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이유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 출범에 대한 반차별공동행동의 입장

[논평]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제정 추진을 환영할 수만은 없는 이유

–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 출범을 바라보며

 

법무부는 지난 4월 9일 법무부 법무자문위원회 산하에 학계, 관련단체, 관련부처 등으로 구성된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를 출범했다.

법무부는 이번 특별분과위원회 운영을 통해 ▷ 성별, 인종, 장애 등 차별금지 사유별로 피해사례, 국내외 입법례 및 판례, 현행 법제도의 타당성 및 실효성 등을 전반적으로 검토하고, ▷ 일반법으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는 방안과 차별금지 관련 개별법의 체계적 통일성을 확보하는 방안 등을 모색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차별금지법 특별분과위원회는 오는 4월부터 10월까지 7개월에 걸쳐 운영될 예정이며, ▷ 차별금지 사유, ▷ 차별 유형, ▷ 차별의 정당화 사유, ▷ 차별 피해에 대한 구제수단 등을 순차적으로 검토하고, 차별금지법 제정 여부와 함께 국내 차별 관련 개별법의 체계적 통일성 확보 방안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할 계획이라고 밝히고 있다.

차별금지법은 헌법이 규정하고 있는 인간의 존엄과 평등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이다. 차별금지법이 인간의 기본권을 박탈당할 위협에 노출되어 있는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를 보호.구제하고 실제로 차별적인 조건을 시정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법적 근거라는 점에서, 차별금지법이 반드시 제정되어야 한다는 점은 너무나 명확하다.

하지만 2007년~2008년 차별금지법이 국회에 발의되면서 7개 차별금지사유 항목의 삭제, 차별구제절차조항 제외 등 논쟁이 되었던 사안들에 대해 아무런 의견 수렴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가운데, 이번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추진을 바라보며 2007년의 ‘차별적인 누더기 차별금지법 제정 사태’가 떠오르는 것은 그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법무부는 2007년에 차별금지법안을 제출 당시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범죄 및 보호처분 경력, 성적 지향, 학력, 병력(病歷) 7개의 항목을 차별사유에서 삭제함으로써 특정한 종류의 차별을 용인 혹은 묵인하고 있다는 강한 비난을 받은 바 있다. 차별금지법이 법적인 절차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차별영역들을 구체화하고 실제적인 구제방안을 담을 수 있는 기본법을 제정한다는 취지를 가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사회적으로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기존 제도에서 보호되지 못하는 차별영역들을 의도적으로 삭제함으로써 그 입법취지를 스스로 위반하고 훼손한 전력이 있는 것이다.

‘차별적인 누더기 차별금지법 제정 사태’로부터 2년이 훌쩍 지난 현 시점에서 법무부가 다시금 차별금지법을 추진하고자 한다면, 제정의 취지뿐만 아니라 실제 법안의 내용은 2007년의 경험에 대한 평가와 지난 과오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성찰에서 출발해야 하고, 그 결과들을 반영할 수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지난 입법 과정에서 삭제되었던 조항에 대한 어떠한 평가나 의견 개진도 없이 새로운 법안을 준비하는 현재 법무부의 행보는 심히 우려스러울 따름이다.

특히 삭제된 차별사유 중에서 가장 첨예한 논쟁이 되었던 ‘성적지향’은 이번 입법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를 것이 분명하다. 이는 지난 경험을 통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상황이다. 차별을 조장하는 세력의 협박과 압박 논리에 대해 법무부가 어떠한 입장과 태도로 입법 과정을 추진하는가의 문제는 2007년과 똑같은 상황을 그대로 반복하는 결과가 될 것인가 아닌가를 판가름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2007년 당시 ‘차별적인 누더기 차별금지법 제정 사태’가 벌어졌던 이유는 전문적인 논의와 검토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혹은 사회적 합의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법무부 스스로가 사회적 편견과 일부 보수 기독교계, 재계의 논리에 편승해 애초의 입법 취지를 위반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명확하게 인지해야만 한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어떠한 평가나 성찰 없이 또다시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다. 그 과정도 무척이나 일방적이고 폐쇄적이다. 특별분과위원회는 우리 사회의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해왔던 차별의 당사자들과 반차별운동들은 모두 배제한 채 소위 ‘연구자’들로만 대부분 구성하고 있고, 법무부가 발표한 일정과 논의 과정에서도 차별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반영하고자 하는 계획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차별을 금지하겠다는 법안을 제대로 만들 수 있을까. 법무부는 2007년과는 다른 어떤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고 스스로 말할 수 있나.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법무부가 헌법 상 평등의 원칙을 상기하며 2007년 차별금지법안에서의 7개 차별사유 삭제에 대한 현재 법무부의 입장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할 것을 요구한다. 이 지점이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의 출발점이 될 것이다. 법무부가 2007년의 과오를 또다시 반복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10년 4월 26일

반차별공동행동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민주노동당 성소수자위원회, 언니네트워크, 연분홍치마, 청소년인권행동 아수나로, 인권운동사랑방, 인권문화실천모임 맥놀이, 장애여성공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민우회, 향린교회 여성인권소모임)

 

 

** 반차별 공동행동 소개

반차별공동행동은 현재 12개에 달하는 여러 인권운동단체와 개인들이 모여 ‘반차별 운동’의 내용을 모색하고, 이것을 새로운 액션으로 펼쳐나가는 연대체입니다.
기존에 각자의 영역에서 개별적으로 진행되었던 운동의 주제와 방식이 교차되고 변화하며, ‘새로운 연대’가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반차별 운동’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처음 반차별공동행동은 2007년 9월 법무부의 차별금지법 입법예고에 대한 대응 활동으로 시작되었고(2007. 11. 28. 반차별공동행동(준) 결성), 현재까지 차별금지법 입법투쟁 이후, ‘반차별 운동’의 새로운 내용과 형식을 모색하는 도전적 시도를 계속해오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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