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이야기] 영화 ‘도가니’를 함께 보고

 
 
  회원월례회에서 영화 ‘도가니’를 함께 보고 


: 홍한숙(장애여성공감 회원)
 
 
도가니 영화를 보기 전에 끔찍한 사실에 대한 얘기는 이미 충분한 화젯거리였다.
그러나 미루어 짐작할 수 없었고 실제로 영화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형용하기 힘들만큼 버거웠다.
그들을 지키고 보호해야할 의무가 있는 사람들이 장애아동을
그중에서도 의지할 곳 없는 아이들만 골라서 유린하고 폭행하는 장면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눈물을 쏟아내게 만들었다.
더욱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건 우리가 알고, 믿고, 의지하는 정의는 실종 되었다는 것이다.
인호는 비명소리를 따라 화장실로 향한다.
문을 두드리며 상황을 알아보려 했지만 아무 일 없다는 경비의 말을 듣고 돌아선다.
나중에 끔찍한 일이 일어난 동시간대에 자신이 있었음을 알고 그것을 막지 못한 것에 대해 일말의 책임을 느낀다.
경비의 술책에 돌아서는 인호의, 뭔가 미심쩍긴 하지만 깊이 관여하고 싶지 않은 마음과 경비의 말에 기대어 진실 앞에서 돌아선 비겁함을 정당화하는 모습에서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대부분 조용히 별일 없이 살아가기를 희망한다.
불편한 진실은 나와는 상관없이 진행되기를 바라고 정의의 실현도 다른 사람이 대신 나서 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현실과 진실 사이에서 우유부단한 인호의 모습은 어쩌면 우리 대부분의 모습일거 라는 생각에 가책을 느꼈다.
엄연한 사실과 진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피해자는 비난과 모욕을 받는 가해자의 모습이 되고, 가해자는 권력과 집단이기를 방패로 피해자가 되어 버리고 무자비하게 자행된 폭행을 두고 화간인지 강간인지를 논하는 현실 앞에서 가슴이 먹먹하고 뻐근해지는 통증을 느꼈다. 성폭행의 처벌 기준을 화간, 강간으로 나눈 다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더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느꼈다.
우리가 그렇게 아무것도 할 수 없이 분노와 울분만을 느끼고 있을 때 민수는 권력의 횡포에 철저하게 진실이 짓밟히면서 진실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스스로 단죄하고 자신의 몸도 던져버리는 방법을 택한다.
약자는 왜 늘 목숨을 던져 진실을 규명해야만 하는 걸까?
목숨을 던지지 않고는 누구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현실 속에서 느끼는 그 절망감은 얼마나 깊은 것일까?
인호는 진실을 규탄하는 물대포속에서 이 아이는.. 민수라는 아이입니다. 이 아이는.. 말하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독백하듯 읊조리며 민수의 죽음에도 여전히 짓밟히는 진실을 위해 비로소 온전한 용기를 낸다. 연두와 유리의 손을 놓아 버리면 자신의 딸 솔이도 지켜 줄 수 없을 것 같다는 인호의 말은 진실에 대해 아는 자의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
영화의 결말은 우리의 마음을 끝까지 달래주지 못했다.
가해자들은 가벼운 처벌을 받고 곧 복귀되었고 아이들은 잊혀졌으며 사람들은 하나둘 생활로 돌아갔다.
영화를 보며 느꼈던 분노도, 권력 앞에 짓밟히는 진실에 대한 안타까움도 점점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희미해질 것이다. 영화를 보고 들끓는 지금의 민심처럼 세상이 확 바뀌어 버리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감정을 느껴 본 것과 느껴 보지 못한 것과는 다르지 않을까?
영화가 끝나고 비장애인 남성 두 명과 엘리베이터를 동승했다.
그중 한사람은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운 얼굴로 괜히 봤다. 라고 했다.
나는 그 사람의 복잡한 심경을 이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사람도 그 진실에 대해 마주 하기전과 후는 분명히 다를 것임을 믿는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우리가 싸우는 이유는 세상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란 말에 깊은 공감을 한다.
정의감과 의협심으로 충만하던 우리들은 점점 불의와 타협하게 되기도 하고 불의를 보고도 침묵하며 때로는 세상을 바꾸려다가 세상에 물들어버리기도 한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이 우리를 바꾸지 못하도록 스스로를 다져야할 것이며, 이 모든 것이 잠깐의 이슈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 이 기회에 확실하게 모든 것을 제도화 하도록 목소리를 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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