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웹소식지>기획>서로의 삶을 지키면서 당당하게 의존하기

장애여성공감에서 ‘돌봄’을 고민하면서 사회적으로 장애여성이 돌봄을 수행하는 역할은 잘 드러나지 않는 구조의 문제를 이야기했습니다. 장애여성이 돌봄을 받는 위치가 아닌 서로 잘 돌보는 관계를 잘 맺기 위해서는 몸의 차이를 드러내고 실패의 경험을 말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글은 제 9회 공익인권법 실무학교에서 발제한 내용을 정리한 글입니다.

 

서로의 삶을 지키면서 당당하게 의존하기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진성선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
나는 일상생활을 하는데 전적으로 돌봄이 필요한 장애여성이다. 장애인은 ‘돌봄이 필요한 사람’으로 쉽게 상상된다. 하지만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몸의 보조를 받는 일은 복잡한 감정과 관계들이 얽혀있다. 최근에 장애인거주시설에서 살고 있는 장애여성과 소통하면서 “선생님 감사합니다”, ”죄송합니다”라는 많이 듣는다. 시설의 통제적인 구조에서 당사자가 선생님 이외에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동료, 친구로서 다양한 관계를 떠올리기 어렵다. 나의 몸이 타인에게 짐이 되고 무력해지는 순간이 반복되는 경우 관계에서 낮은 위치에 존재하거나 나의 노동가치를 인식하지 못한다. 이렇게 평등하지 않은 관계는 시설이라는 공간에 한정되지 않고 지역사회에서 나와도 장애여성의 삶은 시설화되기 쉽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고 다른 관계를 시도하는 과정은 내 삶의 주도권을 갖는 것이며 내가 살아온 몸 자체가 변하는 일이다.

보호자는 어디 계세요?
흔히 ‘장애인’은 아픈 사람이라고 오해받는다. 물론 시간이 흐를수록 장애가 심해지거나 통증이 생기는 등 다양한 몸의 변화들을 마주한다. 장애와 아픔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지만 그 경계들을 넘나들며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장애인은 모두 아플거야’라는 전제는 각자가 처한 현실이나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은지 지운 채 단순히 장애를 치료하고 재활해야 되는 대상이 된다. 얼마 전에 발달장애여성과 활동지원서비스 공단 심사를 받으러 갔을 때 만난 직원은 나를 보며 당연하다듯 대상자냐고 물었다. 장애인이 외출할 때 옆에 있는 사람은 실제 관계와는 상관없이 보호자로 여겨진다. 사실 이런 상황은 익숙한 장면이다. 다른 공간에 가더라도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 돌봄을 할 조력자 일거라고 상상하지 못한다. 그래서 관계에서 서로의 삶을 이해하고, 갈등하고, 실패하는 과정에서 나는 다른 동료들의 몸을 살피는 역할을 하거나 대상화되지 않고 보조를 받기 위해 조력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원칙들을 지켜가는 일은 나와 상대방을 존중하는 방식이다.

동료와 연대가 필요하다
활동지원현장은 중년 여성들이 많고 대부분은 아이를 양육한 경험이 있다. 나는 아직 20대이고 젊지만 신변보조를 필요로 한다. 보조를 받을 때 활동지원사가 몸의 변화를 살피고 발견하는 역할이 필요하지만 내 몸을 보이고 싶지 않기도 하고, 어떨 때는 익숙한 여러 감정과 관계의 역동 등 복잡성을 알아야만 서로를 이해할 수 있기도 한다.

신변보조를 받는 경우 냄새, 더러움 등 활동지원사와 관계에서 긴장감이 있다. 장애여성의 경우 생리대를 교체해야 하는 경험은 한층 더 복잡한 문제였다. 내가 장애여성으로서 살아온 삶과 현재 활동지원사의 반응이 중요한데 “같은 여자끼린데”, “딸 같으니까”와 같이 가족 같은 마음이 아닌 공적인 업무로 인식할 때 서로의 관계를 이해하게 된다. 구체적으로 신변보조를 할 때 몸이 너무 밀착되지 않으면서 부담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실제 어떤 모양과 세기로 몇 번을 닦는지, 내 몸이 편한 방식들을 소통하고 조율하는 과정이 반복된다. 이용자가 보조를 받기 위해 보이지 않게 조력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활동지원사와 서로 돌보는 관계라는 인식은 존중하는 관계의 기반이 된다. 실제로 활동지원사 중 남편이 모든 결정권을 대리해서 혼자 해본 경험이 거의 없는 경험은 장애여성의 독립과 만난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노동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성적 욕망이 없는 존재로 판단되는 경험은 장애여성의 성적권리, 재생산권과 만난다. 가부장제 사회 안에서 자신을 돌본 경험이 없는 활동지원사 역시 기관에서 소모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 역할로써 동료가 되어갈 때 상호존중하는 관계가 가능해진다.

서로를 돌보고 책임지는 관계
장애여성운동 안에서 ‘의존성’을 고민하며 누구나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고, 서로 잘 의존하며 살아가는 것이 독립적인 삶을 사는 것이라고 이야기 해왔다. 최근에 장애여성활동가의 건강 문제로 동료로서 일정기간 합숙을 하기로 결정하면서 집을 구하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운동을 규칙적으로 하는 등 일상을 함께 했다. 세달 간의 합숙을 마친 후에 함께 했던 활동가는 “장애여성공감을 지지기반으로 제안받고 실행되기까지 활동가들이 동료로서 나를 조력했고 지금도 지속하고 있다,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의 몸과 마음을 살피고 더 건강하기 위해 돌보는 시간이 필요함을 느낀다”고 말했다. 제도가 상상하지 못하는 돌봄을 개인 간,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실천할 지 고민하며 동료로서 같이 책임지는 과정이었다. ‘아프고 이상한 몸’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를 돌보고 있는데 사회는 이것을 어떻게 인정할 것인가. 실제로 돌봄을 실천하며 일상을 채워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우선 귀담아 듣는 것이 그 시작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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