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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에게 가닿는 몸, 이어지는 돌봄

진은선(장애여성독립생활센터[숨])

 

통증으로 연결된 감각

 

아프더라도 ‘나 여기있어!’ 내가 원하는 존재가 되고 싶어요. 

장애와 노화가 서로를 물들일 수 있을까?

 

더럽거나 불편한 것들이, 나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살릴 수 있다면?                                 

                                                                  <파도: 장애와 노년의 교차적 만남> 퍼포먼스 대사 中 >

 

장애와 노년의 경험을 통해서 고립과 외로움에 매몰되지 않고, 취약함으로 서로 연결되는 순간을 경험한다면 우리는 돌봄의 사회적인 역량을 함께 쌓아갈 수 있지 않을까?’1)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에서 김영옥, 조미경님의 렉쳐 퍼포먼스 <파도: 장애와 노년의 교차적 만남>이 진행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밀어오고 올려내고 몰아치는 파도처럼 장애와 노년의 삶을 빠름과 느림, 기다림, 포기, 통증 등 여러 갈래의 주제들 속에서 만났습니다. 몸의 경험을 통해 각자의 삶을 무대 위에 펼쳐보이면서 ‘이전과는 또 다른’ 변화하는 몸에도 불구하고 ‘효율’을 위해 더 빨리, 빨리를 외치는 과정은 서로의 속도와 방식의 차이가 더 뚜렷하게 드러났습니다

내 몸과 항상 따라다니는 통증은  지나쳐보기 어렵기도하지만 또 장애와 질병을 가진 몸의 일부로 적응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를 “아이구 돼다. 되다말다. 아이구 돼다. 아이씨” 등 노래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어찌보면 적응이란 말이 마치 안정된 상태를 말하는 것 같지만 매일 조금씩 사회가 규정해버린 내 정체성을 비껴내고, 받아들이는 과정의 반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1. 파도: 나이듦과 장애의 교차적 만남 관객과의 대화>

서로를 이해하는 기다림

유쾌하게 풀어낸 통증의 표현들은 내 정체성을 받아들일지의 문제이기 때문에 보다 더 중요한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미경님이 늘 그립고 안부를 물으면서 지내는 장애여성 친구와의 기다림 또한 외로움 속에서도 서로를 잊지않기 위한 일이었습니다. 답장이 오지 않는 시간을 견디는 기다림은 장애와 함께 살아가는 시간을 이해하는 과정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동시에 장애여성인 미경님에게 진화된 몸이 어떤 순간의 포기를 하루를 다 쏟아도 놓지 못하는 상황에 이르러야 자신과 마주하게 될 때, 떠올린 감각이 더 두터워지는 것 같았습니다. 그건 변화된 몸과 시간을 주도적으로 쓰고싶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따라서 ‘더럽거나 불편한 것들이, 나만 살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 살릴 수 있다면?’ 나에게 통증은 삶의 일부로 이해할 수 있는가? 통증이 웃음이 될 수 있는가? 질문하게 됩니다.

 

구색 맞추기2)가 아닌 돌봄으로

‘주렁주렁 치렁치렁’이란 단어에서 보여주듯 돌봄은 기대고, 매달리고, 반복되는 모양새로. 때론 요란하고 불편하기도 합니다. 장애예술이 ‘특수한 지원’처럼 여기거나 장애인예술인의 자격을 끊임없이 증명하게 만드는 구조는 어떻게든 한사람이 배제를 경험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행착오와 실패가 권리의 기반이 되지않는다면 이와 같은일은 반복됩니다. 

접근성은 매뉴얼의 문제가 아닙니다. “완벽하게 세팅된 자리보다 관계를 맺고 싶다”.3) 는 말처럼, 접근성은 서로에게 질문하고, 갈등하고, 함께 실패하는 동료성을 통해 만들어져야 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매뉴얼 바깥에서 흔들리며 만나는 과정들이 우리가 다르게 함께 예술하고 살아가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토대이지 않을까요? 이때 접근성은 물리적인 구조의 변화뿐만아니라 돌봄과 연결되어 함께 바꾸어갈 사회의 방향을 묻는 질문이어야 합니다. 무엇보다.구색맞추기는 겉으로는 참여에 의미를 두고있지만 실제로는 형식만 갖춘 채 실질적인 변화를 실천하지 않는 경우입니다. 즉, 장애인을 동등한 주체로 대하지 않고 단지 행사나 정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참여자’로만 활용하는 태도입니다. 결국 관계 맺지 않고서는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을 더욱 깨닫습니다. 

‘더 거센 파도’는 고통 속에서 새겨지는 감각이 장애와 노화는 쓸모없음이 아닌 새로운 감각의 문을 열고, 관객과의 연대를 넓히고자 합니다. “무인도 사이사이 달빛 고요히 비추네…”라는 시구와 함께 관객과 이어진 말들을 또 잇고 이어가는 장면들이 하나의 파도이자, ‘이미 도착 중인 말’의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사진2. 파도: 나이듦과 장애의 교차적 만남 관객과의 대화, 관객들의 모습>

 

1) 이진희,  2025년 국립현대미술관 <기울인 몸들: 서로의 취약함이 만날 때> 전시, 렉쳐 퍼포먼스 <파도: 장애와 노년의 교차적 만남> 기획 글, 2025. 

2) 이진희, ‘구색맞추기는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치렁치렁 주렁주렁 돌보며 예술하기,’  2025 ACC 접근성 강화 주제전 연계 학술 프로그램 <서로를 기대며>, 2025.

3) 위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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