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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와여성주의반 : 장애여성운동현장, 여성주의와 사회복지로 분석하기

편집 : 타리 (장애여성공감 연구정책팀)

장애여성공감은 올해 장애여성학교 <장애와 여성주의반>의 프로그램으로 ‘여성주의와 사회복지’라는 제목의 강좌를 기획하였습니다. 장애여성공감은 많은 NGO들이 처한 상황과 마찬가지로 인권운동을 해나가면서 사회서비스 제도를 함께 다루고 있습니다. 장애여성에게 반드시 필요한 제도를 요구하고, 그 중의 일부를 운영하면서 구체적인 사람들, 관계들이 만들어지고 갈등하면서 제도가 가진 의미와 문제점을 알게 됩니다. 또한 현재의 제도에 안주하지 않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기도 합니다. 이번에 마련된 강좌는 이러한 고민속에서 여성주의 시각에서 사회복지 철학, 정책, 제도, 현장, 사람들을 조명해보고자 마련되었습니다.
(프로그램 보기 -> https://wde.or.kr/?p=583)

아래의 세 글은 마지막 강좌 때 장애여성공감 활동가들이 준비한 발제문을 다듬은 글입니다. 사회복지 철학, 정책, 제도가 장애인, 여성, 소수자들의 삶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거나, 여전히 권리가 아닌 시혜의 관점에서 빈곤층을 잠재적 범죄자로 여기는 문제들을 지적합니다. 또한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제도 안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와 노동을 ‘돌봄’이라는 키워드로 포착할 때 여성주의적 시각을 통해서 돌봄이 어떻게 위계나 희생이 아닌 평등을 지향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성운동의 결과물로서 폭력 피해 여성 지원 제도가 만들어졌지만 제도가 여전히 ‘피해자다움’을 요구하거나 사업체계와 불화하면서 이러한 제도가 오히려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문제 등을 제기합니다. 이러한 활동가들의 고민이 현장에서 인식하고 있는 문제를 의제화하고 정치화해나가는 단초가 되었으면 합니다.

 

■ <복지의존과 부정수급이라는 낙인을 비판하기>  /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이진희

의존적 존재들의 시민권

사회보장(social security)제도는 질병, 장애, 노령, 실업, 사망 등의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모든 국민을 보호하고 빈곤을 해소하며 국민 생활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제공되는 사회보험, 공공부조, 사회서비스를 말한다(사회보장기본법 제3조 참조). 사회보험은 고용보험, 국민연금, 의료 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의 혜택을 말하며, 공공부조는 의료급여 등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가 해당되고, 사회서비스란 개인과 사회의 복지와 삶의 질 향상을 위하여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서비스를 말하는데, 사회복지(보육, 아동, 장애인, 노인), 보건의료(간병, 간호), 교육(특수교육, 방과 후)를 포괄하는 개념이다(보건복지부 사회서비스 전자바우처 사회보장정보원 홈페이지 참조). 사회보장제도는 국민국가에서 국민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원제도로서 필수적이며, 복지사회에서 가장 핵심적인 제도적 장치이다.

사회보장제도 수혜를 받는 중심에는 장애, 질병, 노년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장애인은 사회적 차별과 격리의 역사를 경험하며 살아왔고, 사회보장제도 안에서는 사회서비스의 주요한 대상이었다. 그러나 진보적 장애인 운동은 시혜와 동정으로서 주고 싶을 때 주는 행정편의적인 장애인복지를 비판하고, 주체가 아닌 ‘대상’의 삶을 거부하며, 국민의 권리로서 사회보장제도를 국가에 요구하고 쟁취하는 투쟁을 일구어 오고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은 동정과 시혜로서 던져지는 서비스가 아닌 제도적 권리로서 사회 서비스를 보장받고 시민권을 가진 존재로서 평등해지고 있는 것일까? 복제제도 수혜의 대상을 바라보는 특정한 관점이 장애인 등 돌봄이나 지원이 필요한 사람에 대해 복지에 의존하고, 부정수급을 시도할 수 있는 집단이라는 낙인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그로 인해 권리로서의 지원보단 감시와 관리 중심의 제도가 강화되는 것이 아닐까?

