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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보장하지 못하는 종합조사표, 분명한 차별이다

김보연(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

삶을 재단하는 종합조사표에 저항하라!

나는 공감에서 활동지원 코디네이터 역할을 주로 하고 있다. 매월 첫째주는 활동지원사들이 한 달 동안 이용인들에게 지원한 서비스의 내용이 적힌 일지를 받고 확인한다. 그런데, 나는 몇몇 이용인의 일지에서 마지막 주쯤이면 서비스 제공 기록이 비어 있다는 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이 기간 동안 이용인은 누구에게 지원을 받고 있는 걸까 라는 자연스러운 의문이 생겼다. 모두 공통된 답변이 서비스 시간이 부족해서, 바우처 결제를 할 수 없고, 가족이 대신 지원하거나, 이용인이 사비로 결제하고 있다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활동지원시간을 늘리기 위해 어떤 시도를 했는지 묻자, “부족한 시간을 말해 보았지만, 늘 같은 구간을 받게 되었다, 가족 구성원 중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구성원이 있어 점수를 더 받을 수 없다, 혹은 현재의 종합조사표상 더 이상 줄 수 있는 점수가 없다” 등의 답변만을 받았다고 했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종합조사표가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실제 돌봄에 대한 요구는 무시한 채 이용인의 삶을 단순화된 점수표 안에 억지로 끼워넣고 있음을 알았다. 

정부는 “장애인 중심의 맞춤형 지원체계”를 만들겠다고 활동지원제도를 만들었지만 실제 활동지원제도를 이용하기 위해 쓰이는 종합조사표는 새로운 이름의 등급제나 다름없이 작동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속에서 올해 8월 전장연은 당사자의 욕구와 필요에 맞춘 활동지원시간 보장을 요구하는 본격적인 투쟁을 시작했다. 공감에서 활동지원 연계를 하고 있는 이용인 A님도 이 투쟁에 함께 했다. 

A님은 샤르코-마리-투스를 갖고 있는 노년의 지체장애여성이다. 활동지원 구간은 11구간(180시간)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장애가 심해지면서 시력이 점점 나빠졌고, 최근 폐의 근력이 약해져 호흡기를 사용하고 있다. 호흡기를 착용하지 않으면 호흡곤란이 오거나 응급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A님의 경우 실제 24시간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의신청도 여러 번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25년 8월 8일 변경신청서를 제출하고, 이어 9월 1일 국민연금공단의 현장조사에서 조사원에게 지원 시간 확대에 대한 필요성과 시급성을 설명했다. 또한 9월 17일에는 국민연금공단 강동하남지사와 면담을 통해 A님의 다급한 상황을 다시 전달하고, 24시간 지원을 보장해 줄 것을 공식적으로 요구했다. 하지만, 실무자는 종합조사표의 한계를 인지한다고 하면서도 본인의 권한을 넘어서는 일이라며 소극적인 대답을 반복할 뿐이었다. 9월 25일, A님의 변경신청 결과 기존 11구간에서 10구간으로 한 구간 상승하긴 했지만, 24시간 지원과는 너무 먼 결과였기에 우리는 즉시 다시 이의신청을 진행했다.

이의신청을 준비하던 과정에서 A님의 호흡에 위급상황이 발생했다. 아산병원 응급실로 이송되어 입원 치료를 받는 중에도 공단에서는 확실한 답변을 주지 않았고, 이대로라면 다시 동일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 예상되었다. 결국 우리는 점거농성을 선택했다. 실제로 A님이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직접 보여주기로 했다. A님은 점거농성에 함께 하기 위해 구급차를 타고 이동하였고, 이동하는 중에도 산소포화도가 낮아져 위험한 상황이 있었다. A님과 동료들이 사무실 한켠에서 투쟁을 이어가는동안에도 공단측은 성의없는 태도로 일관하며 구간상승에 대한 답변은 줄 수 없다는 이야기만 반복했다. 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서 온 몸으로 투쟁하고 있는 A님의 삶은 바로 옆에 있음에도 여전히 그들에게 보이지 않는 듯했다.

나는 점거농성을 하고, 면담을 하는 내내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걸까라는 답답함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살기 위해 필요한 지원을 요구했을 뿐인데, 그걸 입증하기 위해 끊임없이 받아야 했던 질문들이 떠오르며 그 답답함이 분노로 다가왔다.

