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장애인성폭력상담소 및 피해자보호시설 성명]
정부 ‘장애인 성폭력 방지 및 피해자 보호 대책’에 대한 입장
최근 광주인화학교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 ‘도가니’ 상영이후, 국민여론이 장애인 성폭력 및 장애인생활시설의 문제에 대한 분노가 일고 있다. 그동안 수많은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사회적 이슈화 되었지만 정부는 무관심과 외면으로 일관하면 그 심각성조차 인식하지 못했다.
그러던 정부가 국민들의 분노와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들끓는 여론에 밀려 국민총리실을 비롯한 5개 정부관계부처가 장애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한 종합대책을 내 놓았고 이것이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정부차원의 최초의 대책 발표로서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정부의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장애인성폭력상담소를 비롯하여 장애여성단체, 여성단체, 장애인 단체 등 다양한 영역에서 장애인 성폭력의 심각성과 장애인생활시설의 인권침해 실태를 알리며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문제 해결을 위한 정책을 제시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으로 대처했던 정부의 지난 태도에 대해 안타까움과 실망스러움을 금할 길 없다.
10월 7일 발표된 정부 종합대책의 주요골자는 광주 인화학교 폐교조치 및 그에 따른 후속조치 마련, 장애인 성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 장애인 피해자 보호 확대, 사회복지법인과 시설의 투명성 확보 등 4가지의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전국에 있는 20여 개소 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정부 종합대책 중 장애인 성폭력 가해자 처벌 강화와 장애인 피해자 보호대책에 관한 정책에 대해 입장을 밝힌다.
정부는 장애인 성폭력 가해자 처벌에 있어 가중처벌 조항 신설 및 1회 범죄자에 대해서도 전자발찌 부착명령,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친고죄 폐지, 장애인피해자 유사성교행위에 대한 강간죄의 법정형 상향조정 등을 주요 내용으로 발표했다. 이러한 내용의 금번 종합대책은 2007년부터 반성폭력운동진영에서 지속적으로 제안해 왔던, 형법개정을 통한 성폭력 관련 법률의 종합적 문제 해결 방향과 대치된다. 그동안 반성폭력운동진영은 형법 297조 강간죄 규정에 대한 ‘최협의 폭행?협박설’ 완화 및 모든 성폭력 범죄에 대한 친고죄 폐지, 유사성교행위의 강간죄 적용 등의 내용을 지속적으로 주장해왔다. 성폭력관련 법의 전반적 문제를 그대로 남겨둔 체, 장애인 성폭력 관련해서만 대책을 내놓는 것은 오히려 법률적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으며, 근본적으로 개인의 성적자기결정권 침해에 대한 보호법익과 관련하여 논란의 여지를 남겨 두게 된다. 또한 법조문으로 신설되고 추가되더라도 결국 법을 적용, 해석, 판결하는 사법부가 장애에 대한 몰이해,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무리 좋은 법이라 하더라도 의미가 없을 것이다.
또 장애인 피해자 보호를 위해 수사, 재판과정에서의 2차 피해 방지, 피해자 상담, 치료, 보호 기능 내실화와 전문기관 확충 등을 주요내용으로 발표했다. 장애인 피해자가 반복되는 진술, 형사절차 과정의 까다로움, 의사소통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형사 법적절차에서 가장 많은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부분이다. 피해자의 초기진술 확보에 주력하여 검찰이나 법원에 피해자가 소환되어 반복 진술하거나 증언하지 않도록 해야 하며 특히 정신적 장애가 있는 피해자의 경우 형사 법적절차 과정에서 피해자가 배제 당하지 않고 참여할 수 있도록 의사소통에 필요한 지원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전국에 20여개소가 있다. 2001년부터 10년이 넘는 동안 영화 ‘도가니’에 나오는 연두, 유리, 민수와 같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상담, 지원 요청이 끊이지 않았다. 상담소는 사회적 무관심과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지역사회에서, 장애인 시설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성폭력 사건들을 피해자 입장을 견지하면서 전문적으로 상담 지원하고 있으며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 치료프로그램, 가해자 교정 교육 등 장애인 성폭력 예방, 근절을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그러나 정부가 발표한 장애인 피해자와 가족 보호대책의 지원체계에서 장애인성폭력상담소는 언급조차 하지 않고 배제한 것은 지난 10여 년 동안 장애인 성폭력 문제 해결을 위해 고군분투 해 온 장애인성폭력상담소 활동에 대한 정부의 낮은 이해정도를 드러낸다. 장애인 성폭력에 대한 정부의 대책이 민간영역에서 오랜 시간 전문성을 담보해 온 장애인성폭력상담소의 활동을 인정함은 물론, 제도적 미비점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해야만 할 것이다.
여전히 장애인이 성폭력 피해 이후 상담하거나 지원을 요청할 단체, 기관 등이 부족하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의사소통이나 절차참여의 제한을 보조받아야 한다는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에 피해자와 그 가족들은 상담이나 치료, 보호를 제대로 제공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상황이나 특성을 고려한 피해자 지원체계에 대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며 그 일환으로 장애인성폭력전문상담소 및 보호시설(쉼터)을 확충하여 피해자가 상담 지원 받을 수 있는 선택권을 넓혀나가야 한다. 또 피해자보호시설 퇴소 이후 피해자 지원체계가 없어 피해 현장으로 되돌아가 또다시 성폭력 피해를 당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어 성폭력피해 장애인에 대한 장기 생활대책이 시급하게 마련되어야 한다.
이번 영화 도가니를 계기로 최초로 발표된 정부의 종합대책이 제대로 이행되고 보완되기 위해서는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와 가족의 아픔과 고통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그들의 인권 보호와 피해 회복을 위해 함께 한 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수렴하여 장애인 성폭력 관련 법률 제?개정 및 제도 개선에 반영해야 한다.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가 배제 당하지 않고 대상화하지 않도록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함께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지금 우리의 분노가 영화 속 피해자뿐만 아니라 수많은 장애인 성폭력 피해자의 인권을 향한 것이기를, 그리고 그들을 주인공으로 바라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1년 10월 10일
전국 장애인성폭력상담소 및 피해자보호시설
<상담소>거제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경북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경원사회복지회부설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실로암사람들부설광주장애인가정상담소, (사)울산장애인인권복지협회부설울산장애인성폭력상담센터, 의정부장애인성폭력상담소, 인구보건복지협회전북지회부설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인천광역시지적장애인복지협회부설인천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장애여성공감부설성폭력상담소, (사)전북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부설전주인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제주특별자치도지체장애인협회부설제주여성장애인상담소, (사)충남장애인정보화협회부설천안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충남지체장애인협회부설장애인성폭력아산상담소,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경남지부마산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광주지부광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대구지부대구여성장애인통합상담소, 대전지부대전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부산지부부산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전남지부목포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충북지부청주여성장애인성폭력상담소)
<보호시설>(재)청주교구천주교회유지재단 여성장애인성폭력쉼터‘모퉁잇돌’ (사)한국여성장애인연합(광주지부여성장애인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샛터’, 부산지부여성장애인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사랑의집’), (사)한국한아름복지회부설여성장애인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꿈밭에사람들’ 여성장애인가정폭력피해자쉼터‘새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