생계부양자 모델로서 장애인은 애초에 상상되지 못하고 있다. 몸에 대한 독립과 통제는 특정한 사회 안에서 구성되고, 강요되는 가치다. 그리고 몸에 대한 통제와 독립은 자신의 삶을 온전히 일굴 수 있는가를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하지만 이미 장애로 인하여 많은 권리와 제도들이 구축되어도 결국 ‘복지’라는 틀을 벗어나기 어렵게 만들어 ‘사회’안에 동등한 시민권을 가진 존재로,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주체로 상상하기 어려운 측면이 커 보인다. 이는 ‘복지의존’하여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는 편견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장애인은 가족단위나 개별단위의 주거지 보단 집단생활을 통한 관리와 감시 중심의 장애인 복지 패러다임이 현재까지도 강력하게 작동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한 이미 결핍과 무능, 돌봄이 필요한 의존적 존재라고 대상을 전제한 복지국가 안에서 평등한 시민으로 살아가는 것은 어려운 일일지도 모른다. 복지에서 교육, 보육, 의료는 새로운 생산을 위한 시스템의 하나로 바라본다. 그러나 과연 활동지원, 노인요양 등의 제도도 생산을 위한 시스템으로 바라볼 수 있을까? 결국 복지제도를 통해서 사회적 생산을 확대하는 것이 아닌 현상유지나 돌봄을 주로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집단에 대한 긍정적 평가는 가능할 것인가?

의존적 존재라는 낙인, 복지의존과 부정수급

최근에 주요한 흐름 중 하나는 복지 ‘부정수급’을 색출하려는 정부의 감시와 관리다. 특히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현장에서는 바우처 시간을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이 거짓으로 결제하여 현금화시키는 부정수급을 찾아내는데 집중하고 있다. 부정수급은 잘못된 일이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해야 다른 지점은 ‘복지의존’적 존재라는 부정적 낙인이 강화되는 것을 넘어 ‘부정수급’자로 복지 대상자를 간주하는 문제이다. 한편 ‘복지의존’하며 ‘부정수급’하는 자를 찾아내기 위해 ‘가짜 장애인’을 색출하는데, ‘가짜 장애인’이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이 복지 서비스의 적합한 대상임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무능하고 의존적 존재임을 더욱 적극적으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제도와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의 지원을 받는 한 장애인은 이렇게 말하며, 사회복지서비스를 받는 사람들 겪는 심리적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A: 장애인이 의존한다. 저는 약간 국가에서 얼마를 배정해놓고 여기까지 하면 안된다. 그렇게 하고 마치 장애인이 뭔가 적금통장이 있는데,, 괜히 불법을 하는 사람 같다. 마치 불법을 저지르는 사람이 되고 있는 느낌을 받고 조마조마해.
  
   B: 세상 인식이 그렇잖아요. 그 사람들을 개별적인 상황을 보는 게 아니라 장애인이면 나라에서 당연히 복지정책으로 살려내는 사람들이란 이미지가 있으니까. 내가 세금을 직접 내는 게 많진 않지만. 모두가 살 때마다 10%씩은 내고 있는데. 그걸 의식하면서 살아야 당당 할텐데, 내가 체감적으로 (세금 많이 낸다고)느껴지는 건 없으니까. 받기만 하는 이미지로 지속되니까. 자존심이 상하죠. 내가 생산적인 일을 해서 돈을 벌진 못하지만, 내가 무능한 것 같진 않은데…

  장애여성의 인권현실 알리는데 적극적인 미수는 수급자격이 떨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스스로 능력 없어야할 것 같고’로 묘사한다. 생산적이지 않은 사람인 것 같다 라는 낙인 지속적으로 ‘복지의존’이라는 사회적 인식을 강화한다. 수급권 자격 유지를 위해 실제로 일을 할 수 있음에도 특정금액 이상이면 깍여서 돈이 나올까봐 늘 두렵다고 했다. 누군가 특별하게 강하게 감시하지 않아도 사회복지 지원체계 안에서 자신의 삶을 검열하고 통제하게 된다. 

