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 의한 지적장애청소녀 성폭력사건에 대한 성명서
지난 2010년 4월 4일, 장애여성공감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이하 상담소)는 성폭력사건으로 지속적인 상담을 진행하고 있던 내담자(18세, 지적장애) K 로부터 또 다른 피해사실을 듣게 됐다. K가 4월4일 경험한 성폭력사건의 경위는 상담소를 분노와 절망에 빠뜨리게 하는 것이었다.
K는 지적장애를 가졌으며 현재 고등학생이다. 이혼하고 홀로 자식들을 부양하고 있는 K의 아버지 역시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어 기초생활수급권과 장애수당으로 세 가족이 어렵게 생활을 하고 있다. K는 자신의 장애와 가정 및 사회환경으로 인해 교사와 경찰, 복지사 등 자신과 관계한 공적 기관이 자신을 언제나 도와주고 지지할 거라는 무한한 신뢰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K는 지난 3월경 집 주변에서 경찰제복을 입고 다니던 가해자 김씨(50대)를 만나 고충을 상담하면서 아무런 의심도 없이 김씨에게 자신의 인적사항을 알려줬다. K의 장애특성과 상황을 파악한 가해자 김씨는 사건이 발생한 4월4일, K를 불러내 위력과 위계를 사용해 K에게 성폭력을 가했다. K는 자신이 전적으로 신뢰하고 있던 경찰에게 무자비하게 성폭력을 당하면서 아무런 저항도 하지 못하였고, 또한 사건 후 가해자가 건네주는 현금 역시 무력하게 받아야 했다.
K는 자신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스스로 인지했고, 즉시 112에 신고했으며, 신고를 받고 경찰이 K에게 달려왔다. 그런데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온 경찰은 다름 아닌 가해자였다. 가해자는 사건을 신고하지 말라고 K를 설득하고 나서 ‘허위신고’라고 경찰 상부에 보고하는 등 파렴치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상담소는 본 사건을 인지한 후 K의 심리상태와 가족이 받을 상처 등을 고려해 조심스럽게 사건을 지원하기로 하였다. 그럼에도 언론이 사건을 인지하게 돼 빠른 속도로 인터넷과 방송 등에 보도되고 있으며, 그것도 ‘경찰이 장애소녀를 성매수’ 했다며 왜곡 보도되고 있다. 이에 상담소는 심각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사건 경위에서 드러나듯, 가해자는 경찰이라는 업무상 지위와 피해자가 지적장애여성이라는 점을 이용해 성폭력을 가했다. 전국 장애인성폭력상담소 사건사례의 피해자 중 70%에 육박하는 수가 지적장애를 가지고 있으며, 성폭력피해 지적장애인의 상당수는 장애특성 상 가해자의 작은 위협, 협박, 유인, 매수 등으로도 가해자의 의도대로 쉽게 이용당하는 사례가 많다. 특히 이번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사회적 권위를 가진 경찰이었고, 피해자가 평소에 경찰 집단에 강한 신뢰를 가지고 있었던 점 등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지적장애인은 피해를 둘러싼 상황에 대처하는 데 있어서 본질적인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피해자는 가해자가 전화를 걸어 나오라고 할 때 아무런 의심 없이 만나러 나갔으며, 사건 후 자신이 성폭력을 당했다고 스스로 인식하면서도 가해자가 건네주는 돈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갔고, 가해자가 경찰이었지만 피해 직후 112에 바로 신고를 하였다.
성폭력사건은 다양한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권력과 힘에 의해 발생한다. 때문에 성폭력사건을 접할 때 피해/가해자의 사회적 관계망과 특수성에 주목해야 한다. 여기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상황이다.
피해자 K는 이번 사건으로 인해 충격과 좌절감으로 몸을 떨고 있다. 그런데 피해자나 가족의 의사에 반하여 사건이 언론에 무작위로 보도되고 있는 것은 물론, 마치 이번 사건이 돈 거래를 빌미로 한 성매수인 것처럼 왜곡되면서 피해자와 가족은 더 큰 상처를 받고 있다.
이에 상담소는 이번 사건이 법의 공정한 잣대로 엄중하고 신속하게 진행되기를 촉구한다. 검찰은 본 사건의 가해자를 성폭력 범죄로 기소함은 물론, 가해자의 신분과 피해자의 상황 등을 충분히 고려해 성폭력범죄의처벌및피해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 따라 그 죄를 가중하여 물어야 할 것이다.
또한 성폭력사건에 대한 언론의 보도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과 교육적 효과는 엄청나다 할 것이다. 그것이 가지는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의도와 상관없이 피해자에게는 더 큰 상처와 아픔을 남길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며, 지적장애인이나 아동 등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더욱 철저한 민감성을 발휘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2010년 4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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