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웹소식지> 기획> 정상성에 도전하는 몸들과 만나기 그리고 상상되기

정상성에 도전하는 몸들과 만나기 그리고 상상되기 

작성자  진은선(장애여성공감 활동가) 

* 이 글은 지난 4월 21일 여성환경연대에서 주최한 <2030 에코페미니즘 학교>에서 발제했던 내용입니다.

장애를 가진 몸에 대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장애인은 생산이 불가능한 몸으로 사회로부터 배제, 격리된 채 시설에 갇혀 살아 왔다. 국가의 주도 하에 장애인은 경제발전에 도움 되지 않는 인구로 규정되고 분리되어 동정과 시혜 혹은 극복의 대상이 되었고 장애를 가진 몸은 건강하지 않은, 매력적이지 않은 몸으로 인식되었다. 이렇게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태어날 때부터 혹은 어린 시절부터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몸이 다른 것 때문에 놀림을 받거나 자신의 몸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도 몸을 혐오하거나 몸으로 인해 수치심을 느끼며 자존감을 낮게 만드는 몸이었다.(장애여성공감(2013),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장애여성공감, p10-11)

“나는 척추가 앞으로 휘어있다. 주변 친구들과 자꾸 내 몸을 비교하게 되기도 하고
몸을 드러내는 옷 자체를 안 입게 되었다.
20대 초중반이 지나서는 내 몸을 숨겨야 했다.”

“ 지금은 휠체어를 이용하지만 예전에 절뚝거리면서 걸었다.
그 때 거울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는 게 가장 싫었다.

나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장애란 어느 순간 혹은 매 순간 불편하다고 인식되는 것은 아니었다. 장애로 인해 손과 발에 힘이 없는 몸의 상태는 섬세한 작업을 어렵게 만들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나름의 방식들을 찾아냈고 그것을 실행할 시간이 주어지는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하지만 나 역시 장애가 있는 몸을 직면하기 어려웠는데 바로 타인에게 내 몸을 드러내야하는 순간이었다. 휘어있고, 짧고, 힘이 없는, 내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손에 대해 타인의 시선과 피드백을 받는 것이 두려웠고 보여주고 싶지 않은 부분을 최대한 숨겨야 했다. 물리적으로 배제되고 대상화되는 상황들을 부정하고 싶었고 소위 ‘정상’이라는 기준 안에 들어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하지만 “머리는 길러서 뭐해, 관리도 못하면서.” “화장은 누가 해줬어? 아침에 준비하려면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바쁠 텐데 대충 바르고 다녀.” “넌 어떻게 남들 하는 거 다하고 살려 그러니?”라는 말들은 나를 장애인으로만 인식하게 만들었다. 나의 몸도 정체성도 그저 ‘장애인’으로 퉁 쳐졌고 나는 여성이 아닌 그저 ‘장애인’이었다.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 말하기

장애여성공감에는 2030대 지체, 뇌병변 장애여성들이 모여 자신의 섹슈얼리티 경험을 말하는 ‘2030 장애여성 섹슈얼리티모임 레드립’ (이하 ‘레드립’)이 있다. ‘레드립’은 비장애, 이성애, 남성중심사회에서 발생하는 차별의 경험들이 젠더적 관점에서 해석되지 않는 문제의식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장애인 운동 안에서도 장애여성의 경험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했다. 또한 이 경험들이 단순히 ‘장애’만으로 퉁 쳐지는 것에 대해 경계하며 경제적 상황, 나이, 비/결혼유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 등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만큼 서로가 교차되는 경험을 말하고 자신의 언어를 만드는 활동을 실천하고 있다.

장애여성들의 첫 만남은 강렬했다. 사실 일상에서 나와 비슷한 또래의 장애여성을 만나는 것이 어렵고, 장애여성의 경험을 말할 수 있는 자리는 더더욱 부재하기에 각자에게 이 모임은 중요한 의미를 가졌다. 섹슈얼리티가 무엇인지, 나한테 그런 경험이 있긴 한 것인지, 어떤 이야기부터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고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아가면서 몸, 생리, 연애, 섹스, 자위 등을 주제로 내 경험에 집중했다. 이렇게 장애여성들이 모여 자신의 몸에 대해 인식하는 과정은 몸에 대한 주체성을 고민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난 생리를 안 할 줄 알았다.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집에 왔는데 새빨간 피를 보니까 너무 놀랐다.
난 아직 마음에 준비가 안 되었는데 생리를 시작하니까 심리적으로 무서움도 있었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어려웠다.
결국 저녁이 되어서야 언니랑 엄마에게 말을 했는데
“너도 이제 생리를 하네, 어른이 됐네.”라는 말을 들었다.”

“첫 시작은 초등학교 4학년이었는데…
부모님이 기뻐하고 이런 느낌이 아니라 호르몬 주사 맞춰서 못하게 해야겠다고 이야기했다.
난 그 말에 반박을 할 수 없었다.”