마무리하며

  장애인을 생계부양자 모델로 돈을 벌고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으로서 상정하지 않는 전제는 공공부조를 통한 수급권유지 만으로 이들의 삶을 고정화 시킬 수 밖에 없다. 또한 정상가족이 될 수 없거나 가족을 꾸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가족지원모델은  다양하게 개발되지 못하는 것이 현재의 사회복지모델의 현실이다. 따라서 다양한 가족모델에 대한 사회적 인정과 제도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개인별 사회모델을 구축하는 것이 현재로선 중요해 보인다.
  복지의존과 부정수급자라는 두 개의 낙인은 연결되어 있다. 의존과 독립, 돌봄이 재해석되고, 다양한 삶의 모델이 새롭게 만들어지지 않는 한 복지에 의존하는 자와 의존하지 않는 자로 구분하는 한 복지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은 변화하기 어려울 것이다.
  복지국가가 ‘의존적이고, 신체활동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경제활동을 하기 어렵고, 돌봄이 필요한 장애인’이라는 기준을 전제할 때, 과연 시민권 확보가 가능할지를 질문하며, ‘복지의존과 부정수급’으로 대표되는 복지 대상자에 대한 부정적 평가와 관리를 통해 지속적으로 낙인과 타자화를 강화하는 것은 비판되어야 한다. 그리고 복지사회가 전제하는 의존적 삶을 지원의 대상으로 한정하지 않고, 다양한 삶의 모델로서 재구성 하려는 변화가 필요하다. 부정수급의 잠재적 대상이라는 것만이 강조될 때, 복지서비스는 권리의 주체임을 강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관리와 통제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나아갈 수 밖에 없다.

■ <돌봄노동과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  장애여성공감 장애인활동지원팀 활동가 장은희

 1. 들어가며

공감은 2016년 ‘장애인활동지원 현장연구와 인권의제개발 프로젝트’를 진행하였다. 그동안 장애인활동지원제도와 관련하여 제도화 투쟁, 시간확보등 체계확보를 위한 시급한 의제들이 중점적으로 다뤄왔고, 그에 비해 제도와 사회적 환경에 영향을 주고 받고 있는 장애인 이용자(이하 이용자)/활동보조인의 관계와 갈등, 활동보조 노동 특성들은 주요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된 것에 대한 문제의식에서 연구가 시작되었다. 또한 기존 여성주의 관점에서 말하는 돌봄노동의 상호돌봄 가능성이 활동보조 현장에는 어떤식으로 구현될 수 있는지 살펴보면서 상호돌봄의 공백들을 활동보조 현장의 운동으로 구성하기 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활동보조 현장은 취약계층으로 일컬어지는 장애인과 여성이 교차하는 현장으로써 활동보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장애와 젠더라는 통합적인 관점이 필요하다는 인식 아래 연구사업을 추진하였다. 그 과정에서 장애인활동보조 현장에서 이용자/활동보조인이 공적인 부분에서 드러나지 않는 문제들을 사적으로 감당하고 있었으며, 그리고 그 문제들이 공론화된 논의의 장에서 얼마나 소외 되었는지 알게 되었다.

 2. 현장 들여다보기

1) 성별화된 활동보조 노동
① 남성 활동보조인과 여성활동보조인 업무범위의 차이 : 이용자의 성비는 비슷하지만 활동보조서비스를 제공하는 활동보조인의 성비는 9:1(여:남)으로 여성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돌봄노동서비스 영역에 여성이 많다는 것은 이 영역이 성별화된 노동임을 드러내는 증거이다. 활동보조인들이 하는 업무영역은 성별과 무관할까? 실제로 활동보조라는 공적인 업무영역안에서도 남성 활동보조인은 사회활동보조에 주력하고, 여성활동보조인은 신변보조나 가사보조에 배치되고 있음을 당사자들의 얘기들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일상보조”의 영역에는 이미 가부장적 사회인식이 반영되어 여자가 할 일과 남자가 할 일이 구분되어 지는 것이다. 흔히 가사나 신변보조는 남성은 어려워서, 여성이 더 잘하니까라는 이유가 뒷받침되는데. 어렵고 누군가 더 월등히 잘하는 일이 제대로 가치평가 되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은 왜 생략되어지는가…

② 남성 이용자/여성 이용자 보조범위의 차이 : 서비스를 제공받는 이용자에게서도 성별화된 역할중심으로 활동보조를 받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예를들면 장애남성 이용자가 받는 활동보조는 주로 본인을 위한 사회활동이나 신변보조중심의 활동보조로 이뤄지는 반면 장애여성이 받는 활동보조는 본인보다는 전통적으로 여성에게 주어진 성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대부분의 시간이 할애된다. 장애인 부부가 동일하게 활동보조를 받는 경우에도 자녀양육이나 가사보조는 장애여성의 활동보조인이 제공하는 활동보조로 이뤄지는 것이다.