<사진 1. 10월 16일 강동하남지사 점거 농성 사진. 국민연금공단 강동하남지사 사무실에서 전장연 소속 활동가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A님을 바라보고 있다. 한 활동가가 투쟁 상황을 동지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사진 1. 10월 16일 강동하남지사 점거 농성 사진. 국민연금공단 강동하남지사 사무실에서 전장연 소속 활동가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A님을 바라보고 있다. 한 활동가가 투쟁 상황을 동지들에게 공유하고 있다.> 

 

장애인의 ‘능력없음’을 만드는 종합조사표의 맹점

음식은 얼마나 잘라서 줘야하는지. 약은 혼자서 삼킬 수 있는지, 주로 누워서 생활한다는데 TV의 왜 저 위치에 놓여져 있는지. 음식을 잘라서 먹는다면 대소변의 양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어딘가에 기대면 앉아있을 수 있는건지 등.. 스스로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증명하고, 끊임없이 삶을 의심하는 질문을 반복해서 받아왔다.

종합조사를 할 때, 혹은 부정수급 조사를 할 때 심야시간 서비스는 부정수급으로 취급된다. 욕창이 생기지 않게 몸을 뒤집어야 할 수도 있고, 수면 중에 호흡기가 틀어지지 않는지, 가래가 기도를 막지는 않는지 살펴야 할수도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는 돌봄노동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에도 당사자가 자고 있으니 노동시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종합조사표는 X1 기능제한영역, X2 사회활동영역, X3 주거특성영역으로 나뉘고, 총 36개의 질문이 있다. 이 36개의 질문이 한 사람의 삶을 제대로 담아낼 수 있을까?

X1 기능제한영역에는 신체, 정신, 지적 장애 등의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 장애 유형을 하나의 기준으로 동일하게 평가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모든 장애가 중첩되어 있어야만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고, A님의 경우처럼 호흡기를 착용해야 하거나, 와상의 이용인이 더 많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울, 환각, 공격행동 등 전혀 다른 영역의 질문에 ‘문제 있음’을 증명해야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다. 살아가기 위한 지원이 왜 필요한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어디가 더 문제인지를 증명해야하는 순간이다.

그리고, 기능제한(X1)과 주거특성(X3)이 같더라도 사회활동 여부(X2)에 따라 월 30시간에서 60시간까지 지원 차이가 난다. 즉, 학교나 직장에 나가지 않는 재가 장애인은 자조모임이나 동아리활동을 해도 그건 ‘사회활동’으로 인정받지 못한다. 도대체 종합조사표는 왜 사회활동 여부를 점수화하는 것일까? 노동할 수 있는 자와 그렇지않은 자를 구분하여 지원의 우선순위에 차등을 두고, 국가가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경제활동을 점수화 한다는 것은 활동지원제도가 더 이상 장애인의 삶을 지원하기 위한 권리가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X3 주거특성 항목 중엔 가족의 사회생활 여부를 묻는 문항도 있다. 가족이 집에 있으면 장애인의 돌봄은 당연히 그 사람의 몫이라고 가정에서 시작된 항목이다. 장애인을 가족으로 둔 사람은 사회생활이 인정되지 않는 순간 당연하게 돌봄노동자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조사표의 항목 하나하나는 누군가의 몸을 세밀히 들여다보며 어디가 얼마나 무능한지를 끊임없이 묻고 살피지만, 정작 그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서 어떤 지원이 필요한지는 궁금해하지 않는다. 나는 종합조사표가 장애인의 무능을 증명하는 도구가 아니라, 삶을 지원하는 제도로 바뀌기를 바란다. 짜여진 예산에 맞추어 모든 장애를 하나의 조사표로 조사받도록 하는 지금의 이 구조로는 어느 누구의 삶도 지원할 수 없다. 당사자가 무엇을 얼마나 더 못하는지가 아니라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 가능해질 때까지 이 투쟁은 계속될 것이다.

<사진 2. 10월 16일 강동하남지사 점거 농성 사진. 국민연금공단 강동하남지사 엘리베이터에 ‘종합조사표가 아닌 장애인의 삶을 보라!, 이제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등의 피켓이 가득 붙어있다.>

<사진 2. 10월 16일 강동하남지사 점거 농성 사진. 국민연금공단 강동하남지사 엘리베이터에 ‘종합조사표가 아닌 장애인의 삶을 보라!, 이제는 진짜 장애등급제 폐지하라!’ 등의 피켓이 가득 붙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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