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조금 덜 두려운 세상 만들기
장애여성공감은 함께 배우고 경험을 나누며, 서로 지지하는 장애여성학교를 9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장애여성학교는 미술반, 음악반, 한글반과 장애와 여성주의반이 운영되고 각 반들은 올해 장애여성학교의 기조인 “반차별”과 “공동행동”을 각 반의 방향과 특성에 맞게 풀어내고자 합니다. 이 중 장애와 여성주의반은 다양한 운동은 반차별과 어떻게 만나는지 함께 배워보고, 복잡한 차별구조를 알아보며 우리는 운동과 일상에서 어떻게 반차별 운동을 해나갈 것인지, 그리고 우리는 어떤 변화를 맞고 추동할 수 있는지 이야기 해보고자 합니다.
지난 5월 23일 수요일은 장애와 여성주의반 5번째 강의가 열렸습니다. 이 날은 빈곤사회연대 김윤영 활동가가 <반빈곤운동과 반차별>이라는 주제로 강의를 해주셨습니다.
※ 아래의 내용은 김윤영 활동가의 강의내용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빈곤의 원인에 대한 관점에서 출발
빈곤은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출발하는 걸까요? 빈곤의 원인을 짚는 큰 두 가지의 관점은 빈곤의 원인에 대한 다른 생각과 대안을 말하고 있습니다. 기능주의 관점은 빈곤을 사회적 징벌로 열등처우의 법칙을 통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게으르고 의욕 없는 개인이 노동력을 제공하지 않을 때, 사회는 열등한 대우를 함으로써 개인의 노동의지를 고취시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관점이, 지금 한국사회의 현실을 잘 설명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가난할수록 높은 이율의 빚을 쓰고, 하루 10시간 노동으로 10여년을 일을 해도 자신의 집을 살 수 없는 등의 사회의 수많은 지표는 더 많은 제약을 통해 더 많은 기회가 박탈당하는 사람들의 빈곤이 개인의 게으름과 무능으로 인해 발생하고 있지 않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 갈등주의 관점은 불공정한 자원배분으로 인해 빈곤이 발생하고 이는 계층소득분배/재분배를 통해 개선 가능할 수 있다는 관점입니다. 빈곤의 대물림, 아무리 일해도 벗어날 수 없는 가난한 삶을 중단하기 위한 대안을 사회가 함께 찾아나간다는 데 있어 의미 있는 관점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빈곤의 원인에 대한 관점은 아래 빈곤과 관련한 한국사회의 단면을 살펴보며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빈곤의 형벌화 조치, 발생하는 차별
2011년 8월, UN에서는 극빈과 인권에 관한 유엔특별보고서를 채택했습니다. 이 보고서는 빈민을 처벌하고 분리, 통제하는 법과 규제 관행들을 분석하였으며, 특별보고관은 네 가지로 빈곤의 형벌화 조치를 분류했습니다.
1. 빈민이 공적 공간에서 생계유지 행위를 하는 걸 부당하게 제한하는 법과 규제와 관행
2. 공적 공간의 고급 주택화와 민영화와 관련된 도시계획 규제와 조치들
3. 빈민의 자율성, 프라이버시 및 가족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공적 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에 접근할 수 있는 자격조건의 강화
4. 빈민의 자유와 개인적 안전을 위협하는 구금과 투옥을 과도하고 자의적으로 이용
위의 빈곤의 형벌화 조치는 한국사회에서 쉽사리 찾아볼 수 있습니다. 불법노점상, 철거민, 노숙자, 임차상인 등 쫒겨 나는 사람들은 언론과 권력을 통해 손쉽게 불법과 횡포한 세력으로 분류당하고 갈등과 사회발전에 기여하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되어 왔습니다. 또한 이렇게 묘사되고 인식된 존재는 ‘시민’과 분리된 채 너무나 간단하게 제재의 대상이 되어왔습니다.
노점상은 상업 활동의 역사와 궤를 같이 했던 존재로 삼한시대에서부터 존재하였습니다. 실제 현 상공회의소 앞에는 상업 활동의 대표적 상징으로 보부상 동상이 세워져 있기도 합니다. 88년 올림픽을 앞두고 정부는 ‘도시미관’을 이유로 노점상과 빈민촌을 폭력적으로 대거 철거하는 과정을 거치기도 하였으나, 그 이전 시기까지 노점상은 불법적인 존재가 아닌 존재로 사회에서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노점상이 ‘불법노점상’으로 낙인화 되기 시작한 것은 도시가 생성되고 도로를 점유하는 과정에서 발생하였으며 이는 불명확한 아파트값 하락 등의 재산권의 침해 등으로 ‘불법’을 정당화하고 있습니다.
철거민은 도시재개발/계획과 궤를 같이 하여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도시의 부의 창출을 위한 속도 속에서 배제당하는 존재들입니다. 87년 상계동 빈민촌은 1천여 명의 구청직원, 용역, 깡패들의 퇴거 명령 속에서 무차별적으로 집이 부수어졌으며, 이는 2009년 용산참사, 최근의 서촌 궁중족발 사건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주택보급률이 이미 100%가 넘어섰으나 내 집을 가진 이들은 많지 않은 이곳에서 재개발의 과정과 동의는 그 지역에서 살아가는 주민들을 배제한 채 진행되고 있습니다. 특히나 건물에 세를 주고 살아가야 하는 원주민들은 현재의 주택매매 관계에서 소유자가 아니기에 거주할 권리가 너무나 손쉽게 박탈당하고 있습니다. 무단점거, 비합법적인 존재로 그려지며 그 목소리를 불법으로 낙인찍히는 과정을 우리는 많은 사건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불법적인 존재는 이들만이 아닐 것입니다. 노숙인들의 구걸행위, 판매행위는 심지어 경범죄로 분류되어 실제 처벌을 받고 있습니다. 2011년 서울역 노숙인 퇴거조치 이후 서울역에는 청원경찰이 상주하여 짐이 크거나 행색이 추레한 이들을 서울역 밖으로 몰아내는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합니다. 빈곤한 이들은 사회의 밖에서 노숙인, 철거민, 노숙인의 다양한 모습을 띄며 이 사회 밖으로 조용히 사라지기를 요구받고 있는 것입니다.
