 다양한 선택지를 가지기 어려운 사회 환경이 드러난다.

시설 안에서의 개인과 집단에 대한 통제가 가능한 것은 사회에서 이들에 대한 통제를 정당화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시설만의 문제가 아니라, 끊임없이 ‘정상’과 ‘비정상’을 나눔으로써 권력이 분배되지 않는 현 사회의 문제를 비판하며, 시설을 통하여 비정상 범주가 강화되고 있는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

지역사회 안에서도 보호와 돌봄을 이유로 식사부터 귀가시간까지 주변인에 의해 통제를 받는 장애여성이 많다. 장애여성의 삶이 이해받지 못하고, 사회 안에서 외로움을 느낄 수밖에 없는 환경들, 시설에서 나와서도 시설의 문제라고 이야기되는 배제와 통제 등의 특성은 사회의 모습이다.



3) 서로를 돕는 경험들

돌봄에 대한 가족중심적인 사고 속에서 성별, 가족 안의 위치에 따른 역할은 공고하다. 남성인 가장에게는 경제력, 결단 등이 기대되고 듬직하고 의지할 수 있는 아빠의 이미지로 그려진다. 엄마, 딸, 며느리에겐 집안을 가꾸는 것부터 사람을 보살피는 일까지 여러 종류의 돌봄이 모성애, 따뜻함, 부드러움 등으로 포장된다. 정상가족규범의 표준화된 가족의 모습에서는 부족함이 없고 안락하고 따뜻한 생활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이 있고, 그렇기 때문에 정상가족의 구성원에 해당하지 않는 사람들은, 다른 구성원의 역할을 채워야하는 몇 배의 어려움이 있는 것처럼 사회에서 이야기한다. 비혼모에게는 아빠의 역할을 채우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동성커플에겐 기존의 성규범대로 역할을 수행할 수 없으니 남자며느리 여자사위가 말이 되냐는 등으로 가족이라는 인정을 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회 속에서 장애인은 돌봄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장애인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사람이라는 생각과, 그렇기 때문에 보호받아야 하는 존재로 이야기되는 것이 흔하다. 보호에는 통제가 따라오고, 장애인이 서로 도움을 주고 받고 각자의 삶을 책임지는 주체로 살아간다는 생각은 현실과 동떨어진 것처럼 여겨진다.



<간담회>
“나가시게 되면 책임을, 권리보장은 내 책임이라고 말을 많이 해요.”

“센터에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을 꿈꿨어요. 멘토를 연결해주고, 탈시설 선배로써 잘 살고 있는 것이구나 라는 자립의 모습..”



장애인들은 자신의 삶을 책임을 지지 못하는 사람(스스로든, 서로를 책임지는 것이든)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고, 그러한 편견들이 작용하여 독립에 대해서도 독립을 할 수 없는,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고 상정되기도 한다. 하지만, 책임에 대해 지나치게 비장애인에 비해 많은 요구를 받기도 하고, 스스로 혼자 무언가를 하지 못하면 독립해서 살아갈 능력이 없는 것처럼 이야기된다.


간담회와 인터뷰를 통해 만난 분들은 탈시설 장애인의 자조모임을 통해 같이 놀러가고 서로 멘토와 멘티 관계로 고민을 주고 받았다. 또한, 시설 안과 자립주택 룸메이트 등 장애인끼리 서로의 활동보조를 하였다.



<인터뷰>
“장애인이 도움을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라고들 편견이 있는데, 도움을 주고 있는 것도 많다고 생각해요. A님은 시설에 있는 장애인이 탈시설 할 수 있게 ____원을 모아서 도와주시기도 했고.”

“내가 먹고 싶은 거 안먹고, 가고 싶은 곳 안가고. 눈으로 보고 안사고 살았어요. 나같이 이렇게, 같이 살았으면 좋겠어요. 똑같은 사람인데 어떤 사람은 시설에 있고, 어떤 사람은 행복하게 살고 있고. 내가 한 사람이라도 데리고 나오려는 생각으로..”



사례들을 통해 장애인들이 장애인을 돌보는 경험에 대해 볼 수 있는데, 누군가를 통제하면서 보조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독립을 지원하고 지지하기 위한 도움들을 만나볼 수 있다. 가난한 장애여성이 큰돈을 후원할 거라고 사회에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 많은 사람이 많은 돈을 후원하는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경험들을 다른 사람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조금씩 오랜 기간 모아서 마음과 물질로 도움을 준다.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사람이여서 큰 금액의 후원금으로 탈시설을 위해서 사용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가 없기 때문에 누군가의 활동보조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가능한 만큼의 힘으로 서로 돕는 관계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 안에서 나와 맞지 않는 멘토, 룸메이트와 갈등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어려움을 이야기 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갈등 속에서 누군가가 조율을 해주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법으로 그 갈등을 다르게 전환할지 다른 관계의 경험 속에서 이루어진다.


