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공감 웹소식지 [구불구불 세 번째 독립] 공간이동 특집호①>흙탕물, 똥 오줌 환영합니다!

흙탕물, 똥 오줌 환영합니다!

 

고나영(장애여성공감 활동가)

9월 말, 제주여성영화제에 춤추는허리 <농담> 상영 일정으로 동료들과 함께 제주에 갔다. 모든 이들이 쉬어갈 수 있는 제주 삼달다방에서 며칠 간 묵었다. 잘 정돈된 방을 보면서 나는 서울에서처럼 숙소 밖 마당에 전수동휠체어를 세워놨다. 제주는 쨍쨍하다가도 갑자기 비가 쏟아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그치기를 반복했다. 첫날 밤, 일정을 마치고 침대에 눕자마자 비가 쏟아졌다. 옆 숙소에서 자는 동료를 급하게 깨워 부랴부랴 문화동(삼달다방에 오는 이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한쪽에는 삼달다방을 오가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휠체어들이 줄지어 놓여있다.)으로 휠체어를 옮겼다.

제주 삼달다방 입구 전경

[사진 1] 제주 삼달다방 입구 전경

장애여성공감 무지개 손수건이 의자에 걸려진 삼달다방 문화동 모습.

[사진 2] 장애여성공감 무지개 손수건이 의자에 걸려진 삼달다방 문화동 모습.

삼달다방의 개뿔님은 약간 의아한 듯, 홀딱 젖은 우리를 보며 숙소 안에 휠체어를 둬도 된다고 이야기해주었다. ‘아…맞다. 나는 왜 비 맞고 흙 묻은 휠체어를 당연히 방에 들여놓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지?’ 걸어다니는 뇌병변의 휠체어를 대하는 안일함…도 문제지만 꼭 그것만은 아니다. 궂은 날에는 걷기 힘드니 보통 휠체어를 탄다. 내가 안타더라도 휠체어를 탄 동료들과 함께할 때 날이 궂으면 궂을수록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도 쉽지 않지만, 들어가도 되는 공간으로 감각하는 건 생각보다 용기가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의자 두 개를 어딘가로 치우고 휠체어가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을 스캔하기, 휠체어 때문에 바닥에 스크래치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지 않기, 비라도 맞으면 바퀴 자국대로 생긴 검은 물길을 못 본 척하거나 최대한 덜 미안해하며 양해를 구하기, 열매나 오물 등을 바퀴로 밟은 직후 공간에 가득 퍼지는 고유한 냄새를 눈치보지 않고 설명하기 등등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땐 여러 미션을 수행해야하기 때문이다. 보통 들어갈 곳을 찾은 것만으로 안심할 것이라 생각하지만, 어떤 실내든 썩 편하다는 느낌이 들진 않는다. 차별을 겪는 건 아니지만, 어쨌거나 반갑지 않은 손님 느낌? 여러 사람들의 체취와 온갖 물건들의 향이 배인 삼달다방에서 느껴지는 환대와 깔끔하고 큰 호텔이나 카페 등에서 겪었던 멋쩍음의 감각은 쾌적한 공간과 친절함으로 메꿀 수 없다.

 

제주도 오르막길에서 전수동휠체어를 밀며 함께 올라가는 모습.

[사진 3] 제주도 오르막길에서 전수동휠체어를 밀며 함께 올라가는 모습.

제주도 일정 중 이동하는 모습. 전동휠체어 위에 어린이동료가 올라타고 있다.

[사진 4] 제주도 일정 중 이동하는 모습. 전동휠체어 위에 어린이동료가 올라타고 있다.

결국 와상휠체어가 드나들 수 있고 신변지원이 가능한, 젠더퀴어들이 편히 갈 수 있는 모두의 화장실 등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너무나 많지만, 공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환대받는 공간/쉬어가는 느낌이 드는 공간인 것 같다. 여러 생각과 마음으로 눈치보며 두리번거리고, 제각기 다른 몸을 드러내고, 여러 불쾌한 냄새가 나기도 하는 공간. 그런 몸과 냄새와 촉감을 별로 개의치 않으면서, 만나서 반갑고 환영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 공간은 정말 별로 없을 테니까. 공감의 다음 공간이 기후위기, 장애, 차별로 인해 지친 사람들이 끈적한 몸으로 충분히 머무르다 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탈시설 동료들과 교육장에 누워서 활동하는 모습.

[사진 5] 탈시설 동료들과 교육장에 누워서 활동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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