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정기공연 그리고 결성 8년만의 창단식

여섯 번째 정기공연 그리고 결성 8년만의 창단식

두려운 걱정보단 설레는 도전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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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 이진희

2002년 처음으로 공연을 해보겠다고 모였습니다. 장애여성 ‘난장’ 문화제에서 했던 작은 규모의 퍼포먼스였는데, 네 명의 장애여성이 안테나를 꽂은 모자를 쓰고, 통제당하는 장애여성의 일상을 상징적으로 표현했습니다. 그 느낌을 잊지 못했던 장애여성들은 연극을 해보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던 이야기는 참신한 소재가 되었고, 정상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무대에서 외면당했던 우리의 몸은 새로운 움직임을 만들어 냈습니다. 

2003년 첫 정기공연. 무대도 없고, 조명도 열악하고, 공연을 올리기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었습니다. 4개월의 긴 연습 기간 동안 몸이 힘들어지고 서로 마음을 다치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장애여성의 이야기를 꼭 보여주고 싶어서, 연극이 좋아서……. 그렇게 서로 싸우고 기대고, 버티며 첫 무대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2004년, 2005년, 2006년. 더운 여름 시작해 긴 워크샵을 통해 만들어지는 춤추는 허리(이하 춤허리)의 정기공연은 매년 연말 무대에 올라갔습니다. 장애여성의 독립, 폭력, 섹슈얼리티 등 누구도 들려주지 않았지만 장애여성의 삶과 맞닿아 있는 진지한 주제들은 배우들의 서로 다른 움직임과 느린 발음을 타고, 하지만 특유의 유쾌한 진정성을 잃지 않고 관객과 만났습니다.

2008년에는 1기 장애여성 연극 전문아카데미를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료증이었지만, 매해 새로운 장애여성이 끊이지 않고 모였고, 고전희곡 읽기부터 안무 연습, 연기 실습까지 하나하나 단계를 밟아가며 올해로 3기를 맞이합니다.

2009년에는 장애인 생활시설의 장애여성들과 함께하는 연극 워크샵이라는 의미 있는 도전도 해보았습니다. 생활시설이든 직업학교든 대다수의 장애인들은 중/장기 공동생활의 경험이 있으며 춤허리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파워풀한 독립을 위하여’를 주제로 사전준비부터 8개월간 총 15회라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아직은 부족함이 많은 연극 워크샵이었지만 연극을 통해 만나고 소통하고, 서로 변화해가는 과정을 배웠습니다.

2010년 여섯 번째 준비하는 정기공연. 결성된 지 8년째인데 정기공연 횟수로 2년이 모자랍니다. 2007년에는 공연 지원금을 받지 못해 올릴 수 없었고, 2009년은 내부역량 강화를 위해 한 해 공연을 쉬었습니다. 올해 공연은 장애여성의 독립적인 삶을 주제로 한 <거북이 라디오>입니다.

독립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흔히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오직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는 것을 독립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사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이든 보이지 않든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서로에게 기대고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음을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사람은 독립했다고 말하고, 어떤 사람은 독립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일까요? 만약 중증장애인들이 독립생활을 실현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적 제도와 시스템이 갖추어진다면 장애여성들도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장애인의 문제가 곧 장애여성의 문제가 될 수 없고, 독립생활 안에서도 장애여성의 경험은 다릅니다. 가족 안에서는 늘 독립적이지 못한 존재가 되고, 혼자서 살아가도 독립적인 삶은 늘 위협받습니다. 부족한 사회적 지원과 관계망 속에서 장애여성의 독립이 실현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러나 장애여성은 오늘도 독립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삶에 주체가 되어 원하는 삶을 계획하고 선택하고 결정할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도 독립을 노래하고 춤을 춥니다.

당신은 독립적으로 살고 있나요? 당신과 나는 무엇이 닮아 있고 무엇이 다른가요? 단지 물리적인 독립만이 아니라 장애여성의 삶의 경험 속에서 고민해 왔던, 미묘하고 복잡한 심리적인 갈등들, 그리고 내가 꿈꾸는 독립적인 삶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 놓고 모두에게 말을 걸고자 합니다. 장애인으로 통칭되는 독립 이야기가 아니라 장애여성의 경험을 기반으로 들려주는 우리의 몸짓에 이제 사회는 다른 방식의 대답을 내놓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는 여느 해의 춤허리 공연이 그러했던 것처럼 배우들의 경험을 토대로 엮어졌습니다. 스스로의 이야기를 내어 놓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 용기와 무대에서의 열정을 여러분은 확인하실 수 있을 겁니다.

올해는 특별히 8년 만에 춤허리의 창단식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공연 주제처럼 극단 <춤추는 허리>도 독립적인 삶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것이지요. 우리의 이야기를 어떻게 하면 잘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로 출발한 춤허리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우리 스스로 공연을 만들 수 있을 것인가를 거쳐 왔습니다. 그리고 연극을 통해 세상과 사람들을 만나는 작업에 대한 고민을 거쳐 이제는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극단으로서 더 많은 장애여성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창단을 알리는 행사를 준비하며 많은 사람들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기꺼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는데 주저하지 않았으며, 무대 위에 당당히 섰던 용감한 장애여성 배우들. 또 자신의 창작열정으로 춤허리에 불을 지펴주었던 연출가, 작가 등 많은 스탭분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공연을 올릴 수 있도록 지원해주는 공감의 활동가와 자원활동가 분들. 그리고 공연을 보러 와주시는 관객 여러분들. 모두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앞으로 사회적 기업이 되고, 춤추는 허리가 독립적인 조직의 형태를 갖추게 되면 또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고민과 갈등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함께 가는 것, 더딘 것이 우리의 효율이라는 춤허리의 문화는 또 어떤 변화를 거쳐야 하는 걸까요?  물리적 기반이 만들어질수록 춤허리의 고유한 정신이 훼손될까 우려도 됩니다. 하지만 두려운 걱정보단 설레는 도전이 되길 바랍니다. 2003년 결성 당시 용기를 냈던 것처럼 또 우리는 좌충우돌, 우왕좌왕, 시끌벅적하게 새로운 방식을 만들어 가겠지요.

6회 정기공연을 기점으로 선택한 새로운 길에 많이 지지해주시고 응원해주시고, 날카로운 비판도 잊지 말아 주십시오. 지난 8년간 다양한 삶의 결들과 욕망과 주장이 뒤엉켜, 느리지만 빠르게 달려온 춤허리는 늘 그렇듯 새로운 장애여성 문화운동의 역사를 써나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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