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 없는 ‘국정 性교육 교과서’

답 없는 '국정 性교육 교과서'
 
나영정 정책연구원
 
 
1.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라는 괴물의 출현
 
2015년 3월, 시도교육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한 교육부의 학교성교육 표준안 전달연수용 자료는 충격과 경악을 금치 못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2년간 6억의 예산을 통해서 만들어진,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도대체 어떠한 과정으로 만들어졌는지 알 수 없었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대략적인 진행의 얼개를 볼 수 있었지만 이 자료를 통해서는 왜 성교육 표준안이 현재 성교육 수준에서 20년 이상 퇴행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졌는지, 왜 그동안 학교 현장에서 오랫동안 성교육을 해왔던 청소년성문화센터나 성폭력상담소, 여성단체 등은 이 과정에서 완벽하게 배제되어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없다.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탄생하기 까지>
 
1. 2013년 5월 30일, 국가시책사업(학생건강안전강화사업)을 확정하여 교부·통지하면서 시작
2. 학생 성교육 강화를 위해 1) 성교육의 정책방향을 수립하고, 2) 프로젝트형 교육자료를 개발 및 담당자 연수 추진, 3) 현행 유·초·증등교육과정, 관련 법령 등 분석 결과에 근거한 학생 수준별 가이드라인 및 성교육 과정 개발 연구를 제시
3. 눈에 띄는 것은 이러한 사업이 UN여성차별철폐협약 이행과제(성교육 의무과정 보장, 성 및 재생산 관련 건강권에 관한 연령·수준별 프로그램 도입 등)에 근거한다는 점을 밝힘
4. 경기도교육청이 이 사업의 실행을 맡아서 가톨릭대학교 의과대학과 '학생 성교육 강화 연구 용역' 계약을 체결
5. 2013년 11월 8일 '정책연구 결과 중간 보고회'를 교육부 장우삼 과장, 조명연 사무관, 민혜영 연구사, 경기도교육청의 전은경 장학사가 참석한 가운데 실시.
6. 2014년 1월 16일 시도 교육(지원)청 및 학교 성교육 담당자를 대상으로 공청회 개최. 정혜선 연구책임자(가톨릭대학교 보건대학원 교수), 이규은 공동연구원(동서울대학교 교양과 교수)이 발표하고 여성계, 청소년 성폭력 상담가, 보건교사회, 유아교육학자, 학부모 등이 토론
7. 2014년 2월 '학생 성교육 강화 연구용역 최종 결과 보고서' 발간
8. 2014년 3월 '국가 수준의 학교성교육 표준안(안)'에 대한 검토의견을 수렴하겠다는 공문을 시도교육청 등에 내리고 3월 20일에는 관련 전문가 검토회의를 개최
9. 2015년 1월에 국가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운영모형, 교육자료를 개발완료하고 전달연수를 실시한다고 공지한 이후 3월까지 시도별로 연수실시 결과를 제출하도록 지시
 
1) 1) http://www.jngyed.go.kr/newhome/board/board.php?b_id=edu12&page=1&w_id=111 
광양교육지원청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 전달연수 자료 
 
