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동/일상 , 장애/비장애 경계를 허무는 여행
여름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
지난 3월 활동가들은 부산여행을 다녀왔습니다. 2016년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에너지 충전의 시간을 가져보자는 취지로 떠난 부산 여행은 작년 연말 우연히 시작되었습니다. 누군가 점심식사 중에 즉흥적으로 제안한 부산여행은 금방 떠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바쁘게 돌아가는 활동으로 인해 흐지부지 없던 일이 되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여행을 꼭 가보자는 생각에 우선 여행날짜를 확정하는 방법을 떠올렸습니다. 그러나 활동가들마다 이미 정해져있는 업무스케줄을 피해 여행날짜를 정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 [숨]센터 활동가들은 <IL센터 활동가 투쟁 워크숍>의 1박 2일 일정을 마치고 바로 부산 여행을 떠나는 일정으로 정했습니다. 여행 떠나기 전부터 빡센(?) 기운이 스멀스멀 느껴졌습니다. 어쨌든 날짜를 정하고 숙박시설 예약, KTX 예매, 여행 코스 짜기 등 각자 역할 분담을 했습니다. 여행 준비에서 전동휠체어 접근성을 확인하고, 필요한 준비를 하는 부분은 필수 체크사항이었습니다.
부산으로 떠나는 날, 활동가들은 각자의 업무를 마치고 서울역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몇 명의 활동가들은 함께 장애인 콜택시로 이동했는데 꽉 막힌 서울의 도로상황에서 약속시간에 맞출 수 있을 지 아슬아슬했습니다. 대부분의 활동가들은 다행히 열차시간에 늦지 않게 도착했지만 아쉽게도 한 활동가는 서울역에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결국 따로 부산으로 오기로 했습니다. 서울역 모인 5명의 활동가들은 도착하면서부터 매의 눈으로 주변을 살폈습니다. 왜냐하면 미리 요청해두었던 장애인 도우미가 약속한 시간에 나와 있지 않았고, 이후 도착한 도우미는 도움이 필요한 활동가를 챙기지 않고 먼저 앞서 걸어가는 등의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리프트를 이용해 KTX에 올라탄 후에는 전동휠체어이용석의 객차 바닥 고정 쇠가 문제였습니다. 객실 통로와 겹치는 위치에 설치되어 있어 바닥 고정 쇠를 이용하려면 이동하는 승객이나 객실 간식차 등과의 충돌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바닥 고정 쇠는 이용하지 못했습니다. 전동휠체어의 경우 고정 장치를 이용하지 않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장애감수성 부족한 KTX에 추후 민원제기를 위해 증거사진들을 남기며 우리는 즐거운(?)여행을 시작했습니다.
도착한 부산은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미처 우산과 우비를 챙기지 못한 활동가들은 근처 편의점에 들러 채비를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려던 식당은 이미 영업을 끝낸 상태라 다시 부산역으로 고고!! 왜냐하면 따로 오기로 한 활동가가 부산에 도착할 시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잠시 부산역사 벤치에 앉아있는데 하루가 무척 길게 느껴집니다. 부산역에 내려 식당을 들러 다시 부산역으로 오는 데만 1시간 정도 시간이 소요되었습니다. 비장애인 중심의 우리사회에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과 함께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는 것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하나의 이야깃거리가 될 만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경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1일차 : 부산역-자갈치시장
부산에서 첫 번째 행선지는 자갈치 시장입니다. 부산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였습니다. 부산 지하철은 서울 지하철에 비해 역이나 열차의 크기는 조금 작은 듯 했고 휠체어 접근성은 서울과 비슷해 보였습니다. 바다 내음이 나는 자갈치 시장에 도착하니 부산에 온 것이 더욱 실감이 났습니다. 많은 횟집들 중에 약간의 인테리어 공사를 하여,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가게들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곰장어를 시작으로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에는 가게 뒤편 바닷가에 들려 부산 밤바다 야경과 밤하늘을 보며 휴가의 여유로움을 즐겼습니다.
