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뚤빼뚤, 투쟁으로 맞춰가는 호흡
진은선(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장애여성공감(이하 공감)에서 투쟁을 준비하는 시간은 생각보다 더 분주하게 돌아갑니다. 투쟁에 앞서, 그동안의 역사와 오늘의 슬로건이 담긴 자료를 함께 읽으면서 의미를 알고 기억합니다. 그 다음, 현장에서 함께 외칠 구호와 노래를 배우고 연습합니다. 장애여성의 삶과 비슷한 경험을 찾고 요구가 담긴 피켓도 만듭니다. 발언의 기회, 연결된 활동 등을 고려하여 발언할 사람을 정하고 의견을 주고 받으면서 완성합니다. 그리고 투쟁 전날 모두가 모여 일정을 확인하고 빠짐없이 역할을 나눕니다. 이때 짝궁은 휠과 비휠체어, 투쟁을 나간 경험, 회원과 활동가 사이의 익숙하거나 넓어질 관계 등을 고려하여 정합니다. 매주 윤석열 파면 집회를 참여하면서 수많은 시민들과 만나는 현장은 더 복닥하고, 시급하게 돌아가기에 상황과 정보를 함께 살피면서 서로에게 집중하는 역할이 더 중요해지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장애여성이 소외되지 않고 모든 현장을 주도하기 위한 공감의 문화이자, 서로의 몸을 알아가야 할 아직은 자연스럽지 않은 관계이기도 합니다.
서로를 돌본다는 것은 마치 동료의 콧물이 더럽지만은 않은 마음이 생기는 그 순간? 혹은 창피하지만 콧구멍을 내어줄 수 있는 관계라고 해야할까요? 빗대어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은 칼바람이 몰아치는 현장에서 옷을 단단히 여미면서, 핫팩을 점퍼 소매 끝자락에 넣어주면서, 나보다 손에 장애가 덜한 짝꿍이 활동지원을 할 수 있도록 휠휠휠 조합의 ‘잘못 잡은’ 자리를 옮기면서 몸에 붙듯 쌓이는 감각입니다. 한가지 예를 들어 보자면, 특히 연대 현장에서 휠을 사용하는 장애 여성들은 시선이 낮은 휠체어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에 비휠동지들의 발을 밟거나 다치는 것을 가장 우려되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를 눈치채고 행진으로 뒤섞일 때 조금은 긴장된 어깨와 눈짓으로 옆자리를 꿋꿋이 차지하는 동료를 보면서 이 불안감을 같이 공유할 수 있는 관계가 너무 중요해집니다.
그래서 우리의 돌봄은 장애여성이 어떤 자리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할 지 고민하는 것과 아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정치적인 자리에서 나의 정체성을 설명하고 보여질 것인지 심사숙고하는 과정들이 존중되어야 합니다. 윤석열 퇴진 집회에서도 장애여성으로서, 이 현장을 메운 동료들과 함께 기록될 투쟁의 모습에서 우리가 느낀 자부심이 잘 드러나면 좋겠는 마음과 함께 비하인드도 있었는데요. 행진에서 이전까지 앞뒤로 열을 맞춰 가는 것이 좀 더 익숙했다면, 이번에는 양옆으로 함께 행진할 때 삐뚤빼뚤 앞서나갈 타이밍을 잡는 게 정말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빨라”, “느려”를 구호처럼 외치면서, 또 손목으로, 입으로 운전하는 서로의 속도를 맞추면서, 아무리 흥이 나도 잊지 않고 맨 오른쪽부터 각자의 옆 사람을 보면서 어느덧 착착 맞춰진 호흡들. 모두가 애쓴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이렇게 얽히고 맞닿는 감각은 긴장이 생기고 때로는 새삼 피곤한 일이기도 하지만 서로 다른 차이로 엮이려는 노력들로 이어졌고, 축제 같았던 광장의 투쟁은 우리가 서로 돌봤던 이야기들로 단단하게 연결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