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 10년: 독립의 재구성, 장애인 자립생활운동의 새로운 실천
오늘 10주년을 맞이하는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이하 [숨]센터)은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장애인자립생활운동(Independent Living, 이하 IL운동)을 실천하고자 2005년 1월 28일 개소하였다. 그리고 장애인의 차별에 맞서 싸우는 장애인 IL운동 현장에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센터)와 함께 하면서도 젠더 관점으로 IL운동에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던지고, 긴장감을 주는 동료로 변함없이 연대하고 있다. 그래서 [숨]센터의 역사는 장애여성운동과 장애인 IL운동의 토대 위에서 교차성과 독자성을 동시에 지녀왔다. 10주년인 오늘 [숨]센터는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의 존재와 역사를 다시 드러내고, 그 의미를 공유하고자 한다. 지나간 시간을 반추하며 과거를 넘어서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의 위치를 진단하고자 한다.
2005년 개소 당시 [숨]센터는 환영받지 못했다. IL센터 주요 운영원칙인 전 장애영역 포괄에 어긋나는 ‘여성 센터’라는 평가는 장애남성을 배제한다는 편견으로 연결되었다. 서울시 지원 사업 평가기관으로부터 ‘여성중심의 프로그램이 대부분을 차지하여 남성장애인이 다른 자치구의 자립생활센터를 이용해야하는 문제점을 시정’하라는 요청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숨]센터는 이와 같은 센터 평가 방식이 획일적이고 제한된 지원체계와 프로그램만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또 IL센터의 특화성에 대한 편협한 사고에서 벗어나 IL운동의 현장이 좀 더 다양화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성운동이 남성을 배제시킨다는 낡은 화법처럼 이런 평가는 ‘여성 센터’로 규정된 [숨]센터의 차별적 위치를 실감케 했다. 서울시와 평가기관의 편협한 IL센터 기준과 사고뿐만 아니라 함께 운동을 하는 일부 IL센터들이 이에 동조하며 [숨]센터는 운동적으로 외로운 위치에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숨]센터는 장애여성독립생활운동을 계속 해 나가는 과정에서 단지 ‘우리도 IL센터’라고 인정받기를 원한 것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이런 논쟁을, IL센터가 어떤 대상을 지원할 것인가의 문제보다, 어떤 관점을 가지고 무엇을 지향할 것인가의 문제로 접근해야할 것이라고 보았다. 장애의 범주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있고, 장애인 안에는 성별, 계급, 인종 등의 조건들이 교차하며 무수히 많은 정체성들이 존재한다. 애초에 IL운동이 시작된 미국, 일본 등에서 ‘전 장애 영역 포괄’을 지향하였던 의미는 무엇인가? 장애유형별로 운동 현장이 너무나 나눠져 있었던 것에 문제의식이 있었고, 모두를 위한 IL센터가 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에 가까웠을 것이다. [숨]센터는 이런 취지가 오히려 IL운동이 장애인 안의 다양한 차이에 좀 더 주목하고 ‘모두’에 포함되지 않은 사람들이 누구인지를 고민하는 운동이 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그래서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이 한국의 IL운동을 새로운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것에 기여하길 바랐다.
오랜 시간동안 제대로 이해받거나 지지받지 못했지만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은 장애여성운동에서 고민하는 ‘독립’의 내용을 바탕으로 IL운동을 젠더적 관점에서 재구성하려는 시도를 계속해 왔다. ‘장애인은 의존적인 존재’라는 인식을 거부하는 것을 넘어 ‘의존과 독립의 관계’를 재해석하고, 제도와 권리 확보를 통한 물리적 독립뿐 아니라 관계적으로 평등해지고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해 왔다. 독립이란 어느 특정 시기가 되면 도달되거나 과제수행 후 얻어지는 ‘결과’가 아니라 전 생애를 걸쳐 매순간 시도되는 ‘과정’이다. 그래서 삶의 순간마다 독립은 다른 주제들과 연관성을 가진다.
2009년 장애여성주거권실태조사에서 물리적인 공간 확보뿐 아니라 장애여성의 공간 선택권과 주도권, 안전과 폭력 피해의 문제를 다룬 것이 그 한 예이다. 또한 독립에 대한 담론을 현장 안에서 더 많은 장애여성과 공유하고자 했다. 기존 ILP(독립생활프로그램)이 체험 위주로 많이 진행되고 있을 때 [숨]센터는 독립의 개념을 먼저 질문하고, 자신이 바라고 꿈꾸는 독립적인 삶을 구체화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진행했다. 독립의 개념을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재구성하는 몇 년간의 이런 시도 끝에 2012년 <나의 독립찾기> 책으로 내용을 정리했으며 최근에는 발달장애여성 ILP를 시도하며 지체장애인 중심의 IL운동에 대한 성찰적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 양성방식과 내용, 동료상담가 자격인증 등으로 논쟁중인 장애인 동료상담의 경우도 그러하다. [숨]센터는 활동초기부터 동료의 개념을 고민할 때 생물학적 당사자주의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복합적인 정체성을 가진 장애인 그룹을 조금 더 고려한 내용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장애인 동료상담을 특권화 시키기보다, 전문가주의에 맞서 당사자들 스스로가 서로 상담을 하고, 정보를 나누고 동료지지적인 관계 속에서 힘을 키워가는 소수자운동의 전통과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고자 했다. 또한 [숨]센터가 2010년 활동보조 제공기관을 시작한 후에는 활동보조 현장의 다양한 역동에 좀 더 주목했다. <활동보조 인권지침서: 이것부터 시작해요!>를 발간하며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문제와 갈등을 해결하는 관점을 제시하고자 했다. 활동보조 현장은 여러 가지 차원에서 장애인의 삶과 연결되어 있는 만큼 보조를 주고받는 관계의 복잡한 감정들에 대해서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앞으로 더 많은 언어를 찾아나갈 것이다.
최근 몇 년 연이은 장애인들의 사회적 죽음을 목격하면서 [숨]센터도 함께 분노하며 살아있는 우리들의 의로운 싸움의 몫을 절감한다. 특히 한국의 장애인 IL운동을 오랫동안 함께 해왔던 동지들의 죽음에 슬픔과 안타까움이 가득한 겨울을 보내고 있다. 또 그만큼 장애인IL운동의 운동성이 변화될 수 있다는 최근의 우려에 더 많은 책임감을 느낀다. IL운동의 제도화에 계속 긴장감을 갖고 문제의식을 함께해온 [숨]센터는 장애여성의 삶 자체를 제도에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 우리의 욕구와 경험으로 재구성하여 이야기하며 사회변화를 위해 실천할 것이다.
다가오는 3,4월에 [숨]센터는 IL과 젠더라는 주제로 몇 가지의 이슈를 점검하고 진단하는 토론의 자리를 마련한다. 많은 분들이 함께하고 의견 내어주시길 바란다. 10년을 지켜온 용기로 다가올 10년을 차별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과 함께 사회의 변화를 위해 현장에서 실천하고 싸울 것이다.
2015년 1월 28일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