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류를 타고 있는 그녀에게 손을 내민다.
– 참새
당신에게는 위태롭고, 두려운, 그리고 오직 앞만 보고 달려가야 했던 절박하면서도 가장 용감했던 시기였어요. 1995년 방배동에서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안락하게 살고 있었지만 막연하게 당신의 장래에 대한 불안감뿐이었죠. 우연히 장애여성운동을 만났지만 그 구성원 중에 당신은 고입검정고시나 준비하고 있는, 가장 중증의 장애여성이었어요. 그래서 당신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요.
와중에 어머니가 혈압으로 쓰러지고, 장애여성운동에 독자적인 운동의 필요성이 나타났고, 아직 준비도 안 되었는데 여러 상황들은 언젠가 때가 된다면 독립하리라던 막연함이 현실로 다가오는 상태가 되어갔어요. 그 때부터 당신은 많은 것을 선택해야만 했죠. 그러나 그 어떤 것도 확실하게 계획되거나 준비되어져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당신은 독립을 하겠다고 선택했지만 겨우 오 백만 원과 전세 대출 일 천만 원 외에는,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인가에 대한 아무 준비도 없었어요. 그래서 국민기초수급대상이 되어 일단 기본적인 생계를 확보 하였죠. 그리고 일을 할 수 있는 교육을 받기 위해 여러 가지를 했지요. 텔레마케팅교육과 114안내교육, 성폭력상담원교육, 검정고시교육까지 받았어요.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이동과 정보와 여러 부문에 도움을 주는 사람을 찾아야 했고, 또 지원 해줄 수 있는 기관도 찾아 다녔고, 그리고 관계 맺기까지 정말 정신이 없었어요. 독립을 하면 가능한 가족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내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으니까요.
독립의 과정에서 아마 당신 혼자 하는 독립의 과정이었다면 독립의 의미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었죠. 만약 당신 혼자였다면, 이렇게 중심을 가지고 여기까지 올 수 없었을 수도 있었어요. 장애여성운동에 독립에 대한 중요성이 있었고, 그 중요성을 인정하며 함께 만 드는 힘이 되어준 소중한 동지들이 있었어요. 그러기에 오늘까지 당신이 독립해서 살 수 있는 것이죠.
당신에게는 장애여성에게 독립의 중요성을 인식해주는 동지들과 함께 만들어나갈 장애여성운동이 있었어요. 장애운동에 별로 필요성이 나타나지도 않고, 장애여성운동이 무엇이냐고 자신에게 스스로 질문해도 확신이 없었지만, 그러나 포기할 수는 더 없는 그 무엇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데. 아무런 자원도 인력도 없는 난감한 현실만 있었어요. 장애인 문제와 여성 문제의 어떤 토론회든 당신 혼자가 가서 손들고 장애여성의 입장에서 발언하고, 또 열심히 돌아다니며 존재를 알리고, 우리 안에서 토론하고, 글 쓰고 그리고 장애남성들의 상하는 비위에 대응하는 것도 당신이 해야 하는 것이었어요. 누구도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지만 당신 스스로 했었을 뿐이죠.
당신은 한 번도 해 본적 없는 조직을 만들고, 대표 책임이 생기면서 당신은 원하지 않아도 당연스럽게 생기는 권력에 대한 도전이 당신 스스로도 생소했었죠. 그래서 당신은 방어 자세를 가지게 되고, 당신에게 상처가 생기는 것을 어쩔 줄을 몰라서 혼자 억울해 하고, 외로워하고 슬퍼했죠.
매 순간이 당신에게는 첫 경험이었고, 순간의 선택들이 얼마나 자신이 없었는지를 말 할 수없는 당신의 입장은 늘 힘에 겨웠어요. 그러면서도 견디어 내고, 터득해 낼 수 있었던 것은 당신 안에서 쓰러지는 당신을 세워내는 빠른 치유력이 있었어요. 그것은 사람으로 대신할 수 없는 당신만의 신앙이 있기 때문이죠.
그래도 외로웠을 겁니다. 어느 땐가 당신이 활동가들 앞에서 공개적인 비판을 받아야 했을 때, 당신이 모든 열정을 두었던 장애여성공감에 대한 애정이 클수록 상처도 컸었죠, 결국 당신은 애정이 집착이 되는 것, 바로 그것을 버리기 위해 자신과 투쟁을 해야 했죠.
정말 힘들고 더욱 외로워지는 투쟁이었어요.
세월이 치유해주는 능력으로 당신의 기억에는 많이 흐려져서 지금은 웃을 수 있지만, 그 때는 죽을 만큼 많이 힘들었어요.
당신은 남들 앞에서 항상 웃고 명랑했지만, 당신 가슴은 항상 허물어지는 담벼락이었어요.
장애여성운동이 절박한 만큼이나 장애운동의 절박함도 당신에게 중요의미로 큰 자리를 하고 있었어요. 어느 날 당신이 정신 차리고 발견한 곳은 유치장 안이었어요. 삼십 년 가까이 고요하게 흐르던 당신의 시간이 어느 순간 급류가 되어 있었어요. 당신은 하루하루가 너무 바쁘고, 해야 할 일들이 많고, 경찰과 싸우고, 분노하고, 유치장에 들어가면서 여러 가지 고민도 많아졌어요. 더운 날, 때론 몹시 추운 날, 마지막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향할 때, 고덕역에서 당신 집까지 15-20분 달릴 때 느끼는 고독함…. 누구 한 사람 알아주지 않아도 해야만 했던 여러 가지 기억들….
급류에 아슬아슬 위태롭게 흘러가면서도 자기의지를 세워내던 그래서 너무 힘든 당신을 이제는 손을 잡아주고 싶어요. 당신은 순간순간 지치고 힘들 때 당신 손을 잡아주고 어깨 빌려줄 사람이 없었어요, 많은 사람들은 당신을 항상 밝고 늘 강하고 언제나 너그럽고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필요할 때 용감한 그런 사람으로 보죠.
그래서 당신은 외로웠고 슬프기도 했지만 당신은 잘 해냈어요. 오늘 당신의 손을 잡고 싶은 것은 당신에게 신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전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앞으로 더 가야 합니다. 언제든지 필요할 때 당신의 손을 잡아 드리겠습니다. 잊지 마세요.
※ 1기 장애여성학교 글쓰기반 문집 (글쓰기를 통한 행복한 추억여행)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