“나는 친구들이 다 하는데 나만 늦게 하는 것이 좀 신경 쓰였다.
그래서 첫 생리가 기뻤다.
가족들한테 축하해달라고 하고 혼자 신나서 아픈 거는 상관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가 나 혼자서 어떻게 뒤처리를 할지 걱정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하다보면 요령이 생기겠지 뭐, 이런 식으로 생각했었는데
엄마가 기뻐하기보다 걱정 하는 게 느껴져서 슬펐다.”

장애여성들은 몸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월경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었다. 처음 월경을 시작했을 때의 경험을 이야기하면 공통점이 많았다. 대부분 “너 혼자 그걸 어떻게 처리하냐”, “결혼도 못하고 애도 안 낳을 건데 생리는 해서 뭐하냐. 차라리 수술하는 게 편하겠다”라는 주변의 반응을 접했던 것이다. 이는 장애여성들이 월경을 부정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자신이 여성인 것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자라면서 자신이 여성이라고 별로 생각해보지도 못했는데, 몸은 불현듯 내가 여성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만드는 당황스러운 순간이다. 중증장애여성일수록 월경에 대한 두려움이 컸는데 생리대를 혼자서 처리하기 힘들 때 가족의 도움을 받아야 했고, 불가피하게 아버지나 남자 형제의 보조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이 있었다. 그런 상황을 피하고 싶은 마음과 주변의 반응으로 인해 장애여성 본인도 ‘아이도 안 낳을 건데 귀찮게 생리는 왜 하는 걸까. 차라리 수술하고 싶다. 여자인 게 너무 싫다’는 생각으로 이어진다. 이제는 활동보조인에게 보조를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코멘트를 듣게 되거나 수치스러운 경험을 하는 경우가 있다.

또한 우리는 첫 생리 경험을 나누면서 생리대를 대체할 수 있는 템포, 생리컵, 면 생리대를 같이 보고 의견을 공유하였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이야기 되었던 것은 이 용품들이 생리대를 대체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정작 장애여성의 몸의 맞지 않고 내가 사용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활동보조를 받아야하는 경우에는 장애여성이 활동보조인에게 세세한 보조를 요청하기 어렵고 몸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우려되는 부분들을 이야기했다. 자위, 생리용품 등을 이야기 할 때 장애여성의 몸에 맞는 기구는 거의 없고 이 또한 손의 장애가 없을 경우 시도해 볼 수 있기 때문에 현재 대안이라고 제시되는 것에 대해 장애여성의 관점에서 어떤 목소리를 낼 지 고민과 상상이 필요하다.

따라서 월경은 ‘나는 그냥 장애인인가보다’라고 생각해온 장애여성들이 처음으로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몸의 경험이지만 대부분 불쾌한 경험으로 남게 된다. 몸과 섹슈얼리티는 이렇듯 불편하게 만난다. 몸은 나의 섹슈얼리티를 부정하거나 방해한다. 혹은 섹슈얼리티는 내 몸의 한계를 부각시킬 뿐이다. 장애여성들이 자신의 몸이나 외모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장애가 있는 몸 = 성적으로 매력적이지 않은 몸’이라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장애여성공감(2013),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장애여성공감, p11-12)

정상성에 도전하는 몸들과 만나기 그리고 상상되기

몸의 차이라는 것은 단지 장애/비장애의 차이가 아니다. 장애여성운동은 서로가 가진 각자의 몸과 그에 따른 차이가 어느 정도인지, 그로 인해 서로의 경험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집중적으로 이야기해왔다. 소아마비 장애인은 뇌성마비 장애인을 처음 봤을 때 너무 낯설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장애유형별로도 몸이 다르고, 같은 장애라고 해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무엇이 다른지, 어떻게 다른지를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서로의 장애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생겨난다. 동시에 장애인들 내부의 차이를 살펴보는 과정에서 장애인/비장애인으로 이분화 되어 있는 기준과 경계를 비판하면서 ‘장애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마주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비장애인으로 분류된다고 해도 만성적으로 힘들고 아픈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의 경험이 장애인의 경험과 얼마나 공유될 수 있는 것인지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가진 다양한 몸의 경험을 사회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하다. 몸의 차이에 집중한다는 것은 단순히 ‘모든 몸은 아름답다’거나 ‘자신의 몸을 긍정하라’는 메시지와는 거리가 멀다. 내 몸의 어떤 부분은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떤 부분은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한편으로는 몸이 가진 한계를 인정하면서, 건강하지 않더라도 에너지가 부족하더라도 그것이 곧 자신이 원하는 활동으로부터, 이 사회로부터 배제되어야 하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평상시에는 장애가 있는 나의 몸에 익숙해져서 살아가지만 또 어떤 순간에는 몸의 한계 때문에 좌절하기도 하고 조금 더 ‘정상적’인 몸에 가까워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욕망을 느끼기도 한다. 몸과 맺는 관계는 여러 가지 면에서 복잡하다. (장애여성공감(2013),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장애여성공감, p14) 그렇다면 다양한 몸들이 만난다는 것은 어떤 걸까.

