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숙할 수 없어도 즐거운 돌봄 : 완벽하지 않은 서로를 마주보는 관계를 상상하며
고나영(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2022년 숨센터는 해맑은마음터와 거주시설연계사업으로 탈시설지원 활동을 시작했다. 구어소통이 어렵고 24시간 활동지원이 필요한 중증중복장애 당사자들과 만나 사회가 말하는 ‘의사소통이 가능해야’ 탈시설 할 수 있다는 조건에 도전하고 있다. 당사자들의 ‘의사표현을 알아들을 수 있는’ 주변인이 많아지는 것, 당사자의 변화가 아닌 주변인/지원자/조력자들의 변화를 모색하며 탈시설의 기준을 함께 바꿔나가보는 숙박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함께 시간를 기억하는 관계, 서로의 역사가 되길 바라는 관계
봄날의 꽃을 보기 위해 나갔던 날, 강한 햇빛과 더위를 피해 쉴 정자를 찾아 이동했다. 모두가 도착해서 휠체어에서 내려 쉬고 있는데 A님이 도착하지 않았다. 무슨일이 있나 생각하는 순간 동료에게 어디로 가야하냐고 전화가 왔다. 전동휠체어를 최대속도로 올린 채 마중을 나가보니 A님의의 수동휠체어 앞 뒤로 두명의 동료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휠체어를 붙들고 있었다. 알고보니 수동휠체어 바퀴가 움직이려는 순간마다 A님이 브레이크를 걸고, 동료들은 풀고, 다시 걸고, 풀고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동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뒤에서는 휠체어를 밀고 앞에서는 뒷걸음질로 당기며 힙겹게 움직였다. 그 모습을 잠시보다가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서 A님에게 말했다. “A님, 이렇게는 못가요! 싫어도 잠깐 일어서주세요!” A님의 몸에 손을 대자 싫은 듯 인상을 찌푸리고 몸에 힘을 줬지만 “그래도 이렇게 이동하면 A님도, 동료들도 너무 힘들어요”라며 나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만나온지는 벌써 4년 째이지만 매일 만나지 않기 때문에나는 A님을 잘 모른다. 웃음의 의미가 기쁨인지 슬픔인지 괴로움인지 확신할 수 있는 근거가 없다. 그렇지만 ‘빠르게 휠체어 브레이크를 걸 때 저 눈빛, 씨익 웃는 얼굴….A님은 지금 이 상황이 재밌어서 계속 안가고 계신건가?!’ 짧고 강렬한 확신이 가능했던 이유는 한 한 시기에 숙박활동이지만 하루 온 종일을 같이 보내본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다. 연계의뢰서에 쓰이지 않은, ‘A님은 혼자서는 다섯걸음정도 걸을 수 있고, 누가 손을 잡아주면 열걸음까지도 걸으실 수 있다. 밥이 부족하면 식판을 던지고, 조금 짓궂은 면도 보이는 것이 주변사람들이 본인 때문에 곤란해하면 유독 씨이익 웃으시는 것 같다…’를 알 수 있는 시간과 경험이 있었다. 이는 결코 함께 한 시간의 우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함께 일상을 보내는 과정의 좌충우돌을 ‘같이’ 겪어냄을 말하는 것이다.
탈시설캠프는 당사자의 변화가능성 혹은 변화를 중점으로 탈시설과 독립을 말하는 제도에 맞서 구조적인 자원과 주변인들의 변화가 독립의 의미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도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때로는 단호하게 지금 내가 할 수 없는 부분, 참여자가 감내하기도 해야하는 부분을 말하기도 한다. 실제 탈시설 이후 나에게 딱 맞는 환경, 사람을 만날 수는 없다. 아무리 조력자-당사자가 완벽한 돌봄을 위해 애쓴대도 모든 상황에 완벽한 돌봄은 없다. 돌봄을 주로 하는 사람도 주로 받는 사람도 상대를 위해 무리해서 최선을 다하는 시간에 길어질수록 결국 (서로 원하지 않더라도) 일방적인 권력과 주도권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아지고, 내가 하고 싶은 일보다는 상대방이 상처받지 않는 어떤 일을 나보다 중요하게 생각하게 될 수 있다.