정리하면, 교육부는 2013년 '학생 성교육 강화 연구 용역'을 진행하였고, 2014년 초 공청회를 통해 최종보고서를 확정한 후 관련 전문가 검토회의 등을 진행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최종보고서의 내용을 구현하는 운영모형과 교육자료를 개발하여 2015년 1월 발표하고 학교 현장에 보급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매우 문제적이고 의문스러운 대목이 곳곳에서 발견된다. 그나마 정보공개청구를 통해서 흐름을 파악했지만 구체적인 내용은 전혀 알 수 없다.
먼저 2014년 1월에 열린 공청회에 여성계, 청소년 성폭력 상담가, 보건교사회, 유아교육학자, 학부모 등이 참석하여 의견을 제시했다고 교육부는 밝히고 있으나 누가 어떤 내용의 의견을 제시하였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그러한 의견수렴을 거쳐서 2014년 2월 발간된 최종보고서에는 성교육 표준안의 내용을 포괄성에 따라 1, 2, 3안으로 제시하고, 가장 보수적이고 협소한 내용으로 구성된 3안으로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만들어졌다는 것을 밝힌다. 연구진은 3안의 장점을 "사회적 갈등 문제 없이 중립적인 관점에서 성교육을 선택하는 것이 일선학교에서 빠른 시간에 성교육을 안착시키는 데 도움이 된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최종보고서에서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쟁점사항을 처리 결과를 제시하였는데 '동성애', '성정체성' 항목을 삭제하라고 요구한 보수단체 28개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이들의 주장을 일방적으로 수용하였다(p354). 이 외에도 성교육, 다양한 가족, 성폭력 예방 등에 대한 보수적이고 청소년의 건강과 역량을 오히려 위험에 빠트리는 의견에 대해서 연구진이 아무런 기준 없이 수용하고 타협하는 결과물을 내놓았다.
 
2014년 3월부터 시작된 전문가 검토회의에는 참석대상이 학교성교육 및 교육과정 전문가들로 되어 있으나 관련 전문가가 누구인지 역시 드러나지 않는다. 또한 4월 15일까지는 관련단체의 의견을 별도로 수렴한 것으로 되어있으나 어떤 단체의 어떤 의견을 수렴하여 반영하였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 2014년 3월 26일 한국교회언론회는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이 성행위를 권장한다"는 논평을 내어 "양성평등이 마르크스 페미니즘의 색채를 띠고 있는 용어이며, 동성애, 성해방, 성일탈에 대한 전제조건을 깔고 있는데 그러한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 등을 주장하였다. 이 시기에 성교육 표준안에 대한 논평을 낸 유일한 단체다.
 
문제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교육부가 성과 성교육에 관한 비과학적이고 혐오와 편견에 기반한 의견을 수용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한 의견 수렴의 과정이 전혀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당사자와 성교육 전문가의 의견이 아예 반영될 기회조차 없었다는 점이다.
2015년 2월부터 본격화된 전달연수를 통해서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이 성교육 전문가, 여성단체, 성소수자 단체 등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구지역에서 학교 성교육 강사로 참여하고 있던 단체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대구지역성교육협의회는 2015년 3월 3일부터 대응회의를 시작하였고,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2015년 4월 13일 인권단체 교육단체 등과 함께 성소수자 차별적인 학교 성교육 표준안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한 국제인권단체 Human Rights Watch는 5월 3일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을 인정하는 성교육의 필요'를 역설하는 공식 서한을 제출하기도 하였다.
 
2) 2) 학생 성교육 강화 연구용역 최종 결과 보고서 p353
2 )3) https://www.hrw.org/node/269834
 
대구지역성교육협의회,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인권친화적 학교+너머 운동본부, 탁틴내일,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청소년성문화센터협의회 등을 중심으로 2015년 교육부 국가 수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 철회를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가 구성되어 8월 24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각계에서 제출한 의견서의 취지를 공유하고 교육부에 학교 성교육 표준안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러한 비판의 움직임과 언론 이슈화를 의식하여 자문회의를 열고 연대회의 소속의 몇 단체에게 참석을 요청하였으나, 연대회의 소속 단체들은 이를 거부하였다. 연대회의가 거부한 이유는 자문회의 구성원에 길원평(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실행이사), 김광규(차세대바로세우기학부모연합 사무국장), 이경자(공교육살리기학부모연합 상임대표), 김지연(성과학연구협회 사무국장) 등이 포함되어 있는 등 반성소수자 활동, 학생인권조례 반대 활동을 하는 대표적인 단체를 자문의 대상으로 삼는 등 제대로 된 자문회의 진행을 전혀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2. 상상을 초월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연대회의는 그동안 여성인권, 청소년성교육, 성소수자인권, 장애인권의 관점으로 유아, 초등, 중등, 고등학생을 위한 방대한 자료로 만들어진 교육부의 성교육 표준안을 비판적으로 분석하여 의견서를 제출하고 기자간담회를 통해 발표하고, 요약된 자료를 온라인에 게시하였다. (관련 자료)
 
의견서를 통해서 주되게 비판하는 것은 성교육 표준안이 비과학적이고 성차별적 편견에 기반해서 작성되었으며 청소년에게 금욕을 강요하고 소수자들을 배제하는 시대착오적이고 인권침해적인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이다. 
 