레드립은 작년 한해 나의 존재가 가시화되거나 혹은 가시화되지 않는 상황들에 주목하면서 퀴어와 장애여성의 교차성을 주제로 모임을 지속해왔다. 우리는 논의 안에서 성소수자,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해명해야하는 순간들이 너무나 일상적인 일임을 발견하였고 ‘잘못된 존재로 인식되는 몸’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장애여성과 퀴어의 경험을 듣고, 말하고 싶었다. 레드립은 작년 퀴어문화축제에서 장애여성과 퀴어의 ‘비슷한’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우리 어쩌면… 많이 비슷할지도 몰라!>라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서로가 교차되고 연결되는 경험 안에서 어떤 누구도 나를 혐오하거나 배제할 수 없음을 당당하게 선언하면서 더 많은 자리에서 함께할 수 있는 방법을 질문했다.

“장애여성공감이 지금까지 지켜온 것과 결별해왔던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을 때
장애를 바라보는 동정적인 시선과 차별, 여성이라는 이유로 폭력과 착취의 대상이 되는 것,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혐오를 온전히 받아야 하는 경험은
우리는 누구와 연대하고 함께할 것인지를 고민하게 만들었습니다.
장애여성이 사회적으로 주류의 위치에 놓이지 못하지만
사회구조적인 문제와 인식을 변화시키기 위해 우리의 경험을 말하는 것을 지켜왔습니다.“

”장애여성의 삶에서 시작된 나의 경험들이 다양한 소수자의 경험과 교차되고,
이 경험들이 온전히 소통되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연대의 원칙을 지켜나가기 위해
장애, 여성, 성소수자, 이주민, 청소년 등에 향해 혐오하고 비하하고 폭력을 가하는 활동, 집단, 개인과는 단호하게 결별하겠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말하기를 멈추지 않되,
우리의 차별과 억압만이 특별하고 중요하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비슷한 처지에 있는 소수자들과 함께, 정상성과 보편을 의심하고 싸우는 이들과 함께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는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럼으로써 살아가고 의미 있게 존재할 것이다.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중>”

위의 글은 지난 2월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의 일부다. 장애여성공감은 20주년을 맞이하여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불구’로 무능력한 존재로 규정짓는 사회에 저항할 것이며 소수자에 대한 혐오와 폭력은 용인될 수 없음을 단호히 말했다. 여기 있는 우리는 누구와 함께 연대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을 것이고 의존과 연대의 의미를 다시 쓰고자 했다. 단 하나의 정체성을 가지고 개인을 판가름하는 것이 아닌 복잡하고 다양한 정체성들이 교차하는 한 개인의 삶의 맥락 안에서 온전히 ‘나’로서 존재할 수 있기를, 누구도 배제되거나 차별받지 않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장애여성공감은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과 함께 연대하며 앞으로도 계속, 불구의 정치를 해나가겠다고 선언했다.

정상에 도전한다는 것, 장애여성들은 장애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비정상적’인 존재가 된다. 한국사회는 ‘정상적인 몸’의 기준이 너무 협소해서 ‘정상적인 몸’이라기보다 ‘이상화된 몸’에 가깝다고 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중매체가 이런 기준을 더 견고하게 만들고 있다. 여성의 ‘이상적인 몸’은 마르고, 신체의 균형과 비율이 적절하고, 건강하면서도 여성으로서 성적인 매력을 보여야 하는 그런 몸이다. 정상성에 균열을 내는 에코페미니즘의 관점에서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난 몸들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은 굉장히 중요하다. 비정상적인 몸은 장애를 가진 몸뿐만이 아니다. 트랜스젠더의 몸, 나이든 몸, 뚱뚱한 몸, 질병이나 사고로 인해 훼손된 몸 등도 모두 비정상적인 몸이다. 그런 의미에서 장애를 가진 몸은 비정상성을 공유하는 다른 몸과 만난다고 할 수 있다. ‘비정상적인’ 몸을 가진 많은 사람들은 몸에 대한 기준과 평가를 질문하고, ‘일반적’이고 ‘정상적’이라고 규정되는 것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하며 (장애여성공감(2013),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장애여성공감, p12-13) 

정상에 도전하는 몸들과 만나는 자리를 넓혀가는 것, 그리고 장애여성‘만’의 경험이 아닌 교차되는 경험을 발견하고 상상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관련 자료>

1. 『장애여성운동 15년 동안의 사고 (자료집 읽기: 링크 연결)

2.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장애여성공감 20주년 선언문 읽기: 링크 연결

이슈발언

댓글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