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당 글은 2018년 4월 5일 전국성폭력상담소협의회 장애권역 4·9행사 발언한 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지난 1월 현직 검사가 방송에 나와 8년 전 성폭력 피해를 드러내면서 우리 사회의 me too 운동은 시작됐습니다. 연예계과 문화계, 그리고 학계와 정치계까지 우리사회가 진보니 보수니 나눌 것도 없이 성차별적인 젠더권력을 얼마나 아무런 거리낌 없이 휘둘러 왔던가를 명확히 보여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me too운동은 어느 날 갑자기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인권과 폭력에 대한 우리 사회의 낮은 감수성, 그리고 성차별적인 이중 잣대로 인해 피해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침묵을 강요하던 차별의 결과입니다.
여기서 “me too” 의 의미는 “나도 당했다”가 아니라 “나도 고발한다.” “나도 증언하겠다.” 로 해석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폭력 피해경험을 한 사람들을 더 이상 피해자가 아닌 피해 생존자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이제는 성폭력 피해자에게만 덧씌워졌던 ‘수치스러움’이라는 굴레를 깨고, 진정 부끄러워하고 비난을 받아야 하는 이는 바로 가해자들이라고 외치며, 자신들에게 가해졌던 폭력을 증언하는 증언자로 당당히 나서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묻습니다. “왜 장애인은 me too를 하지 않나요?” 라고. 이러한 질문의 이유가 me too라는 전형적인 방법이 있으며, 누구나 다 그러한 방식으로 피해경험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되묻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이야말로 또다시 정상성이라는 기준으로 장애여성의 언어를 생략하고 삭제하는 차별일 것입니다. 또한 고발하는 방식에도 위계를 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이것은 많은 장애여성들이 전생애를 통해 폭력으로도 해석되지 못하는 일상의 차별을 경험하며 교육과 정보, 기회로부터 배제되었던 삶의 경험과 맥락을 무시한 채, 장애여성도 비장애여성과 같은 방식으로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강요하는 것입니다.
또한 ‘me too도 할 수 없는 장애인들‘이라는 언론의 보도를 종종 접하게 됩니다. 특히 시설 내 성폭력과 이러한 피해를 드러내지 못하는 취약한 위치의 장애여성들이 사례로 등장합니다. 실제 시설 외에는 살 곳이 없어 피해를 말할 수 없는 장애여성들, 그리고 소위 보호자라고 하는 가족과 주변인으로부터 가정폭력과 성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지역사회의 장애여성들, 모두 인간으로서 안전하게 살 기본적인 권리마저 박탈당한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장애여성 개인이 무능하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장애여성의 성폭력은 결국 자원과 권력의 불평등의 문제이며, 이러한 불평등을 개인의 책임으로 떠넘기면서 장애여성이 시설 외에는 갈 곳이 없도록 만든 우리 사회의 무능입니다. 가족에게 책임지라 말하며 장애여성의 인권과 안전을 보장할 책임을 방기한 국가의 직무유기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바라는 안전한 사회는 장애여성을 포함한 구성원 모두가 평등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사회입니다.
지난 10년간 4월 이면 전국의 주요도시에서 돌아가면서 장애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에 대해 알리고 이를 근절하기 위한 인식개선 캠페인을 진행해 왔습니다. 장애여성의 me too는 이미 10년 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전부터 이어져오는 현재 진행형의 외침입니다. 장애여성의 언어로, 장애여성의 방식으로, 장애여성의 속도로 우리는 우리에게 가해지는 폭력을 증언할 것입니다.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의 범죄와 폭력을 이제는 동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성평등하고 안전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우리 모두의 과제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제 장애여성의 me too에 여러분이 with you로 응답할 차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