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의 화원 (1기 장애여성학교 글쓰기반 문집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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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의 화원 

– 참새

 

   한 여름 소나기가 한 차례 쏟아지고 나면 가지가 휘어지도록 무거운 꽃봉오리를 들고 있던 수국이 초라한 모습을 모이던 나의 화단, 친구도 없이 혼자 놀아야 했던 나를 위해 마당 한 쪽 가장자리 조개껍질을 정성스럽게 장식해주시던 할머니의 정성이 담긴 긴 화단이 있었다. 그 곳에는 무성하게 꽃은 피우던 수국과 석류나무 한 그루, 그리고 화단을 출발한 장미는 담을 타고 한 없이 빨간 꽃을 피워냈다.

   물동이에 담겨져 빨려온 발발이 어린 강아지 한 마리, 내 품에 한 번 안아 본 이후 밤엔 내 이불 속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까만 눈이 너무 예뻐서 매일 눈을 한 번은 꼭 마주해야했던 메리는 유일한 나의 친구였다. 내가 아무리 귀찮게 해도 사나운 모습을 보이지 않던, 나에겐 순한 개였다.

   어느 날 나의 곁에 친구들이 한 명씩 사라져 갔다.

   신기하고 예쁜 장난감을 많이 가지고 있던 나에게 늘 놀러오던 친구들이 학교를 다니게 되면서, 학교를 가지 못하는 나를 찾아오지 않기 시작했다. 나는 기다림을 배워 갔다.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그러면서 포기도 배우고, 체념도 배웠으며, 친구들과 나는 다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도 배워간 것 같다. 

   그렇게 어린 나의 일상은 햇살이 좋은 날 화단 곁에 돗자리를 깔고 메리와 노는 것이었다. 메리 눈동자를 한 없이 보면서 메리의 여러 감정의 변화를 볼 수 있었고, 그러다 지치면 메리의 배를 베고 낮잠을 자고, 그러다 괜히 짜증나면 메리의 귀를 잡고 흔들어도 메리는 꼼짝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메리는 내가 화단 곁에 나와 앉으면 잠시도 내 곁을 떠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낯선 사람들이 내 곁에 오면 눈빛이 달라지고 자세가 달라졌던 것을 보면 나름 나를 지키는 사명감이 있었나 보다.

   나의 생애 가장 평화롭고 가장 안락하며 가장 가슴이 따뜻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따사로운 빛과 화려한 수국과 장미와 석류의 탐스러운 화단 그늘 아래에서 개와 놀고 있는 몸이 불편한 소녀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답기까지 하다.          
사람 사는 걱정도 고민도 없는 또 다른 세계였다. 

   그러나 그 아름다운 기억의 한편으로는 가슴 깊은 곳에서 스물거리는 슬픔이 있다. 그것은 다시 이렇게 따뜻하고 편안한 순간이 있을까라는 생각도 들고 또 기다림과 체념과 나의 현실을 인식해 가는 시간들과 그것을 인정해가야 했었던 것들과 그리고 점점 더 크게 다가오는 외로움….

   그리고 이젠 내가 사랑해 줘야 할 사람들이 더 많아지고 있지만, 내가 어떠한 잘못을 하여도 무한정의 용서와 사랑을 주던 할머니도 메리도 없다. 

   어느 순간 비밀의 화원에서 어린 내가 없다. 대신 나는 삶이 분주하다. 사람다움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비밀의 화원에서 나는 부재하다.

※ 1기 장애여성학교 글쓰기반 문집 (글쓰기를 통한 행복한 추억여행)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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