거절과 거리두기의 조력 서로에게 맞는 시간, 공간, 거리감, 친밀감… 관계를 맺고 이어가기 위해 조력하고-조력받는 여러경험과 연습이 상호적으로 필요하다. 그 경험치가 많아질수록 내가 원하는 돌봄의 모양도 속도를 찾아내고 협상의 기술도 다양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진1: A님이 조력자 3명과 함께 휠체어로 이동하고 있다>
느리지만 조금씩 다르게
그간의 캠프동안 실수 혹은 크고 작은 사고가 없었던 적은 없었다. 완벽한 세팅은 할 수 없었다. 이는 상호적인 관계속에서 생겨남을 우리는 4번의 캠프를 통해서 알았다. 일정배치, 공간의 접근, 같이 결합하는 조력자들의 컨디션 등 한시도 곁을 떠날 수 없는 참여자들과의 하루에서 순간순간 딱맞는 대안은 만들 수 없었다. 외출 중 갑자기 신변지원이 필요해서 공중화장실에서 거저귀를 갈아야해서 급하게 돗자리를 펴고 신변지원을 하기도 했다. 긴장되고 불편해하는 참여자에게 편안하고 조용한 환경에서 천천히 지원할 수 없었다. 다른 장소에서도 갑자기 소리를 지르거나 물건을 던질 때 주변인들의 눈초리를 받아야하는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다. 참여자가 매우 힘드니 나를 눕혀달라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표현하고 있을 때 알아채지 못하고 계속 활동을 이어간 바람에 야밤에 거주시설의 지원자와 연락해서 상황을 살피기도 했다. 복용해야 하는 약을 놓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우리는 탈시설캠프를 4년째 이어가고 있다. 우리가 생각하는 탈시설 캠프는 최선의 세팅을 유지하며 완벽하게 새로운 일상을 경험해보는 시간이 아니다. 참여자들이 안전을 이유로 어딘가를 가지 않고 하지 않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 되거나 어딘가의 불청객으로 존재하지 않도록, 관계맺을 수 있는 공간찾기는 계속되는 미션이다. 그 미션을 수행하는 과정은 조력자들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렇기에 함께 불청객이 되는 공간을 점유하고 저항하기도 한다. 환대받지 않는 몸, 정상의 기준에서 벗어나는 몸과 함께 살아가는 삶은 예측하고 계획할 수 없는 일이 부지기수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같이 살아 나간다. 같이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어려움, 차별, 혐오, 아픔 등을 같이 부딪히고 저항하는 과정을 기꺼이 함께 겪어나간다. 그것이 매우 짧은 시간일지언정 말이다.
어설픔, 삐걱댐, 기다림
연애를 책으로 배울 수 없듯이, 활동지원도 활동지원인계서로 다 배울 수 없다. 활동가들이 인계서를 따라 조심스레 윗니 아랫니를 전반적으로 닦아도, 어설프다. 안그래도 약한 잇몸에 피가 더 나기도 하고 음식물이 깨끗하게 닦여지지 않기도 한다. 하지만 한 두번 해보면 참여자의 입 속 상황에 맞게 도구를 활용하거나, 속도를 다르게 하는 등 각자의 몸에맞는 디테일한 방법을 익혀가기도 한다. B 님의 조력자로 발달장애여성 상미와, 뇌병변장애여성 나영이 파트너로 휠체어로 이동지원을 할 때 상체를 든 상미는 힘이 세고 하체를 든 나영은 힘이 부족해서 엉덩이는 쿵 떨어지고 다리는 픽 떨어진다. 나영이 “어우 상미언니 힘이 너무 세!”라고 말하자마자 무표정하던 B님이 갑자기 깔깔 웃었다. 우리의 우당탕당 활보의 순간을 B님은 웃음으로 버무려졌던 유쾌한 순간이었다.
어쩌면 돌봄 받는 몸으로만 인식되었던 발달장애여성, 경증뇌병변 장애여성의 몸. 우리가 각자의 몸으로 서로를 돌보고 완벽하지 않지만 이 관계를 만들어간다는 것을 실천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사실 활동지원 자체는 매일 일상을 같이 보내는 시설종사자가 가장 능숙하고, 빠르게 잘 할 수도 있다. 오늘 만나 조력을 하는 활동가들은 일상에서 돌봄경험도 적고, 요령있게 힘쓰는 법도 잘 모르고, 기본적인 것들을 깜빡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탈시설 캠프를 지속하는 이유는 뭘까? 안전을 벗어나 선택이 가능한 공간과 관계를 경험하는 것, 서툴고 다른 조력관계를 만나면서 불편한 기다림을 계속 같이 겪고, 너무 관심을 많이 줘서 부담스러운 친절한 사람들에게 때로는 괜찮으니 신경쓰지 말라고 말하는 시간을 함께 겪는 것. 비록 서툰 손길이지만 빠르게만이 아닌 내 몸에 속도에 맞춰 집중되는 지원을 받아보는 경험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탈시설 이후 무엇하나 마음대로 되지 않는 세상에서, 어떤 것도 완벽할 수 없는 환경에서 겪을 크고 작은 실패들을 짧지만 조금씩 천천히 같이 겪어나갔다.
탈시설도, 탈시설 연습도, 독립 이후도 계속 어설프고 삐걱대고, 당사자도 조력자도 기다림의 순간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이건 누구나, 관계를 맺고 살아가다보면 매일 매일이런 순간이 일어난다. 장애인에게만 독립의 조건과 기준이 따라 붙는 것은 사회구조에 우리는 돌봄의 과정을 통해 질문하고 싶었다. 제도/정책의 제한된 조건들이 지역사회에 나왔을 때도 또 다시 집 안에 갇히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며 함께 깨고 나올 수 있는 몸을 만들어보려는 시도다. 탈시설/독립의 과정에서 갖는 고민이 개인의 몫으로만 남겨지지 않도록 탈시설캠프는 작년에도 올해도 그리고 내년에도 복잡하고 바쁘고 느린 일상을 계속 만들어갈 것이다. 계속 실패하는 돌봄을 지속할 것이다.
<사진2: 모두가 컨디션이 괜찮은 날 숙소 뒤쪽에 산책을 나와 단체사진을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