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여성의 기본권 훼손하고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존치시키는 정의당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규탄한다!

[성명]

여성의 기본권 훼손하고 임신중지에 대한 처벌과 규제를 존치시키는 정의당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규탄한다!

–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발의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 규탄과 성과재생산권리 보장을 위한 요구-

 

 

4월 15일 정의당 이정미 의원 외 9명 (김종대·심상정·여영국·윤소하·추혜선 (정의당) 김수민·박주현·채이배 (바른미래당) 손혜원 (무소속))은 헌법재판소를 통해 이미 천명된 여성의 기본권을 훼손하고 ‘낙태죄’를 존치시키는 것이나 다름없는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정의당은 보도자료를 통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전향적으로 확대하는 낙태죄 폐지 법안”을 발의한다면서 “헌법불합치 결정은 절반의 여성 독립선언, 이제 국회가 이 독립선언을 완성할 때”라고 자평했지만 정의당이 발의한 법안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의 의미에도 한참 미달하는 법안이다. 지금 정부와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단지 해외 사례들만을 단편적으로 참고하여 형식적으로 법 개정에만 나설 일이 아니라, 지금까지 형법상의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이 통제해 온 인구정책과 성적 통제의 역사를 성찰하고, 성관계와 피임, 임신의 유지와 중지, 출산, 양육에 영향을 미치는 제반의 정책과 법·제도, 사회경제적 차별과 불평등, 낙인의 조건들을 검토하여 권리 보장의 틀을 새롭게 세우는 것이다. 지난 4월 11일 헌법재판소의 판결 이후 충분한 시간을 두고 이와 같은 검토와 논의가 선행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단지 빠르게 ‘최초발의’라는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위해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또다시 제약하는 법안을 발의한 정의당의 행보를 강력히 규탄한다.

 

무엇보다 정의당 이정미 의원이 대표발의 한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은 여전히 임신중지를 법의 틀에 따라 ‘제한’하고 ‘징벌’한다는 점에서 매우 문제적이다. 임신 14주를 경과한 임신중지의 경우 태아의 건강, 성폭력, 근친상간, 사회·경제적 곤란함이나 임신의 유지로 인한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을 또다시 증명하고 허락받아야 한다. 그마저도 임신 22주 이후에는 ‘심각한 건강상의 위험’외에는 임신 당사자가 임신 후기에 이르기까지 영향을 미쳐온 개인적, 사회적 맥락을 전혀 고려할 수 없도록 제약하고 있다. 이를 어길 경우 의료인이나 임신중지를 도운 시술자에게 과태료(의사 등 500만원, 비의료인 200만원)가 부과된다. 이와 같은 법안은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 취지에도 거스르는 방향일 뿐만 아니라 그 동안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을 비롯하여 수많은 여성들이 요구해 온 방향에도 어긋나는 것이다.

 

그동안 우리는 여성의 임신중지에는 그 어떤 허락도 처벌도 필요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왔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은 특정한 주수를 우선적 기준으로 검토하는 구시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날 것을 촉구해 왔으며, 여성의 임신중지를 어떻게 제한할 것인가가 아니라 건강과 기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가를 중심으로 입법방향을 세울 것을 요구했다. 임신중지에 대한 법적 규제를 유지하면서 제한적 허용조건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하는 것은 오히려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른 재생산 권리의 보장을 제약한다는 우려 역시 밝혔다. 필요한 것은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개인의 곤란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차별의 해소, 사회·경제적 여건의 보장 방향이다. 특히, 이와 같은 방향이 고려되지 않을 경우 임신중지의 결정 시기를 놓치고, 더 열악하거나 위험한 조건에 놓이게 되는 이들은 가장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하고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계층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현행 모자보건법상의 ‘우생학적 사유’를 반드시 폐지하고 모자보건법을 전면 개정할 것과 유산유도제의 즉각적 도입을 요구해 왔다. 그럼에도 이와 같은 그간의 우려와 요구들을 도외시한 채 정의당은 또다시 우리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법적 제약의 틀 안에 가두는 퇴보한 법안을 발의하였으며, 우리는 이와 같은 행보를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형법상의 ‘낙태죄’에 대해 단순위헌 결정을 한 3인의 재판관들은 “임신한 여성에게 임신의 유지를 기대하기 어려운” 예외적 기준을 두어 임신 22주 이후에도 임신 중지가 이루어질 수 있는 방향으로 입법을 요청했다. 또한 여성이 자신의 몸을 결정할 수 있는 권리가 임신 전 기간에 걸쳐서 보장되어야 함을 명확하게 적시했다. 헌법불합치 결정을 한 4인의 재판관들 역시 임신 22주 내에서는 “특정한 사유를 국가가 지정하거나 선별하지 않고” 여성의 자기 결정과 요청에 기반하여 임신중지가 이루어지는 것이 헌법상 타당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이처럼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여성의 판단과 요청을 근간으로 한 입법적 방향성을 이미 제시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또다시 여성의 결정을 제한하고 국가의 허락의 범위를 벗어나는 경우 징벌하는 정의당의 발의안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취지마저도 한참이나 후퇴시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낙태죄 헌법불합치 결정은 임신중지를 한 여성에 대한 처벌이 아닌 여성의 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보장을 우리 사회가 고민해야 한다는 시대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 향후 법안개정은 여성의 현실을 바탕으로 성과 재생산의 권리를 사회가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를 숙고하고 토론하는 사회공론화의 과정을 거쳐야만 할 것이다. 그런데 헌법재판소의 판결 불과 며칠 후 진보적 정당을 자임하는 정의당이 이러한 과정의 중요성을 무시하고 성급하게 법안을 발의한 작금의 현실이 개탄스럽기 짝이 없다. 정의당은 헌법재판소의 결정의 의미를 널리 알리고 ‘태아생명권 대 여성결정권’이 아닌 ‘성과재생산의 권리보장’에 대한 제대로 된 사회적 토론의 장을 만드는 역할에 노력을 기울여야 마땅했다.

 

이제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역사는 끝났다. 이 분명한 사실을 이제는 정의당 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역행할 수 없다! 낙태죄 폐지와 성과재생산의 권리 보장을 위해 용기있게 행동해온 우리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계속하여 전진할 것이다!

 

– 국회는 낙태죄와 모자보건법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성과 재생산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법과 제도, 종합적인 정책을 마련하라!

– 정부는 제대로 된 성교육을 포함한 교육정책, 고용 및 노동정책, 가족 정책, 청소년 정책, 장애 정책, 이주 정책, 보건의료 정책 전반에서 성평등의 보장, 성적 건강과 재생산 권리 보장이 차별없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보건복지부, 여성가족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법무부 등을 아우르는 통합적 정책 연계 시스템을 마련하라.

– 빠른 시기에, 어디서나, 안전하게 임신중지를 할 수 있도록 유산유도제의 도입을 즉각 승인하고 정확한 정보 제공과 임신중지 전후 건강관리를 보장하라.

– 병원, 약국, 보건소 등 어디에서든 피임, 임신, 임신중지, 출산에 관련된 안전한 정보를 얻고 상담할 수 있는 체계적 시스템을 마련하라.

 

 

2019년 4월 16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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