어떤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 행복하고, 불행하다고 단정 지을 수 없다. 정해진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과 함께 살지 않아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정해진 역할대로 수행하도록 강요하는 사회 환경이 불행을 만든다.


통제적인 규범 안에서는 돌봄을 하는 사람도, 돌봄을 받는 사람도 통제 받을 수밖에 없다. 돌봄을 하는 사람의 역할도, 돌봄의 내용도 사회에서 정해져있고, 그 정해진 것에 해당하는 돌봄만 인정받기 때문이다. 통제를 깨뜨려야 한다. 그것이 서로 돕는 삶이다.



4) 의존의 공백을 함께 채워가기


살아가면서 누군가와 도움을 주고 받으며 생활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때론 서로에게 의지하고 의존을 하게 된다. 하지만 독립과 의존을 반대의 개념으로 보고, 무언가를 혼자 해내지 못하면,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처럼 이야기한다. 예를 들어 ‘혼자서 밥은 할 수 있어?’ 와 같은 물음에 놓이게 된다. 비장애남성이 스스로 밥을 하지 못하더라도, 엄마나 배우자가 해주는 밥을 먹거나, 밥을 사먹는 것을 보고 독립적이지 못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장애여성이 장애특성상 하기 어려울 때, 그것을 하지 못하면 안되는 것처럼 이야기되기도 하며, 의존을 하면 사회에서는 나약하고 주체적이지 않은 것으로 본다.


수전 웬델은 ‘거부당한 몸’에서 사람들이 몸을 통제할 수 있다는 환상을 받아들이는 이유를, 거부당하는 몸인 질병, 장애 등을 예방할 수 있다는 믿음에 기인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몸은 완벽히 통제할 수 없고, 실패의 경험도 인정하며 함께 해야 극복서사가 아니라 진짜 내 몸을 받아들일 수 있다. 독립생활도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 실패를 경험하기도 하고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특정한 관계 안에서는 주체적인 사람이, 다른 관계에선 주체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복합적인 고려를 하지 않고 통제를 통해 만들어 갈 수 있는 특정 모델을 독립으로 생각한다면, 독립에 대한 상상력은 제한될 수밖에 없다.



<간담회>
“내가 너무 하고 싶은데 할 수 없을 때 대안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해요. 저는 항상 나는 잘 살고 있는 걸까, 이 생각을 하는데. 이 분에게 잘 산다는 건 뭘까 궁금하기도 하고...”

“안전에 대해 공동으로 나눌 수 있는 부분이 있을까. 안전은 통제적인 방식으로 이어지기도 하는데, 그러지 않고 존중하는 방식으로 할 수 있을까 고민되요.”

<인터뷰>
“ 사람들이 장애인은 혼자 살 수 없어서 독립할 수 없다고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 지 듣고 싶어요.”
“ 잘 살고 있잖아요, 지금. 그게 독립이야.”





삶에 책임을 지는 것은 혼자만의 몫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의사표현이 명확하지 않고, 스스로의 욕구와 결정이 뚜렷하지 않으며 스스로를 돌보고 챙기기 어렵다고 느껴지는 사람도 있다. 발달장애인 지원 현장에서 이러한 고민은 더 심화되고 있기도 하고, 어디까지가 당사자의 선택과 결정을 존중하는 것이며, 어디부터는 개입이 필요한가 하는 현장의 고민도 있다. 스스로 뭔가를 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라는 꼬리표를 벗어나, 어려울 때 그것이 그 사람만의 몫이 아니어야 한다. 체험홈 입주자에 대한 어려운 사례가 체험홈 담당자만의 고민이 아니게, 책임지는 경험이 많지 않은 사람이 혼자 모든 것을 책임져야하는 것이 아니도록 그 공백과 중간의 역할들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3. 마치며: 각자의 잘 사는 삶을 위해

‘독립생활지원’이 더 독립생활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어떤 것이 되지 않아야 한다. 누구나 당연하게 독립을 꿈꿀 수 있고, 원하면 누구에게나 독립을 위한 지원이 보장되어야 한다.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기 어려운 사람들로 상상력이 제한되는 것에는, 독립적인 주체로 살아가기 위한 현실적인 기반들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도 영향이 있을 것이다. 제도로 모든 것이 다 보장되는 것은 아니지만, 독립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상상력이 넓어진다면 독립생활에 대한 지원의 방향도 달라질 것이다. ‘몇 명이 시설에서 나왔냐’, ‘화폐단위를 모르던 사람이 화폐단위 알게되서 돈 계산 잘하게 되었다.’ 이런 것들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어려운 것은 다른 사람이 채워줄 수 있는 것, 그런 관계를 지역사회 안에서 만들어 갈 수 있는 것이 지역 안에서 함께 사는 것이다. A라는 사람을 B처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독립생활 지원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 잘 살고 있는 삶이라는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것, 그것이 독립이다.


그러기 위해서 고정된 생각들에 균열을 내는 우리의 활동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 사회의 구성원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고민들을 멈추지 않아야하고, 서로를 돌보는 책임감을 가지고 잘 의존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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