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유죄 판결은 끝이 아니다 :장애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 종식을 위한 엄중한 책임을 촉구한다

유죄 판결은 끝이 아니다 :장애여성에 대한 구조적 폭력 종식을 위한 엄중한 책임을 촉구한다

2026년 4월 1일, 광주고등법원 제주제1형사부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이하 옹호기관) 조사관의 지위를 이용해 장애여성을 상대로 성폭력을 저지른 피고인에게 원심과 같이 징역 10년을 선고하였다. 우리는 이번 판결이 장애여성의 취약한 사회적 조건을 악용한 범죄의 중대성과 죄질의 엄중함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이를 환영한다.

그러나 우리는 이 판결이 결코 끝이 될 수 없음을 단호히 밝힌다.

본 사건은 장애인 인권침해를 예방하고 피해자를 보호해야 할 옹호기관 내부에서 발생한 범죄로, 조사관이라는 지위와 권한을 이용한 전형적인 위력에 의한 성폭력이다. 피해자는 사회적 고립과 보호 공백 속에서 지원기관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었고, 가해자는 바로 그 구조적 취약성을 악용하여 범행을 반복하였다. 이는 결코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권력과 위계, 그리고 제도의 허점이 결합된 구조적 폭력이다.

이와 같은 사건은 비단 제주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인천중증장애인 거주시설 색동원 사건은 거주시설이라는 공간 안에서 장애여성이 통제되고 고립되는 구조 속에서 폭력에 노출될 수밖에 없음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이에 우리는 분명히 제기한다. 이 사건의 본질은 장애여성의 선택과 거절이 배제되는 사회 구조의 문제이다. 결코 징역 10년 선고로 사건이 해결되었다고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분명히 기억해야 한다. 악의적이고 반복적인 범행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는 범행을 축소·부인하며 책임을 회피하였다. 또한 중증장애여성의 진술 신빙성을 문제 삼고, 보호자와의 합의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피해자의 진술과 존엄을 지속적으로 훼손하였다. 이는 반성이 아니라 또 다른 가해이며, 사법 정의에 대한 명백한 부정이다. 동시에 이는 장애여성의 선택과 결정이 보호자의 의사에 종속되는 구조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기도 하다.

‘보호’를 명분으로 장애여성을 가족, 보호자, 거주시설이라는 관계와 공간에 종속시키는 배제와 차별은 당사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외부와의 단절을 심화시켜 왔다. 그 결과 장애여성은 폭력에 더욱 취약한 환경에 놓여 왔다. 보호가 권력으로 작동하는 순간, 그 관계는 언제든 통제와 폭력으로 전환될 수 있음을 본 사건은 다시 한번 분명히 보여준다.

더욱 심각한 것은 국가와 지방정부의 오래된 책임 방기이다. 해당 사건에서 가해자에 의한 추가 피해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청이 ‘당사자 의사’를 이유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은 태도는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구조적 폭력에 대한 방조에 가깝다.

또한 우리는 이번 사건의 배경에 옹호기관의 역할과 권한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못한 구조적 한계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옹호기관은 형식적인 조사와 지원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독립성과 실효성을 바탕으로 인권침해를 감시하고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사건 지원을 넘어, 피해자와 동료시민의 관계를 맺고 사건 이후의 삶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본 사건을 계기로 제주도청과 보건복지부는 관련 조례 개정을 통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권한과 책임을 명확히 하고, 인력·예산·조사권 등 실질적인 권익옹호 활동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보장을 즉각 마련해야 한다. 권한 없는 보호는 책임 없는 방치에 불과하다.

우리는 단호히 선언한다. 징역 10년이라는 형량만으로 이 사건은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처벌의 종결이 아니라, 피해자의 삶을 어떻게 회복시킬 것인가에 대한 실질적이고 구조적인 조건을 만드는 일이다. 피해자는 여전히 고립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으며, 독립과 선택을 존중받지 못한 채 관계와 신뢰의 붕괴를 홀로 감당하고 있다. 가해자의 처벌은 끝났으나, 피해자의 삶은 회복되지 않은 채 방치되어 있다.

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은 반복되어 온 구조적 폭력이다. 우리는 더 이상 피해자의 침묵 위에 세워진 보호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보호’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 통제를 결코 묵인하지 않을 것이다. 실질적인 피해 회복 없는 판결은 정의가 아니며, 사건 이후의 선택과 독립을 책임지지 않는 국가는 또 다른 폭력이다. 우리는 피해자의 권리가 온전히 회복되고, 이 구조적 폭력이 근본적으로 해체될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이 강력히 요구한다.

첫째, 사법부는 구조적 권력관계와 가해자의 책임 회피를 엄중히 반영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실질적 조치를 마련하라.
둘째, 제주도청과 보건복지부는 ‘보호’라는 이름 뒤에 숨지 말고, 모든 피해자에 대한 전면 재조사와 실질적 피해 회복 대책을 즉각 시행하라.
셋째, 제주도청은 조례 개정을 통해 장애인권익옹호기관의 독립성과 조사권, 실질적인 권익옹호 기능을 보장하라.
넷째, 보건복지부는 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거주시설 전반에 대한 독립적이고 상시적인 감시·조사 체계를 구축하라. 이를 통해 보호를 명분으로 한 통제 중심의 가족 중심 정책을 전면 재검토하고, 장애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중심으로 한 지원 체계로 전환하라.

 

2026년 4월 3일


제주장애인권익옹호기관성폭력사건공동대책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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