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단체 성명>
정보경찰 폐지만이 답이다.
- 정보경찰의 악행들이 조금씩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민간인을 사찰하고 정치에 개입하며 정권을 위한 전위대를 자임해 왔던 일들이 계속 밝혀지고 있는 상황이다. 수사가 진행되자 정보 문건을 급히 인멸했다는 것을 보면, 지금 드러나고 있는 사건들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확인된 사건들만 보더라도 정보경찰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가기관이 해서는 안 되는 일들을 수없이 자행했음을 너무나 쉽게 확인할 수 있다.
- 정보경찰은 민간인을 사찰하고 감시했다. 노조 탄압에 반발해 파업하다가 죽음을 선택한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염호석 분회장의 일이 그렇다. 그의 실종 당시 경찰은 삼성과 유착해 가족이나 지인을 감시하면서 그의 행적을 쫓았으며 장례절차를 바꾸는 일에 적극적으로 나셨다. 뿐만 아니라 거액의 뇌물까지 받고 직원들끼리 양복도 맞춰 입었다고 전해진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도 사찰당했다. 2014년 안산에서 목포로 이동하는 피해자들을 미행했다가 발각되었으며, 피해자들의 학력・인터넷 물품 구매 내역・정당 당원 여부・정치성향을 분석하면서 이들을 제압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기도 하였다.
또한 정권에 조금이라도 부담이 되는 이들이라면 국가기관이나 그 구성원도 감시하였다. 세월호 특조위의 조사활동을 방해하기 위해 정보보고 문건을 작성하고, 각 위원들의 성격을 분석해 정부・여당이 대응해야 할 방향을 제안하기도 하였다. 또한 진보교육감을 제압하기 위해 부교육감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였다. 이 자료에는 부교육감의 사진과 함께 성향을 우호적-비우호적으로 나누고 진보교육감의 정책에 동조하고 있으니 대학교 사무국장으로 좌천시켜야 한다는 취지의 대책도 담겨있었다. 뿐만 아니라 국가인권위도 감시와 사찰 대상이 되었다. 정보경찰은 인권위원장 및 인권위원, 주요직원의 성향 분석과 업무 동향 등 인권위 전반에 대한 내용을 사찰하고 업무와 사건에 대한 대응계획을 작성하기도 하였다.
그뿐만이 아니다. 정보경찰은 정치에도 깊숙이 개입하였다. 2011년 11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시 여당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야당 후보 동향을 파악하고 관련 시민단체를 사찰하였으며, 선거 판세를 분석하였을 뿐만 아니라 선거 전후 청와대의 국정 운영 방안을 제안하는 등 노골적인 정치 행보를 펼쳤다. 여당 정치인들이라고 정보경찰의 사찰과 관리대상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시절, 김무성과 유승민 의원의 동향을 보고하였고 2011년 당시 사개특위 위원이던 여당 의원들의 성향을 파악하고 이들을 경찰에 우호적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를 찾아내려고 시도하였다.
- 이를 종합할 때 정보경찰은 국민을 위한 기관이 결코 아니었다. 정권에게 충성하고 그 이익을 위해 복무하는 ‘불법흥신소’에 불과했다. 정보경찰은 MB정부의 성공을 기원하면서 ‘전위대’로 자신들을 활용해 달라고 스스로 요청하고 그 대가로 정무직 자리를 요구했다는 문건을 작성한 이들이었다. 2015년에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경찰정보관 교육자료 ‘정보정책의 이해와 필요성’을 보면 ‘보고서는 정권만을 위해 작성해야 한다’고 내부 교육을 해왔다. 모든 정책정보는 기본적으로 국정 최고 결정권자인 VIP에게 보고된다고 하면서 “평소 말씀, 강조사항, 행동 등을 유심히 살펴 ‘국정 기조’에 맞는 보고서를 작성해야 국민의 불편, 불만을 전달할 수 있”으므로 대통령의 입맛에 맞도록 정보보고를 해야 한다고 교육했던 것이다. 이는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헌법 규정을 위배한 것이었다.
- 이러한 악행들을 저질렀던 정보경찰을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리 봐도 폐지밖에 답이 없다. 그 이유는 현재의 정보경찰을 존치할 만한 법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경찰이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경우로는 우선 경찰관직무집행법에 근거한 위험방지(범죄예방)를 들 수 있고, 다른 하나는 형사소송법에 근거한 범죄수사를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경찰은 정보수집의 근거가 되는 경찰관직무집행법 제2조 제7호 “치안정보의 수집·작성 및 배포”상 ‘치안정보’를 자의적으로 확대해석하여 업무영역을 무한정으로 늘려왔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2018년 정보경찰의 업무 중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한 건 청와대에 보내는 ‘정책자료’의 작성(22.5%)이었다. 대외협력(20%), 집회관리(12.3%)가 그 뒤를 이었으며, 본연의 업무라 할 수 있는 ‘범죄첩보’는 단지 1.3%에 불과했다. ‘치안정보’라고 한다면 위험방지나 범죄수사와 관련이 되어야 함에도 그에 해당하지 않는 정보들을 불법적으로 광범위하게 수집한 증거인 것이다.
- 이처럼 엄청난 악행들을 저지르고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있는 정보경찰에 대해 개혁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아 왔다. 문재인 정부는 경찰 개혁위원회를 구성하여 내부 동력을 끌어내려 했던 것으로 보이나 ‘정보경찰 활동규칙’을 제정하고 부적절한 행위를 하지 말라는 청장 지시 외에 바뀐 것이 없다. 오히려 그사이 정보경찰은 범죄증거라 할 수 있는 ‘정보 문건’을 삭제프로그램을 돌려가며 무더기로 파기하며 인멸하였다. 이러한 이들에게 개혁을 맡긴다는 것은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이다.
- 정보경찰에 대한 개혁이 이루어지지 않는 문제는 청와대에도 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 집권 이후 정보경찰이 사실상 ‘유일한 검증기관’이 되었고 청와대도 양적・질적으로 높은 수준을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 개혁위원회 내부에서 정보국 폐지를 권고하려고 했지만, 청와대가 반대했다고도 전해진다. 철저히 개혁해야 할 정보경찰을 개혁을 표방한 현 청와대가 더 의존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이에 대해 청와대는 국정원의 국내정보 수집기능을 더 이상 수행하지 않음에 따라 정보경찰 보고를 받지 않을 수 없다고 변명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보경찰이 ‘정치경찰’이 되었던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청와대가 먼저 그들에게 정보를 요구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정보경찰의 위상을 키워주었던 것이다. 이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끊는다고 하더라도 대안이 없지 않다. 정보경찰이 보고하던 ‘정책정보’는 해당 정책을 추진하는 기관을 통해 직접 보고받으면 되고, 교차확인이 필요한 경우라면 국무총리실 등을 활용할 수 있다. 또한 ‘인사검증’도 인사혁신처나 감사원 등 관련 부처에 별도 부서를 신설해 처리할 수 있는 것이다.
- 검찰개혁이 그러하듯, 정보경찰 역시 정권의 선의에 기대어서는 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지금까지의 폐단은 법・제도적 개혁을 통해 없애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정치상황 변화에 따라 정보경찰도 결국 원래의 모습으로 다시 회귀할 것이다. 우리 인권단체들은 정보경찰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며 이것이 경찰개혁의 핵심임을 강조하고자 한다. 또한 정보경찰 폐지를 통해 그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는 청와대의 결단도 촉구한다.
2019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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