 
또한 학교 성교육 표준안 교사용 지도서의 내용 분석을 통해서, 1) 성교육 목적과 방향의 명확한 관점이 없고 2) 10대를 성적 존재로 인정하지 않으며 3) 금욕을 강조함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을 다루지 못하고 있고 4) 성별고정관념 강화, 성소수자 배제 등 성차별과 인권침해를 조장하며 5) 발달단계 수준에 맞지 않는 교육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고 6) 결혼에 대한 강조를 통해 부모되기, 출산 및 자녀양육만을 강조하고 7) 잘못된 성폭력 예방 교육을 제시하며 8) 다양한 가족관계 배제하고 9) 생물학적 성지식에 대한 과도한 일반화가 있고 10) 피임과 성매개 감염에 대해 제한적 설명이 있는 등의 문제를 지적하였다.(한국성폭력상담소/한국여성의전화, 아하!청소년성문화센터 의견서 등)
 
이러한 내용은 한국정부가 국제적으로 비준한 아동권리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등을 위반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지탄받아야 한다. 아동권리협약 등은 성교육이 다양성과 포괄성의 가치를 수용하여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차별을 배격하고 피임이나 성병 등 성행동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안에 대해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아동과 청소년의 권리와 건강을 증진할 것을 권고하고 있기 때문이다.(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의견서 등)
 
또한 장애학생에 대한 이해나 고려도 전혀 없는 상황이기 때문에 1) 특수교육대상학생의 통합성교육에 대한 이해가 부재하며 2) 이성애주의에 기반하여 결혼과 부모 되기를 '정상적인' 과정으로 제시하면서 이러한 문화와 제도 속에 존재하는 장애와 관련된 차별이나 다양성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으며 3) 성폭력 예방에서 피해자 유발론은 장애학생에게 특별히 해악이 크다.(탁틴내일 의견서 등)
 
 
 
3. 의도와 과정, 내용을 종합해봤을 때 폐기만이 답이다.
 
교육부는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도입 배경을 "학생들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학생들이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정보를 통해 바람직한 성가치관과 성행동을 할 수 있도록 성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성가치관과 성규범, 성행동에 대한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성적인 통제 능력을 길러 다양한 성문제로부터 벗어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청소년에게 보수적 금욕만을 가르침으로서 청소년의 성을 통제하고 성문제를 일으키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잘못됐을 뿐만 아니라 가능하지도 않은 목표를 세우고 이것을 구현하는 "국정 성교육 교과서"를 만들어 전국의 모든 학교에게 지키라고 강요하고, 감시하고 있다. 교육부는 각계에서 비판을 제기하자 많이 지적된 삽화를 삭제하고 표현을 고치는 등 수정과정에 있다고 하지만 기술적인 수준으로 다듬는다고 해서 학교 성교육 표준안의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교육부는 학생들의 건강과 행복한 삶에 관심이 없다. 교육부의 학교 성교육 표준안은 청소년에게 몸, 성적 건강, 성적 욕구, 성정체성, 성적 관계 등과 관련된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고 청소년이 힘을 가질 수 있도록 지지하는 역할은커녕,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편견과 차별을 조장하여 결국 학생들을 위험에 처하게 할 우려가 있다. 국가가 학교라는 장치를 이용해서 보수적인 성규범을 설파하고 성을 통제하겠다는 일그러진 욕망을 제발 버리기 바란다. 국민들에게 그런 욕망을 품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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