 2)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성에 기반한 노동
 ① 관계중심 노동  :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이들의 관계를 드러내는 단서가 된다. 활동보조현장에서는 이모라는 호칭이 많이 들리는데, 이로인해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고 있음이 잘 드러나지 않음과 동시에 관계에서 발생되는 갈등을 사적인 친밀감으로 희석을 시키는 효과(그래서 문제가 공식화되기 어려움)를 만든다. 현장에서 생기는 일상의 갈등들을 친밀감에 기대어 해결 혹은 유지 가능하게 기능한다는 것인데 즉 친밀하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는 영역의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또한 이용자는 서비스를 받기 위해 일방적으로 집이라는 사적인 공간과 ‘몸’을 드러내야 하는데, 몸을 부대끼며 주고 받는 활동지원서비스를 유지하기 위해서 친밀감이라는 정서적 안정감이 필요한 것이다. 활동보조인의 입장에서도 친밀감이라는 감정은 타인의 사적인 공간에 들어가고, 몸으로 주고받는 활동에 따른 긴장감과 부담스러운 상황에 적응하는데 필요한 정서이기도 한 것이다. 
 
② ‘눈치보는 관계’ : 활동보조인의 열악한 처우는 이용자와 활동보조인 모두에게 정당한 요구를 어렵게하고, 서비스를 불안정하게 한다. 활동보조인의 낮은 시급은 이용자로 하여금 본인이 원하는 보조를 요구하게 어렵게하고, 종종 필요한 보조조차 포기하게 만든다. 활동보조인이 하는 노동에 대한 저평가는 활동보조인의 이직률로 이어지고, 이용자는 활동보조인이 그만두게 될까봐 살피게 되는(눈치보게 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들이 눈치를 볼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지게 되는지 구조적 문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3) 모순된 제도 안팎에서 충돌하는 권리들
① 삶의 다양한 조건들을 재단하는 제도 : 독립적 생활을 위한 일상생활 보조의 범주를 제도가 제안하는 획일적인 매뉴얼에 담을 수는 없다. ‘타인의 일상생활을 보조’한다는 것은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은 그 일상을 누가 규정하는 것이 맞는가?의 질문으로 이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당사자를 독립적인 주체로 인정하고, 당사자가 원하는 내용과 방법으로 독립생활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복지서비스안에 다양한 선택지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제도는 법제도 안에 장애인의 삶을 규정하고, 관계적인 독립을 저해하며, 복지서비스를 받는 사람들을 무기력하고, 의존적일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어내고 있음에 공감이 필요하다.
②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의 관계에 숟가락 얹은 정부
 제도의 빈틈으로 생기는 갈등들 노동법 사각지대, 저임금, 저평가, 불안정한 노동시간과 고용불안, 성폭력위험, 열악한 근무환경, 부상 및 안전사고의 위험, 감정노동 부정적인 사회시선, 돌봄수혜자와 제공자간 불균형, 글로벌화에 따른 이주여성들의 진입등은 장애인활동보조인과 비슷해보이는 대부분의 의료기관 간병인, 재가 요양보호사, 가정도우미등 돌봄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그러나 사회적으로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시한폭탄처럼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태임에도 계속 유지가 될 수 있는 이유는 활동보조 현장에서 이용자와 활동보조인이 서로의 관계에 의존한 채 제도의 부당함을 감내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현장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활동보조인들은 서비스를 받아야 하는 이용자들에게 활동보조가 생존이 걸린 활동이라는 것을 체감해왔다. 그리고 그 현장을 떠남으로서 갖게 되는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이 현장을 묵묵히 지키게 하는 것이다. 장애인과 활동보조인의 관계성과 절실함에 기대어 책임과 책무를 지지 않은채 돌봄영역에 무임승차한 것은 정부라는 비판의 목소리를 더욱 높여야 하지 않을까.

