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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렇게 교실 밖에서

호두 (장애여성학교 한글반 강사)

작년 여름, 전시를 보기 위해 국립중앙박물관에 간 적이 있습니다. 이촌역에 내려 국립중앙박물관을 가리키는 표지판을 따라 나가는 길에 나란히 붙어 있는 한글박물관 표지판을 보았습니다. 아, 바로 옆에 있구나. 저는 그때 한글박물관을 알게 됐습니다. 그때부터 장애여성학교 한글반 참여자 분들과 소풍을 간다면 한글박물관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수업하러, 말고 놀러!

참여자 분들은 수업 중에 저에게 묻곤 합니다.

“제주도는 왜 제주도라고 해요?”

저는 답합니다.

“그렇게 쓰기로 약속했으니까요.”

그럼 꼭 반문이 날아옵니다.

“난 모르겠는데… 언제부터 약속했어요?”

이쯤 되면 저의 아무말이 시작됩니다.

“음… 세종대왕 때부터요!”

솔직히 강사로서도 ‘왜’를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글을 ‘어떻게’ 읽고 쓰고 말하면 되는지는 제가 칠판 앞에서 설명하고 보여줄 수 있는 반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아는 일은 교실 밖에서 이뤄지는 참여자 분들 저마다의 경험에 달려 있습니다. 만나고 약속하고 관계 맺고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험 말입니다. 저는 그 또한 이왕이면 함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올해 여름, 한글박물관으로 소풍을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반갑게도 미술반과 음악반이 동행하면서 한글반 소풍은 장애여성학교 대이동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교실 밖에서 만났습니다.




잘 놀자면, 일단 잘 먹어야지요. 만나자마자 우리는 돗자리를 펼쳐 놓고 둘러앉아 도시락을 먹었습니다. 먹을 만큼 먹은 뒤에는 한글박물관을 돌아다니며 아는 말을 만들거나 찾아다니는 게임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애정님, 은지님, 나은님과 한 조가 되었습니다. 애정님이 “보고 싶어요”라는 말을 써 보이던 순간, 은지님이 “파리를 사랑하세요?”라는 말을 사진으로 찍던 순간, 저와 애정님과 은지님과 나은님이 몸으로 “파리”라는 말을 절묘하게 만들어내던 순간이 저에게는 참 즐거웠습니다.



다른 참여자 분들에게는 어떤 순간이 남았을까요. 비가 쏟아지는 바람에 일정을 서둘러 마치게 돼 아쉽게도 소감을 충분히 나누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한글박물관에서 마주했던 상기된 얼굴들을 떠올리며 저마다의 경험의 의미를 짐작해봅니다. 흥분과 활력이 넘치고, 취향과 관심사를 드러내고, 때론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는 얼굴들을요. 교실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얼굴들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쩌면 ‘왜’ 그렇게 말하는지에 대해서도요.


세종대왕이나 훈민정음 같은 건 사실 몰라도 됩니다. 세종대왕이 누군지 훈민정음이 뭔지 배우는 수업보다 더 많은 만남과 더 많은 이야기의 장이 우리를 깨칩니다. 그렇게 교실 밖에서, 한글박물관에서든 어디에서든 또 만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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