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나를 끌어내다. (1기 장애여성학교 글쓰기반 문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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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를 끌어내다. 

– 참새

 

  거친 바다위에 위태롭게 때론 조심스럽게 조각배 하나를 부여잡고 기를 쓰고 있었다.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인지 낯설기만 하고 나의 실수 하나가 깊은 바다로 떨어질 것 같아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해야만 하는 것인지 어디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두려움도 컸다.
장애인 운동판에 나온 나의 모습은 왜소하고, 예쁘장하고, 카랑한 목소리만 있는 장애여성이었다. 
  
  장애운동을 오래 해왔다는 장애남성 활동가들은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운동용어들을 마구 사용하고 있었고, 또한 말이나 행동도 거칠었다. 그리고 그들만의 경험으로 이루어진 친화력은 내가 공유할 것이 없는 어색함과 소외감이 있었다. 무엇보다 장애운동에 생소하게 등장한 장애여성운동과 언제나 문제제기만 까칠하고 거침없이 해대는 장애여성공감의 대표라는 나의 존재는 모든 남성 활동가들이 부담스러워했다.

  그러나 장애운동의 투쟁현장의 척박함은 장애여성조직인 장애여성공감이 연대로서 소중해서 부담감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은 과연 내가 장애운동판에서 어떤 활동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 상당한 고민을 가지게 되었다. 남성문화 중심으로 구조화 된 장애운동 속에서 장애여성으로서 정보도 경험도 체력적인 힘도, 실무력도 없는 내가 이러한 상황을 견디어내기가 벅찼다. 구호하나 외치기가 힘들고 선동발언은 더 더욱 할 수 없는 것이었다. 마이크잡기가 두렵기만 했다.

 
  그런데 그 분은 내가 모르는 나를 발견하고 있었다. 

  2002년 미국연수로 자립생활 운동을 알고 온 박경석대표는 장애인이동권투쟁을 시작하면서 장애여성공감에 이동권연대공동대표를 제안해 왔다. 이유는 앞으로 우리나라 장애운동에서 중증장애인 중심운동이 되어야 하고, 특히 장애여성이 중심이 되는 운동이 되려면 내가 이동권연대공동대표가 되어야 하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독려하였다. 장애여성공감에서는 남성 힘의 중심 투쟁운동방식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었기에 이 제안을 받을 것인가를 심각하게 논의를 하였다. 박대표는 끈질기게 공감을 그리고 나를 설득하였다. 함께하면 된다고, 무엇보다 ‘박영희대표님은 충분히 장애인 활동가로서 자질이 있습니다. 저는 끝까지 옆에 있는 동지가 되겠습니다.’라고 했다. 내가 얼마나 겁이 많은지… 내가 얼마나 나약한지… 두려움이 먼저여서 자신이 없었다. 그런데 장애여성공감의 상황은 대외적인 활동이 필요한 시점이었고 나를 인정해주는 그 분의 설득이 나를 움직였다.

  결국 2002년 7월 ‘장애인이동권쟁취를위한연대회의’의 공동대표를 맡게 되면서 나는 변화 되어갔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 무대 위에서, 경찰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소리를 질러가며 사람들을 선동하였다. 그리고 경찰과 공무원들과 용역깡패들과 시민들과 언론과 투쟁을 하였고, 끌려도 가고, 연행도 되고, 욕도 먹고, 삭발도 하고, 땅을 기어보기도 하고……. 

  세상과 투쟁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무엇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면, 누가 권해서가 아니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었다. 결코 후회 한 번 없었다.
나는 점점 거대한 장애인에 대한 차별이라는 괴물과 싸우지 않으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가고 있었다. 내 안에서는 나 스스로 놀라운 나의 모습들을 발견했다. 질기고 강한 나의 모습을….

  나의 삶은 많은 고마운 사람들의 길 위를 밟으며 왔다.

  나의 부족함을 용서하고,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채워주면서 나의 삶을 끌어주는 진심으로 고마운 분들 때문에 여기까지 왔다. 그 분들 한 분 한 분이 다 기억난다. 가장 필요한 순간에 계셔주셔서 잊을 수가 없다.

  이번에는 박경석대표님을 기억하고 싶다.

  장애활동가로서의 나의 가능성을 인정해 주었고, 장애운동이 중증장애인 중심이어야 한다는 통찰력을 주었고, 많은 투쟁현장에서 또 같은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그래서 함께 기뻐할 수 있는 공감, 그리고 항상 변함없이 나의 운동 동지로 있어 주시는 그 분에게 진심으로 감사 한다.
넓은 시야를 가지게 하였고 많은 경험을 할 수 있게 해 주며 이루어내는 기쁨을 가진 삶을 살 수 있게 해준 그 분께 감사를 드린다.

  진심으로 장애운동에 대한 그 분의 헌신에 존경을 드린다.  

※ 1기 장애여성학교 글쓰기반 문집 (글쓰기를 통한 행복한 추억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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