부동산 불평등 지표를 보면 강남 3구 미성년자 29명의 총 소유주택 합의 497채인 반면 서울청년 5명중 한 명은 고시원/옥탑에 거주하고 있습니다.(2015년 기준) 변화하는 도시에서 쫓겨나는 사람들, 이 공간은 누구를 위해 구성되고 있는 걸까요? 돈이 없는 이들, 재산상의 권리를 말하기 힘든 이들은, 살아가는 공간에서 생계유지행위가 제한당하고, 처벌당하며, 불법적인 존재로 규정당하기도 합니다. 돈이 없는 빈곤이 불법적인 존재로 만들어지는 사회에서, 이러한 존재들을 향한 사회적 차별은 손쉽게 정당한 행위로 인정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가난이 조금 덜 두려운 세상 만들기
‘불법적인 존재’는 복지체계 내에서 환영하지 않는 의심당하는 존재로 호명당하기도 합니다. 공적서비스와 사회복지급부신청 과정 속에서 강화된 조사와 의심받기는 동주민센터 – 구청 – LH공사 – 국민연금공단을 거치며 끊임없는 단련을 거쳐야 합니다. 많은 가난의 증명을 제출해야 하며, 반복적인 질문을 곳곳에서 서술해야 합니다. 심지어 긴급복지서비스 신청시에는 소유한 모든 통장내역을 제출할 것을 요구받기도 합니다. 이미 개인정보제공동의를 제출하기에 공기관에서 조회가능한 것들도 개인이 타기관을 거쳐 모든 증명을 하길 요구받습니다.(이러한 증명의 책임을 개인에게 넘길 경우 복지재정감축이 가능하다는 연구결과가 있기도 합니다.)
나의 가난을 증명할 것, 이 과정에서 신청자는 신청 절차 속에 내재된 ‘합법적인 의심’을 해명해야 하며, 사회적인 낙인 또한 감당해야 합니다.
“주민센터에 갈 때는 구걸하러 가는 느낌을 받아요. 뭔가 의심스러운 눈빛, 그런거 있잖아요. 왜 저나이에 돈도 없으면서 일하지 않느냐고 캐묻는 눈빛.”
“‘제가 어떻게 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고 말했더니 사회복지사가 위아래도 이렇게 쭉 쳐다보더라구요. ‘아프신거 아니잖아요. 일하실 수 있잖아요. 일용직이라도 하세요’ 이렇게 얘기하는 거예요. 아, 정말, 그냥 그 자리에서 그대로 꺼져버리고 싶더라고요.”
-긴급복지제원제도를 신청한 한부모 여성가장
김윤영 / 국민기초생활제도 수급권자의 경험을 통해 본 ‘빈곤의 형벌화’조치
이와 같은 과도한 자격조건과 밀어내기 방식은 복지제도를 권리가 아닌 수혜로 자리 메기게끔 작동합니다. 또한 신청자/수급권자를 향한 사회의 뿌리 깊은 통념 – 사지 멀쩡한데 일해야지, 젊은 놈이, 저 집은 안 돼 등등- 은 복지수급으로 유지하는 삶을 적절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하고 본인의 현재 상태를 부정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가부장, 가족주의적 윤리의식은 부양의무자 기준, 정상가족이라는 모습으로 수급자들을 공격합니다. 가족들은 서로를 부양해야 한다는 강한 도덕적 가치, 사회의 문제가 아닌 우리 가족의 특수한 문제로 보고 가족전체가 반성해야 하는 것으로 보는 관점은 빈곤한 가족일수록 책임과 반성을 뿌리 깊게 요구받습니다.
이렇듯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곤은 삶의 모든 영역에 걸친 박탈을 의미합니다. 생산성과 이윤이 중심된 사회에서 빈곤은 무능과 게으름, 실패의 결과물로 취급받으며 법과 제도에 숨겨진 차별의 관행은 가난한 이들에 대한 낙인을 정단한 것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 안정망이 부실한 이곳에서 가난은 누구라도 언제나 경험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가난에 빠지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를 가졌다는 것은 기초생활보장제도의 가장 중요한 인권적 전제입니다. 이 전제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재 빈곤층의 인간답게 살 권리,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보장해야 하며 방식과 방향은 우리 사회에 던져진 과제입니다.
나오며…
쉬는 시간도 까먹을 만큼 뜨거웠던 강의는 참석자들의 질문으로 늦은 시간까지 이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자의 한마디를 덧붙이며 각자의 현장에서 함께 반차별을 외치기를 기대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지와 관련하여 납세자들의 동의를 받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사회적 설명을 말하고 있습니다….중략….공공성과 복지와 관련된 권리를 돈을 가진 이들만이 누릴 수 있느냐, 라는 것에 저는 동의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