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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장의 페미니스트, 퀴어, 장애여성 

정주희(장애여성공감)

[사진 1]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8차 범시민대행진에서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단체사진.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8차 범시민대행진에서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단체사진. ‘이게 바로 안티페미니스트 정치의 말로’ 현수막을 펼치고 있다. 

4월 4일 헌법재판소의 탄핵소추 인용결정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되었다. 12월 3일 비상계엄령 선포가 있은지 4개월, 험난했지만 광장을 가득 채운 시민들이 있어 마침내 파면시켰다. 그 광장에 페미니스트가, 퀴어가, 장애여성이 있었다. 탄핵이 끝이 아닌 시작이기에 그 때를 다시 써보려 한다.

12월 3일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날, 중증의 장애여성활동가들은 갑작스럽게 활동지원이 중단될까 불안해했다. 먹고, 씻고, 숨을 쉬고, 화장실을 가는 일상에 활동지원이 필요하건만, 계엄은 어떤 대안도 없이 돌봄을 중단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계엄이라는 국가의 폭력적 조치가 단행되었음에도 정보를 받지 못한 이들도 있었다. 계엄령 당시 수어, 문자통역, 쉬운 정보 제공 등 기본적 권리가 보장되지 않았고, ‘안전’과 ‘보호’의 이름으로 보호시설, 교정시설, 요양병원, 정신병원 등에 감금된 사람들은 아무런 정보도 전달받지 못했을 수도 있다. 시민들의 적극적인 대응으로 다행히 계엄이 저지되었지만, 이후 긴박히 돌아가는 정세에 장애여성들은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찾기 어려웠다. 진은선 활동가의 발언처럼 일상이 뒤흔들릴 위기에 불안해했고, 이를 야기한 권력에 분노했다. 하지만 이는 계엄만의 일이 아니다.

차별이 없다고 선언된 사회, 취약성을 사회적 차별이 아닌 개인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사회다. 2024년 우리는 장애인자립생활운동에서 바뀌왔던 탈시설 현장이 어떻게 박탈되는지를 목격하였고, 젠더 불평등이 아주 납작한 피해자로만 남겨진 현장을 보며 분노하였다. 그럼에도 혹은 그렇기에 장애여성공감은 돌봄을, 성과재생산권리를, 독립을 중요한 삶의 화두로, 일상의 관계와 삶의 조건들이 변화하길 도전하고 분투해왔다. 계엄을 선포하고 이조차 내란이 아니라 발뺌하는 책임조차 없는 권력에 분노하며 이러한 사태를 촉발한 차별과 혐오에 저항하고 함께 연대할 동료들을 조직했다. 광장으로 나간 장애여성공감이 함께 한 많은 사람들 중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이하 민구페퀴네)가 있다.

[사진 2] 3월 8일 윤석열 즉각파면! 사회대개혁 제13차 범시민 대행진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행진 사진. 선두에 휠체어 이용 활동가들이 있고, 뒤로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 퇴진’ 한글자 피켓을 든 사람들이 있다. 뒤로 색색의 깃발들이 휘날린다.

[사진 3] 피켓 디자인이 모여있는 드라이브. 약 150개의 디자인이 모였다.

장애여성공감은 페미니스트-퀴어-장애-여성으로 광장에 나왔다. 하나의 정체성으로 존재를 환원하길 거부하며,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복잡한 존재로 광장에 섰다. 가부장, 비장애 중심, 이성애중심의 사회에서 ‘정상’에서 밀려나 차별받은 경험을 공유하며, 교차하는 정체성에서 각기 다른 삶의 경로를 가진 이들로 이 자리에 섰다. 차이를 가진 광장에서 갈등과 충돌은 필연적이었다. 차이를 부정하거나, ‘윤석열 탄핵’ 하나의 요구만으로 우리를 묶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소수자들의 요구로 사회변화를 바라는 동료들을 만났다. 광장에 페미니스트들의 존재를 알리고 다양한 페미니스트들이 모인 민구페퀴네 행동에 공감도 함께했다. 페미존을 만들고 ‘페미니스트가 요구하는 깃발을 들고 행진했다.

여러 몸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턱이 없는, 찾아올 수 있는 장소를 고심했다. 공감의 생각이 다른 이들의 접근도 용이하게 하리라는 믿음으로 민구페퀴네의 구성원들은 공감에게 물었다. 모일 장소와 이동 동선은 비상행동에서도, 민구페퀴네에서도 함께 고려할 사안이었다. 한편 공감의 요구와 존재가 특수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몸들, 소수자들이 모인 광장을 만드는 논의의 과정임을 같이 이해하는 시간이었다. 행진 사회 멘트가 누군가를 배제하거나, 분리하지 않을지 고심하고 상의하는 시간들이 쌓였다. 조심스러움이나, 의아함으로만 남지 않게 서로의 역할과 상황을 이야기하고, 가능한 대안을 함께 찾으려 노력했다. 행진할 땐 휠체어를 이용하는 활동가들이 가장 앞서 대열의 속도, 동선을 확보하고, 무거운 짐들을 휠체어에 걸어 들었다. 휠체어 대오 뒤로 ‘페미니스트가 요구한다, 윤석열은 물러나라’는 한 글자 피켓을 들어 시민들에게 우리의 존재와 요구를 알렸다. 서로의 속도를 맞추고, 갑작스러운 일들에도 함께 상의하며 걷고 걸었다. 민구페퀴네 피켓 중 맘에 드는 구호를 고르고, 피켓을 손과 휠체어 중 어디에 붙일지 이야기하기가 공감의 활동이 되었다. 민구페퀴네 활동가, 회원들과 피켓을 나눠 들고 행진하고, 민구페퀴의 행진 모습을 촬영하는 역할을 회원들과 같이 나눴다. 광장에서 나는 분노를 함께 나누고, 평등을 말할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각자의 역할을 나누고, 협동해 우리의 요구를 말하며 광장을 지켰다. 사회에서 배제되어온 우리가 무언가라도 함께 할 수 있다는 건 무력함을 떨쳐내는 힘, 광장으로 오는 이유가 되었다.