 3. 남겨진 과제들

상호적인 관계로써 우리에게 필요한 상상력은 무엇일까? 종종 이용자의 자기결정권과 활동보조인의 노동권이 충돌하는 권리의 당사자로 이해되어지는 상황을 볼 때마다 복잡한 심정이 든다. 사실 이 모든 환경은 실제적 ‘갑’인 정부가 만든 것이고, 그 안에 ‘을’과 ‘을’의 위치에 있는 장애인과 활동보조인만이 링위에 남아 생존을 위해 처절한 잽을 날리고 있는 모양새이다. 독립할 수 없는 의존적 존재로 여겨졌던 장애인이 인간다운 삶, 존엄한 삶을 위해 활동보조가 필요하듯 비주체적/부수적인 존재로 그 존재의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여성들이 수천년동안 해왔던 노동조차 누구나 할 수 없는일 vs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이중적 잣대속에서 단 한번도 존중과 평가를 받지 못한 채 생존을 위해 활동보조라는 현장에서 만나고 있다. 다른 삶들이 같은 목적을 갖고 이 현장에서 만나고 있음을 알게되면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 권리 충돌이 아닌 다름 몸으로 다른 삶을 해온 사람들이 비슷하고도 다른 경험에 서로 지지하며 의존하는 것으로 그렇게 서로의 시야를 확장하고 연대하는건 불가능한걸까.  그러기 위해서 여성주의 관점의 ‘상호돌봄성’과 ‘연대’의 키워드가 활동보조 현장에 시사하는 바는 중요하다.

■ 성폭력 피해자 지원체계와 사회권  /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활동가 민들레

들어가며

1994년 1월 5일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이 제정이 되고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각종 지원체계가 만들어지기 시작하였고, 2010년 4월 15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과 「성폭력방지 및 피해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로 분리되면서 보다 다양한 방식의 지원체계와 제도에 대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다. 2012년 법의 전면적인 개정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국선변호사 지원 제도, 아동 및 장애인에 대한 진술조력인 제도 등의 지원체계가 마련되었다. 이러한 민·형사상 법적 절차에 대한 지원 이외에도 피해자에 대한 의료지원, 보호시설 입소, 공공임대 주택 등의 주거지원과 긴급생계지원, 전학지원, 아동양육비 또는 간병비 지급 등의 다양한 지원체계가 마련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각종 지원체계들을 국가가 마련하도록 요구할 수 있는 당위성은 어디에 기인하는 것일까? 성폭력이란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로서 피해자는 이러한 범죄로 인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받은 사람임을 인지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국가(정부)는 국민이 안전하게 행복을 추구하면 살아갈 환경을 만들어야 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성폭력으로 인해 자신이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침해받은 피해자들은 국가를 상대로 권리회복과 안전한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각종 지원제도들을 요구할 권리가 있고 이는 기본권으로서의 사회권이라고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 성폭력 피해자를 지원하는 현장에서는 이러한 지원체계들을 피해자들의 권리를 회복하기 위해서 국가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라기보다는 일련의 사회복지서비스이거나, “성폭력”이라는 특수한 폭력에 대한 “특별한 배려” 쯤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는 성폭력 피해자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이기도하다. 사회복지서비스의 대상자인지 아니면 행복추구권이라는 기본권을 요구하는 적극적인 국민인지. 

전형적 성폭력 피해자상에 대한 환상

성폭력 피해자로 각종 지원체계가 사회복지적인 서비스로 인식되는 것의 문제는 선택적 복지의 문제와 연결되어 있다. 즉 이러한 피해자 지원체계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진짜 피해자”로 인정받아야 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러나 진짜 피해자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규정하는 것은 누구의 환상에 기대어 있는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사례1> 청각장애 K씨는 구화를 주로 소통방식으로 사용하는 20대의 여성이다. K씨는 비장애 동급생 남학생으로부터 성폭력 피해를 경험하였고 이를 신고하였다. 그러나 경찰이나 심지어 피해자 국선변호사 조차 피해자가 대학을 다니고 페*북이나 유*브 등 SNS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 등 자신의 주장을 잘 표현할 수 있는 여성이 왜 피해 상황에서는 그토록 무력하고 수동적이었는지 이해 할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있다. 즉, 충분히 저항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을 하는 것이다.

