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6 리뷰: 다름이 공감을 만든다
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 이은지
4월 20일 장애인의 날. 그러나 우리는 이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이라고 부른다. 4월 20일이 장애인의 날로 지정된 데에는 과거 정부가 장애인을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보고, 장애인 당사자의 권리보다는 장애인의 날이라는 이름하에 그날 하루 장애인을 위한 행사를 하는 것으로 차별과 억압의 현실을 감추고자 했던 모습이 담겨있다. 장애운동진영에서는 이러한 겉보기에만 좋은 하루의 기념일인 장애인의 날에서 벗어나, 차이를 차별로 만드는 국가의 모순을 바꾸기 위한 활동을 진행해왔고, 그런 의미에서 4월 20일인 장애인의 날을 장애인차별철폐의 날로 부른다. 해마다 420장애인차별철폐 투쟁은 최옥란 열사의 기일을 추모하며 3월 26일의 추모행사부터 시작되어 4월 20일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최옥란 열사는 소득보장이 제대로 이루어지기 어려운 장애여성의 현실 속에서 당사자로서 빈곤과 장애여성의 문제에 대한 투쟁을 하신 분이다.
공감에서는 326과 420의 의미에 대해 사전에 학습하고 또 올해 326에서 하기로 한 플래시몹을 위한 준비를 하고, 우드락에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문구를 쓰며 거리행진 때 사용할 피켓을 만들었다.
3월 26일, 최정환 열사와 최옥란 열사의 정신을 계승하는 326 장애빈민대회에 우리는 공감이라는 이름으로 함께했다. 장애인의 권리보장을 위한 요구안을 외치는 것으로 시작된 장애인 대회는 보신각을 시작으로 SK브로드밴드와 LG 유플러스 노동자가 고공농성을 하고 있는 명동까지 행진했다. 올해의 요구안은 1. 장애등급제 폐지 및 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장애인활동지원법 개정, 교통약자이동편의증진법 개정 등 3대 법안 제·개정 2. 부양의무제 폐지 3. 탈시설 권리 쟁취(자립생활 전환서비스 제도화, 탈시설 정착금 제도화) 4. 발달장애인 권리 쟁취(주간활동지원 확대) 5. 정신장애인 권리 쟁취(정신장애인권리보장법 제정) 6.장애인 의사소통권 쟁취(의사소통지원센터 설치) 등이다.
나는 작년에 이어 326 집회에 두 번째로 참여했는데, 작년과는 조금 다른 분위기였다. 보신각으로 향하자마자 부양의무제 폐지를 상징하는 분홍풍선들이 반겨주었다. 풍선을 매단 리본끈이 팔에 걸리기도 하고 얼굴을 간질이기도 했지만 희망찬 느낌을 주기도 했다.
공감은 거리를 행진하면서 8박자 구호를 외치기도 하고 ‘얼굴 찌푸리지 말아요’를 개사한 ‘차별 조장하지 말아요’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박자가 안 맞기도 하고, 가사를 다 못 외웠어도 함께 외치고 노래하며 시민들에게 우리의 메시지를 알리면서 걸었다.
많이 어색하고 부끄럽긴 했지만 플래시몹을 하며 행진하기로 한 약속을 지키면서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준비한 퍼포먼스를 펼치기도 했다. 사라져야 할 것들을 우드락에 적어서 격파하면서 차별을, 시설비리를, 장애등급제 등 우리의 다름을 규제하는 속박을 날려 보냈다. 작년 326에 참여하면서 뭔가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시민들에게 잘 전달되지 않고 행진하는 것이 안타까웠고, 의미를 가진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100% 잘 하진 못했더라도 올해는 함께 무언가를 하고 외칠 수 있었다는 것이 좋았다.
작년 326과 420에서 마주한 경찰들은 과격하고 위압감이 많이 느껴지는 모습이었다면, 올해 326에서는 큰 물리적 충돌이 없이 넘어가는 듯 했다. 전동휠체어채로 장애인을 들어버리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경찰의 태도가 뭔가 달라진건가 싶었다가 역시나..하는 생각에 허무하고 답답했다.
행진을 마치고 남은 몇 명의 사람들은 함께 고깃집에 가서 식사와 술을 곁들이며 소감을 나누었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하고, 내부에서 휠체어가 이동할 수 있는 공간이 확보되는 식당을 찾는 과정은 또 하나의 식순 같았다.
공감할 수 있다는 것은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방식으로 무언가를 해야 가능할 것만 같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지지 않으면 공감을 얻을 수 없다. 또, 서로 다르기 때문에 그 차이 속에서 함께할 수 있는 모습을 찾아내는 것이 공감을 만든다는 생각을 326을 통해 하게 되었다. 같음을 외치며 나와 같지 않음을 비정상으로 여기는 속에서 차별과 배제가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올해 326을 통해 처음 집회에 참여하는 분도 계셨고, 거리행진을 함께하는 것이 처음인 회원님도 있었다. 또 326에 처음 참여하는 누군가도, 326을 처음 접하는 시민도 있었을 것이다. 그분들에게 이날의 집회가 다름이 만드는 공감을 느낄 수 있는 자리였을지 궁금하다. 흩날리는 벚꽃 잎 대신 흩날리는 깃발과 목소리가 울려퍼질 이 거리를 우리 걸어요, 내년에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