이후 두리발(부산광역시 장애인콜택시)을 타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예약한 숙소는 장애인 객실이었지만 출입문 쪽에 턱이 있어 경사로를 요청하여 휠체어 접근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숙소에서 짐을 풀기 전 객실 내 가구 세팅을 먼저 하였습니다. 장애인 객실임에도 사용하기 곤란한 가구들이 놓여있었기 때문입니다. 소파 앞에 떡 하니 놓여있는 키 낮은 테이블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알 수 없는 애매한 크기였습니다. 한쪽으로 치우고 식탁을 소파 앞에 두어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활동가도 접근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였습니다. 그런 후에 항상 휠체어에 앉아 있던 활동가가 소파로 옮겨 앉았습니다. 앉아 있는 자세는 똑같은 채로 휠체어에서 소파로 자리가 바뀌었을 뿐인데 활동가가 달라보였습니다. 어쩌면 장애 활동가의 모습을 지켜보는 나의 기분이 달랐던 것 같습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일상을 함께 한다는 경험이 진하게 느껴지며 짜릿한 기분이었습니다. 장애와 비장애의 차이를 알아가며 일상을 나누는 것이 공감에서의 활동 초반에는 분명 낯선 것이었지만 지금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당일 생일이었던 활동가의 생일축하도 하며 여행 첫날의 밤을 보냈습니다.
2일차 : 동백섬-해운대바닷가-민주공원-보수동 책방골목-국제시장
지난 밤 내린 비로 둘째 날의 하늘은 맑았습니다. 우리는 먼저 동백섬으로 향했습니다. 숙소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도보로 이동했습니다. 도착한 동백섬은 활짝 핀 동백꽃으로 가득했습니다. 바닷바람으로 약간 쌀쌀한 듯 했지만 볕이 드는 곳에서는 동백꽃과 함께 봄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해운대 바닷가로 다시 도보 이동했습니다. 이때쯤엔 배도 고프고 다리도 좀 아파왔지만 복국이 맛있기로 유명한 식당을 가기 위해 우리는 참았습니다. 아침 식사 전 먼저 들른 해운대 바닷가는 모래사장 위의 통행로가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 통행로 덕분에 휠체어 접근이 되어 바다 경치를 조금은 더 편하게 할 수 있었습니다. 신발에 모래가 묻는 것이 싫은 사람들에게도 통행로는 유용했습니다. 통행로가 조금 더 바다 앞 근처까지 설치되었다면 더 좋지 않을까하는 생각은 이 정도의 통행로라도 더 많은 바닷가에 설치되기를 바라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바다구경을 마치고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늦은 아침을 먹게 된 우리는 기다림이 있던 만큼 맛있는 복국을 먹었습니다. 서울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지만 부산 맛집에서 우리는 “맛있다”를 연발하며 신나게 식사를 하였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는 일은 여행을 더없이 즐겁게 만들었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에 우리는 부산에서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보내기 위해 서울로 가는 KTX를 가능한 늦은 시간으로 표를 변경하며 여행을 이어나갔습니다. 그 다음에 두리발을 타고 민주공원으로 향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후보시절 식수한 나무 앞에서 간단하게 술 한 잔을 올리고, 민주주의사회연구소에서 근무했던 활동가의 친절한 설명을 들으며 민주항쟁기념관도 둘러보았습니다. 이곳은 공감의 회원들과 함께 하는 부산여행 코스로도 괜찮을 것 같다며 우리는 다음 부산여행을 미리 그려보기도 했습니다.
활동가들의 1박2일간의 부산여행은 활동하는 것처럼 빡세게 먹고 마시며 일상을 함께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상과 활동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의미 없는 것처럼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경계를 허물며 함께한 이번 여행은 저에게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기억은 공감에서의 활동에서도 지속되리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