피해자는 청각장애로 인해 평소 문자로 소통하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의견을 잘 표현하지만 막상 언어적인 소통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쉽게 위축되는 성향을 보이고 있고, 더욱이 성폭력이란 비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더욱 위축될 수 있다. 흔히 평소 자신의 주장을 잘하는 사람이라면 성폭력 피해 상황에서도 적극적으로 거부의사를 밝힐 수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일상적인 상황에서의 행동방식이나 태도가 성폭력이라는 비일상적인 상황에서는 동일하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 피해자는 피해 당시 “이건 뭐지? 얘가 왜 이러지?“ 라는 생각에 너무 당황스러웠지만 평소 만나도 휴대전화 문자로 소통하는 것이 익숙한 상황에서 말이 나오지 않았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한 피해자의 장애로 인한 소통방식의 차이나 대응방식의 취약성을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는 성폭력은 피해자가 적극적으로 저항하면 피할 수 있다는 왜곡된 통념에 근거한 것이기도 하다. 죽을 만큼 강력한 저항을 하거나, 어떠한 상황에서도 동일하게 수동적이고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전형적인 피해자“를 상상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환상일 뿐이다.

무력하고 무능력한 피해자 증명하기

성폭력 피해자는 에게 지원되는 제도를 이용할 수 있는 “진짜 피해자”가 되기 위해서는 결국 자신이 얼마나 무력하고 무능한 존재인지를 증명해야 하는 일이다. 예를 들면 의료지원을 받으려면 본인이 성폭력 피해로 인해 얼마나 힘든 상황이고 심각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지를 증명하기 위해서 의사나 심리평가 전문가의 진단을 필요로 한다. 또는 장애로 인해 절대적으로 무능력하다고 인정받을 때에야 피해를 의심받지 않고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피해자는 끊임없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없었는지를 증명해 보여야 한다.

사례2> 지적장애 3급의 P씨는 40대의 여성으로 기도모임에서 만남 비장애 남성에 의해 강제추행을 경험하였고 이를 경찰에 신고하였다. 이후 재판에서 피해자가 경찰서에서 최초 작성한 진술조서가 지적장애 치고는 지나치게 잘 썼다는 이유를 들면서 타인에 의해 조작된 사건이거나 피해자의 장애가 항거가 곤란한 정도로 중하지 않다는 것이 중요한 쟁점이 되었다.    

이러한 주장은 “지적장애 = 무능함“ 이라는 편견에 근거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피해자의 진술의 신빙성이나 항거 가능성 여부를 의심하는 수사, 재판 기관에게 피해자의 장애로 인한 취약성을 근거로 피해 상황에서의 무력함을 증명해야만 피해를 인정받을 수 있는 모순에 빠지게 된다. 즉, 피해자가 장애로 인한 취약성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가진 자원과 기능을 바탕으로 유능함을 확장하고 스스로 임파워링(empowering)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여성주의상담에서는 이러한 상황은 언제나 딜레마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가며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여러 가지 지원체계가 단순히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체계로 남지 않으려면 이러한 지원체계가 마련된 근본적인 목적을 상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선택적 복지제도의 대상자를 선정하듯 누가 피해자인지를 구분하는 것으로 지원여부를 판단하려 하는 상황은 결국 피해자상에 대한 통념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는다. 이는 피해자 지원체계가 스스로 피해를 극복하는 생존자로 살아가는 것을 지원하는 것이 아닌 무능한 피해자로 남아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성적자기결정권은 인간으로서 당연힌 누려야 할 인권의 하나이며, 이를 침해하는 성폭력의 피해자들은 인간으로서 행복을 추구할 권리가 침해 받은 것이라는 정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따라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지원제도는 성폭력이라는 특수한 폭력에 대한 온정적 시혜나 배려가 아닌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보장하기 위한 국가의 당연한 역할로서 요구되어 져야 하는 것이다.    

이 강좌를 통해서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활동가, 사회복지를 전공하는 학생들, 활동보조 노동자, 시민들이 함께 고민을 나누고 토론을 진행하였고, 이후에도 자체적인 세미나를 통해서 계속 논의를 이어가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준 분들이 많았습니다. 장애여성공감에서 기회를 마련하게 되면 다시한번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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