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체계에서 ‘여성피해자’의 권리?

사법체계에서 ‘여성 피해자’의 권리? : 
‘(사법)절차보조인’ 입법을 준비하며
 

지성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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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피해여성(그리고 다른 ‘여성폭력’ 피해 여성)은 ‘피해자’라는 이유만으로 법률체계에서 다른 위치와 상황을 경험하게 된다. 성 관련 범죄는 진공상태에서 개개인의 범죄 행위자와 피해자 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니라, 성별권력관계와 왜곡된 성문화 안에서 발생한다. 사법체계 역시 이러한 문화에 놓여있으며, 바로 그만큼의 성차별적이고 왜곡된 법문화를 재생산해 낸다. 성폭력 범죄의 수사나 재판을 하는 대부분의 공무원들 역시 남성이다. 성폭력피해 여성은 바로 이러한 문화와 사법체계 안에서 피해자임에도 피해를 인정받지 못하거나,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하거나, 심지어 또 다른 피해를 입어야 한다.

문제는 남성중심적 성문화와 성별권력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 사회에서 수많은 장애여성이 왜곡된 성문화와 교차해 작동하는 장애에 대한 차별 및 폭력 속에서 성폭력 피해자로 드러난다. 그리고 폭력을 경험해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고소를 결심한 장애여성들은 사법체계 안에서 또 다른 차별과 박탈을 경험해야 한다. 장애여성은 그들을 성폭력 피해자로 내모는 다층적 사회 권력구조 속에서 최소한의 자기주장과 방어를 할 수 있는 힘과 언어를 갖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들이 살면서 겪은 어느 순간의 폭력, 혹은 전 생애적 폭력이 고소로 이어지게 된다한들, 사법체계 안에서 가해자를 처벌하고 피해를 입증하는 일이 결코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으며, 고소에서 수사, 재판까지의 과정이 피해 장애여성 개개인에게 순조로울 수는 없는 일이다.

이렇듯 다양한 폭력 피해여성들이 자신의 피해를 소통하는 것에서부터 피해를 입증해 가해자를 처벌하기 까지 과정이 순탄치 않다는 사실은, 사법적 정의 실현이라는 법의 기본정신과 근본적으로 대치될 수밖에 없다. 그러함에도 사법체계에서 여성폭력피해자의 권리침해를 방지하여 진정한 사법 정의 실현을 도모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서는 거의 논의된 바가 없다.

그런데 올해 7월 법무부는 성폭력피해를 경험하였으며, 13세 미만 아동이거나 장애인인 피해집단일 경우 ‘법률조력인’이라는 제도를 도입해 이제껏 간과되어온 피해자의 사법적 권리를 확보하겠다고 밝혔다(법무부공고 제2011-112호, 성폭력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개정안 입법 예고). 그러나 법무부안은 그 법개정 취지에도 불구하고 성관련 범죄를 ‘성폭력’범죄에만 한정하였으며, 법률조력인 수혜 대상을 납득할 만한 기준 없이 13세 미만 아동과 장애인만으로 상정하고 있다. 성폭력, 가정폭력, 성매매 등 여성폭력은 그 범죄를 재생산해 내는 메커니즘이 성별권력과 가부장제 성문화라는데 근본적인 공통점이 있으며, 따라서 이러한 범죄피해에 놓인 여성들이 사법체계 안에서 유사한 상황과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또한 법무부가 “취약집단”으로 묶어 명명한 아동과 장애인은 ‘취약집단’이라는 이름하에 동등하게 묶일 수 없는 다른 사회적 상황에 놓이며, 사법절차 상 어려움 역시 전혀 다른 양상으로 드러난다. 이와 같은 이유들로 인해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법률조력인’ 제도는 ‘여성폭력’ 뿐 아니라 ‘취약집단’에 대한 굉장히 피상적인 이해를 기반으로 하며, 법의 실효성과 기대효과 등 면에서 굉장히 우려를 살만한 것이라 하겠다.

본 상담소는 올해 초부터 전문법조인, 성폭력·성매매 등 폭력피해여성 지원단체들과 함께 ‘사법절차보조인’ 제도를 도입할 방안을 연구하고, 구체적인 입법을 위한 준비를 해왔다. 상담소는 성폭력피해 장애여성을 위한 법적 지원활동을 해오면서, 가해자 처벌이라는 최종 단계에서 뿐 아니라 고소에서 수사, 재판까지 과정 안에서 ‘성폭력피해 장애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러 겹의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이들의 현실을 보아야만 했다. 폭력피해 여성들이 체계나 정책의 공백 속에서 또 다시 권리 침해의 경험을 반복하지 않도록 사법절차 전 과정을 지원함은 물론, 다양한 법적 의견개진을 통해 피해를 구제받도록 지원하여 진정한 법정의 실현을 도모하는 일은 일선 지원단체(상담소) 활동의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러함에도 단체의 ‘보조’ 역할은 수사·재판 기관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성별이나 성性, 장애 등으로 취약한 위치에 놓여있기에 이들의 상황이 사법체계 안에서 원활히 소통되어야 하지만, ‘취약성’에 대해 근본적 성찰이 없는 사법체계가 당사자는 물론 지원자의 언어·위치를 인지하지 못하거나 배제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절차보조인’은 이와 같은 이유에서 입법 필요성이 제기되는 중요한 사안이다. 상담소는 연대단위들과 함께 법안을 마련 중이며, 오는 9월 광범위한 지원단체들과 간담회를 통해 이 제도가 보다 내실성과 효과성을 가지도록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을 거쳐 입법에 전념할 예정이다. 법/권리/정의, 그리고 다양한 여성폭력피해자의 ‘취약성’. 이들 단어와 개념이 동떨어져 있는게 아니라, 최소한 사법체계 안에서는 상생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위 사진: 2010.10.21 개최 '장애인성폭력사건 법률 쟁점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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