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 국가보안법 독소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의견

[연명]

국가보안법 독소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을 촉구하는 인권단체 의견

국가보안법 2조 1항과 7조 1항, 3항, 5항 등에 대한 위헌 여부를 다룰 헌법재판소 공개변론을 앞두고 인권단체 의견서를 제출합니다. 국내 인권단체들은 지난 30년간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사상 및 양심, 표현의 자유 침해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국가보안법으로 인한 고통을 받아온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왔습니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공개변론을 통해 국가보안법 독소조항이 반세기 넘도록 발생시켜 온 문제점에 대해 제대로 논의하고, 헌법재판소의 위헌 판단을 촉구합니다.

국가폭력을 양산하는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은 사상 및 양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고 이를 통해 피해자들의 삶을 파괴합니다. 국가보안법은 ‘반국가단체’와 관련한 모든 사상 및 행위를 처벌 대상으로 삼습니다. 이는 남북한이 분단된 특수한 상황과 맞물려 지금까지도 많은 국가폭력과 인권침해를 양산하고 있습니다.

국가보안법은 북한 정부, 혹은 북한의 사람들과 접촉할 경우 이를 처벌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이는 재일동포와 탈북민과 같이 특수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이 국가에 의해 간첩으로 조작되거나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벌받게 합니다.

대한민국과 달리 일본에서 나고 자란 재일동포들은 북한 국적의 재일동포들과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습니다. 대한민국과 북한, 일본 모두가 걸쳐 있는 삶에서 민단과 조총련 소속이 한 가족 안에 살기도 하고, 대한민국 국적의 축구선수가 북한 소속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기도 합니다. 국가보안법은 이러한 특수성을 무시한 채 언제든 이들이 기소되거나 처벌받을 수 있는 위협에 처하도록 만듭니다.

대표적으로 1970년대부터 1980년대 광범위하게 발생한 재일동포 유학생 간첩 조작사건이 있습니다. 이른바 ‘재일동포 학원침투 북괴간첩단’ 사건의 주범으로 몰려 고문을 받고 수감 생활을 한 피해자들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살아가기도 하고,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에 대한 두려움에 몇 달 동안 착신 거부를 설정할 정도로 후유증을 겪기도 하며, 고문으로 인한 심리적·물리적인 후유증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2010년대에 이르러서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고 배상이 이루어졌지만, 국가보안법에 의해 훼손된 삶과 존엄성은 국가가 되돌려줄 수 없습니다. 우리는 40년 이상 그들이 겪었을 삶을 공개변론에서 기억하길 바랍니다.

국가보안법에 의한 국가폭력 피해는 수십 년 전 과거의 사건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탈북민의 경우 최장 90일간 북한이탈주민보호센터(구 합동신문센터)에 구금되어 ‘보호’는커녕 국가 권력의 폭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할 여지도 없는 인권의 사각지대를 경험합니다. 조사 과정에서 간첩으로 내몰리기도 하고 인권침해 및 성폭력에 노출되기도 합니다. 이때 탈북민을 위협하는 악법이 국가보안법입니다. 국가는 여전히 국가보안법을 이용해 이들의 인권을 사각지대에 내몰고 그 약점을 이용해 탈북민을 통제하고, 국내 정치에 이용하기까지 합니다. 최소한의 인권의 원칙도 지키지 않는 국가보안법이라는 국가권력의 남용을 허용해서는 안 됩니다.

기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위배하는 국가보안법

국가보안법의 7조 1항, 3항, 5항은 대한민국에서 언어, 의견으로 표현되는 특정한 사상을 제한하는 법률입니다. 반국가단체를 찬양, 고무, 선전해서는 안 되며 문서·도화 기타 표현물을 제작·수입·복사·소지·운반·반포·판매 또는 취득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광범위한 금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조항들은 특정한 책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기소되고 북한학 연구자까지도 북한 관련 서적을 소지하였다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당하도록 만듭니다. SNS에 북한을 풍자하는 게시물을 올렸다 구속기소 된 사건은 국가보안법 7조가 얼마나 마구잡이로 적용되고 있는지 보여줍니다.

국가보안법에서 금지하는 행위 자체에 관한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보안법은 조사와 기소, 재판의 과정에서 사건 당사자의 삶 모두를 검열하고 판단하게 합니다. 이 과정에서 개인은 표현의 자유와 함께 기본적 인권으로 보장되어야 할 사상과 양심의 자유 또한 침해받게 됩니다. 개인의 내면에 있는 생각의 범위와 성격을 제한하는 국가보안법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국가 주도로 광범위하게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결국 국가보안법은 시민이 스스로 자신의 말과 행동을 검열하게 하고, 위축시키는 효과를 일으킵니다.

이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위)의 국가보안법 위반 게시물 삭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2014년 이후 매년 방통위 통신심의 과정에서 1,000~2,500건 사이의 게시물이 국가보안법 7조 위반으로 삭제 등의 시정조치가 이루어집니다. 이 과정은 방통위의 자의적 판단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국가보안법 7조가 해당 표현이 가진 위험의 성격, 정도가 아닌, 그러한 사상을 가졌다는 의심과 행위만으로 적용이 가능한 법안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결국 다른 사상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국가의 메시지를 사회적으로 확인시키는 꼴입니다. 사상의 자유를 통제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국가보안법이 민주주의와 양립할 수 없는 이유입니다.

국가보안법 위헌 판단은 사회적 요구

국가보안법은 반세기 동안 수없이 많은 인권침해와 피해자를 만들어 왔습니다. 이는 국제인권기구에서도 오랜 기간 주목한 바입니다. 유엔의 각 인권기구들은 1992년 이후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보안법 폐지를 권고하였습니다. 특히 주목해야할 지점은 2001년 유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권리위원회(CESCR) 최종권고(Concluding Observations)입니다. 위원회는 해당 권고에서 국가보안법을 통해 강제되는 ‘요새 심리(fortress mentality)’의 만연이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권리의 향유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국가보안법이 지식인과 예술인의 작품을 검열, 몰수 혹은 파괴할 뿐 아니라 이들을 형사기소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는 점을 밝혔습니다.

국내의 경우, 1994년 한국인권단체협의회는 창립선언문을 통해 ‘수십 년간 우리 사회를 파행으로 몰고 온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습니다. 이후 인권단체들은 ‘국가보안법이 있고 그 법으로 인해 자신의 사상과 양심, 신념을 갖고 있고, 이것을 표현하였다는 이유만으로 구속과 수배에 이르는 사람들이 있는 한 우리 사회는 인권사회도 민주주의 사회도 아니다’는 입장 속에 지속적으로 대한민국 정부에 국가보안법의 조속한 폐지를 촉구하였습니다.

인권단체들은 이 의견서와 공개변론을 통해 법 조항의 문제와 국가보안법이 만든 국가폭력과 인간존엄성의 훼손과 지금도 발생하고 있는 피해들, 인권침해 당사자들의 목소리들이 주목받길 바랍니다. 국가보안법은 개개인의 자유와 사상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 영향을 끼칩니다. 따라서 인권단체들은 국가보안법 독소조항에 대한 위헌 결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서로의 존엄성을 지켜나가는 인권의 원칙을 지키는 사회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2022년 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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