[사진 4] 탄핵 이후 우리가 바라는 민주주의 응답 홈페이지 화면. ‘민주주의 시작은~에서부터’, ‘~이(가) 민주주의를 구한다’, ‘~의 이름으로 폭력과 혐오를 용서하지 않겠다’는 문장에 다양한 사람들의 응답이 포스트잇안에 적혀있다. 

차이를 가진 우리가 연대하기 위한 노력들은 집회에 참여한 다른 시민들과도 연결되었다. 탄핵 정국에서 맞이한 3.8.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하여, 한국여성대회에 민구페퀴네도 부스를 열었다. 민구페퀴네에서 기획팀을 만들어 부스를 준비하며 애써주셨다. 단체들의 지향이 잘 담긴 리플렛을 만들고, 광장에 있는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페미니스트들과페미니스트가 바라는 민주주의는 무엇인지 나누는 참여형 활동을 준비했다. 당일 공감은 부스 지킴이로 함께 했다.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의 이름만으로도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민구페퀴네 부스를 뚫어져라 보는 눈빛들, 리플렛을 먼저 가져가도 되는지 묻는 이들도 있었다. 여러 단위가 함께 하며 서로를 연결하기 위한 활동들이, 이름에서, 구호의 디자인과 문구에서 시민들에게 닿았다고 느꼈다. 온라인 홈페이지를 개설해 진행한 참여형 활동은 현재까지 755분이 응답해주셨다. 부스만이 아니라 매주 집회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공감을 찾아온 한 분은 처음 오는 광장에 낯설었지만, 무지개 깃발이 날리는 페미존에 왔을 때 안심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피켓을 접어 가방에 넣어가시던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집회에서 곁에 있던 시민들이 스티커와 피켓을 받아가며 갖고 있던 과자를 나누었던 것, 행진에 함께 하고자 기다리던 시민들이 우리의 연결을 느끼게 했다. 이어졌던 경험을, 서로의 존재를 남기고자 윤석열 즉각 파면 촉구 각계 긴급 시국선언 기자회견에 그간의 활동과 응답들을 담아 민구페퀴네도 발언했다.

광장에 함께 모인 우리는 같지 않기에 서로 다른 차이로 비슷한 점을 찾고 차별과 억압의 경험을 연결해 왔습니다. 저는 이 연대의 힘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파면 이후에 일상으로 가져가고 싶습니다. 장애여성인 저에게 민주주의란 아무것도 없던 세상의 새로운 변화가 아닙니다. 차별과 혐오를 전략 삼아 평등을 위협해 왔던 정치를 당장 중단하고 나와, 모두의 삶이 온전히 존엄하고 환대받을 수 있는 세상을 바랍니다. 

이것은 성차별과 성폭력의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욕망을 말할 수 있는 성적권리가 보장되어야 합니다. 돌보는 사람의 인권이 존중되고, 돌봄을 받는 몸이 차별에 놓이거나 시설에 갇히지 않아야 합니다. 시설 밖에서 혼자서도 가족을 구성해서도 서로 의존하며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빠른 속도로 각자도생하는 것이 아닌 느린 힘이 저항이 될 수 있는 사회여야 합니다.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8차 범시민대행진 중 장애여성공감 진은선 활동가 발언 

일상에서 평등을 위해 분투해온 우리는 광장에서 서로를 찾았다. 차이를 가진 우리는 차별의 경험에서 서로의 감정과 상황에 공감했고, 다른 생각을 궁금해했다. 광장으로 모인 우리가 말한 민주주의는 존엄하게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다. 성소수자도, 여성도, 장애인도, 이주민도, 노동자도, 농민도, 아동도, 청소년도 그 어느 누구도 배제되거나 후순위로 밀리지 않는 민주주의를 바란다. 소수자들이 경험을 말하고, 요구하는 동료시민으로 사회의 변화를 함께 만들어가야 한다. 광장을 채운 우리의 연대가 일상으로 이어지기 위해 탄핵은 끝이 아닌 시작이다.

[사진 5] 윤석열 즉각 퇴진 사회대개혁 12차 범시민대행진에 참여한 장애여성공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사람들의 단체사진. ‘탄핵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차별금지법 없이 다시 만난 세계 없다’, ‘윤석열 비호하는 안창호 인권위원장 OUT!’, ‘윤석열 퇴진 지금 당장, 차별금지법 지금 당장’가 적힌 피켓들을 들거나 걸고 있다. 

*민주주의 구하는 페미-퀴어-네트워크 소속 단쳬: 뉴그라운드,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 불꽃페미액션,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언니네트워크, 장애여성공감, 페미당당, 플랫폼C,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한국성폭력상담소, 한국여성의전화, FDSC, FF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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