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 계속하기!!
조하늘(장애여성공감 활동가)
S#1. 오케이! 막촬하던 날
영화 <농담> 마지막 촬영지는 미경의 집이었다. 영화의 대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진희는 모니터와 연기하는 미경을 번갈아 확인하곤 안도의 한숨이 섞인 “오케이”를 말하며, 미경에게 손짓했다. 마지막 씬, 두 사람 간 몇 번의 손짓이 오고 간 끝에, 최종 오케이다. 지쳤어도 웃음을 거두지 않던 미경은 누구보다 크게 “오케이!”를 외쳤다. 촬영이 끝나고 미경은 가장 먼저 진희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스탭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현하며 이들의 컨디션을 걱정했다.
오역의 순간마다, 미경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야 ‘이게 웃겨’ 나가야 되는 거 아니야?”. 미경의 말은 사실 장애여성공감 안에서 밈처럼 쓰인다. 2018년 ‘공감유머사전, 이게 웃겨?’라는 이름으로 2018년부터 시작된 이 기획은 장애가 웃음거리가 되거나, 너무 조심스러운 주제가 되지 않기 위해 우리 안의 유머를 담은 장애여성 일상 커뮤니티 개그 코너이다. 이 기획의 핵심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불쌍하거나, 도와줘야하는, 가까이 하기에 부담스러운 존재로 보는 납작한 시각을 벗어나 같이 웃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기 위한 도전이었다. 웃기긴 웃긴데 웃어도 되는건지, 어디가 웃긴 건지 알 수 없는, 당혹과 웃음과 머쓱의 그 사이. 이것이 커뮤니티 ‘유머’의 역사다.
S#2. 가치봄 영화 <농담> 배리어프리버전, 전주영화제에 가다!
아침부터 분주했다. 전주에서의 마지막 일정, <농담> 배리어프리 버전 상영회를 위해 가장 자기다움을 드러낼 수 있는 옷을 찾고, 관객과 나눌 이야기를 고민했다. 상영관에 도착한 우리는 티켓을 나눠가진 후 휠석, 비휠석으로 흩어졌다. 상영관 내 휠체어 석은 맨 앞열과 뒷열, 총 4석이었다. 맨 뒷열은 시야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전주영화제 측에서 나눠주었으나, 휠체어에서 상영관 의자로 옮겨 앉는 것보다는 덜 무리스럽다는 휠체어 유저들의 의견이었다. 물론 화면이 잘 보이면 좋겠지만, 그것이 전주에 함께 온 이유가 아니었기에 아무렴 괜찮다는 말과 눈빛이 오고갔다.
스크린으로 보는 <농담> 배리어프리버전은 정말 순식간에 끝났다. 박수와 함께 이어진 관객과의 대화에 진희, 미경, 은선, 화영, 하늘이 함께했다. 첫 질문으로 전주에 오게 된 소감을 나누면서 미경은 전주에서 있었던 자림원 사건에 대해 말했다. 부끄럽게도 나는 자림원 사건에 대해 몰랐었다. 미경은 시설 밖에서 함께 살아야 하는 이유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될 장애여성들의 삶을 전주에서 만난 이들과 나누고자 했다. 영화제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어디서든 외면받지 않고 연대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조직하는 공감의 방향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끝으로, 관객으로 함께한 한국농아인협회 전북특별자치도협회 활동가는 “장애여성 당사자들이 주인공인 영화는 처음”이라며 영화에 대한 감상을 수어로 나누었다. 미경은 지연되는 문자 통역 화면을 물끄러미 보다가, 그에게 수어로 고맙다고 얘기했다. 진희는 <농담> 배리어프리 버전에 수어 통역을 넣지 못 한 아쉬움을 전하면서, 결국 함께 웃을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다는 마음을 전했다. 물리적인 ‘세팅’에서 나아가, 관계 맺기에 대한 고민을 같이 온 이들과 나눈 것이었다. 나는 관객과 미경, 진희가 주고 받는 대화가 구어, 수어, 문자를 경유하며 실상 완벽하게 소통되지 않았더라도, 그 틈 안에서 서로의 표정과 몸에 집중하며 질문했던 순간이 오히려 관계를 상상하게 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S#3. 광장에서 다시 화장실로.
상영회 전, 농담 상영 연계 행사로 ‘뜻밖의 미술관’에서 <농담을 공유하는 사이, 차별금지법 함께 만드는 사이> 수다회가 열렸었다. 전주 시민들과 지역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함께하는 활동가들이 모여 광장의 경험이 왜 일상으로 연결되어야 하는지 나눈 자리였다. 패널로 참여한 민주노총 전북본부 부설 전북노동정책연구위원 새벽님(별칭)은 퀴어로서 경험이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접근성에 대한 고민과 교차되는 지점에 대해 말하며, 모두에게 안전한 화장실의 중요성을 이야기했다. 그는 ’등장‘으로 겪은 숱한 갈등과 차별의 경험을 나누며, 더 나타나고 더 나대자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기에 광장에서의 ‘등장’은 그 약속을 더 많은 이들에게 제안한, 너무도 중요한 공간이었다.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여러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투쟁하며 만났던 광장의 마이크는 열려있었고, 정체성으로 자신을 호명하는 순간을 서로가 환대했다. 수다회를 마치며 자리를 옮겨, 또 다른 지역에서 만나자는 약속은 투쟁 같은 일상에서 나와 서로를 위해 마이크를 잡았던 광장의 순간을 계속해서 이어나가는, 어쩌면 특별하지 않게 등장하기 위한 약속일 것이다.
S#4. 눈치껏(cut) 너를 웃기고 싶다. 나도 언젠간 웃기고 싶다.
다른 몸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는 특별하지 않다. 연출을 맡은 진희는 “샤르코마리투스, 프라더윌리, 뇌병변, 발달장애 등 다양한 차이를 가진 이들의 몸은 갈등의 요소이면서, 서로를 돌보는 삶의 역량을 쌓아가는 동기이기도 하다”며 “드라마 속 장애여성들은 눈치보며 주눅 들었던 몸을 전면에 드러내며, 눈치껏 자신을 표현하고 눈치껏 타인의 표현을 감각한다. 이때 눈치는 서로의 몸을 살피고 돌보려는 남다른 감각이다”라고 하였다. “농담을 공유할 수 있는 사이가 최고의 연대”라는 동료의 말을 기억하며 장애여성 커뮤니티 유머를 곳곳에 배치한 것도, 일상에서 연결되고자 한 그의 이유였다.
웃기고 싶은 마음은 내겐 좀 특별하게 느껴진다. 진희는 스탠드업 코미디 배우가 꿈인 사람으로 자신을 소개하고, 언젠가 미경에 대해 그가 진지하기에 웃길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진심이기에, 너무도 진지해서 웃길 수 있는 사람들. 농담 촬영을 하면서 눈치, 농담의 의미가 이전과 다르게 보인다. 전주 일정을 마무리하며, 장애여성공감의 예술은 운동처럼, 운동은 예술처럼을 함께 외쳤다. 우리의 활동이 그 틈에서 일상의 틈을 균열내고 전복시키며 함께 뒤섞이는 관계를 만들어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