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학교 <누구나 모여라! 체육반> 체육대회 리뷰- 일단 모이자, 같이 해보자, 몸으로 만나자!
정주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나는 ‘체육대회’하면 상이 떠오른다. 누구보다 빨리 가고 누구보다 점수를 많이 받은 사람에게 주어지는 금빛 상. 이 상의 주인공으로 우리는 장애여성을 떠올린 적이 있을까? 아니 애초 체육대회에 함께할 수 있는 사람에 장애여성을 떠올릴까? 공을 어떻게 찰 거야? 던질 거야? 달릴 거야? 너 할 수 있어? 못할 것 같은데….체육대회 구성원 중에 휠체어를 탄 혹은 보조기를 찬, 혹은 또 다른 다양한 몸을 떠올린 적이 있을까? 우리가 함께 경험해 왔던 학교와 광장과 운동장은 서로의 몸에 맞는 운동 방법을 찾고 규칙을 이해할 지 묻는 사람은 많지 않다. 대부분의 체육대회는 장애가 없는 사람에게 편한 방식이고, 목적도 이기기라서 기준에 벗어난 사람은 운동장에 같이 있을 수 없다.
올해 장애여성학교에서는 늘 그렇듯 서로 다른 몸이 뒤섞이는 경험을 하려 했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고, 쑥덕대는 다양한 몸들과 어떻게 즐길 수 있을까? 작년엔 으라차차<체육반>이었다면, 올해는 누구나 모여라! <체육반>으로 체육대회를 하면 어떨까 상상해봤다. 장애여성공감이 처음이어도, 활동을 잘 몰라도, 운동을 잘 하지 못해도, 비틀대고 흔들리는 몸으로 일단 만나고 부딪하고 싶었다. 함께 팀을 이루어 각자의 속도대로 게임을 즐기는 것, 펴지는 만큼 걷고 구부려지는 만큼 공을 날리고, 뒤뚱대는 나의 몸으로 뛰어서 우리팀의 속도를 만들어 내는 것. 승자만이 있는 체육대회가 아닌 더불어 즐기는 체육대회를 만들고 싶었다.
강사인 데조로님과 몸으로 만났던 경험들은 언제였는지, 우리는 어떻게 만날지 이야기했다. 데조로님에게도 우리에게도 어려웠다. 다같이 할 수 있는 게임 방법은 뭘까, 어떤 도구로 어떤 움직임들이 가능할까, 팀으로 할 수 있는 게임에 승패가 없어도 우리는 즐거울 수 있을까? 같이 궁리하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체육대회를 본격적으로 여는 건 처음이라 막연하고 어려웠지만, 떨리고 설렜다.
그런데 준비는 예상보다 어려웠다. 빌릴 수 있는 체육관은 지하에 있고 그곳엔 엘리베이터와 경사로가 없다. 장애인화장실이 있는 곳은 일찌감치 예약 마감! 겨우 찾은 공간에는 아뿔싸, 가까운 역에 엘리베이터가 없다. 누구는 가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일하는 시간이 겹쳐 연차를 쓴다고 말하기가 어렵기도 하고, 연차가 적어 쓰는 게 고민되기도 했다. 또 다른 참여자는 체육대회를 위해 일찍 퇴근하려고 하니 매니저에게 계약서에 쓴 근무 시간이라 갈 수 없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다. 같이 할 장소를 찾기도, 같이 모이기도 쉽지 않았다.
[사진 1] 누구나 모여라! 체육반 홍보 카드뉴스. “서로의 몸을 기울이며 움직이고 함께 도전해보는 운동을 해봐요!” 라는 문구가 있다. 그 밑으로 모집 대상, 일시, 횟수가 있다.
우왕좌왕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마음이 분주했지만 체육대회 날이 다가올수록 “궁금해, 기대 돼, 신기해” 각자의 기대를 품은 신청서가 도착했다. 직접 만나기 전 우리는 전화로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했다. “나는 보통 부축이 필요한데 혼자서도 걸을 수 있어요.”, “뛰는 건 살짝, 걷기는 30분.” ,“갈 때는 스쿠터를 타고 가요…” 처음으로 만나는 우리들은 설렘 반 기대 반 우려 반 걱정 반 각양각색의 마음으로 몸에 관해 이야기했고, 함께하려면 어떤 합이 필요한지 이야기했다.
[사진 2] 체육대회에서 모두가 둥글게 모여 있다. 조경미 활동가가 오늘의 활동을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체육대회 날이 되었다. 각자 올 수 있는 방법으로 속속 모이는 사람들. 주황팀, 연두팀으로 색에 맞는 손목보호대를 맞춰 꼈다. 팀을 나누니 괜시리 드는 이기고 싶은 마음이 스물스물. 그래도 팀을 나눈 건 누가 이길지 겨루는 게 중요하기 보다 다 같이 참여하고 협동하기 위함 임을 약속했다. 우리는 ‘천천히, 즐겁게, 함께, 모두의 속도로’라는 마음을 계속 떠올리며 인사를 나눴다. 새로 온 사람도, 공감에서 오랜 기간 회원으로 활동하는 사람도 오늘 하고 싶은 체육대회를 이야기했다. 같이 즐겁게, 서로를 알아가는 체육대회가 되었으면 한다는 마음이 모였다.
게임은 총 5가지였다. 2팀이 일렬로 서서 머리 위로 짐볼을 뒷사람에게 넘겨 맨 뒷 사람이 다시 첫번째 사람에게 건네기, 바구니에 풍선을 담고-에어컨의 바람을 뚫고!- 골인하기, 커다란 짐볼을 굴려 목표에 맞추기, 두세 명씩 짝을 지어 짐볼을 몸에 끼고 반환점을 돌아오기. 그리고 모든 참여자가두 양쪽으로 마주보고 서서 풍선을 끝에서 끝으로 보내기까지, 아자아자! 힘을 복돋는 응원으로 시작한 게임들은 매순간이 즐거운 난관이었다. 내 앞으로 다가온 공, 풍선을 어떻게 움직이지? 공과 풍선은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갔다. 정중앙에 맞추려고 했는데 기울어진 몸의 방향에 따라 공은 도르륵 왼쪽으로 계속 굴렀다. 공을 발판으로 치려고 휠체어로 달려왔는데 말랑거리는 짐볼이 휠체어 밑으로 쑥 말려들어갔다. 다음 달리기 선수는 누구? 절뚝이는 발걸음으로 달리기 선수를 해본 경험이 없다. 앗 내가 나서볼까, 빠르지 않을텐데 괜찮을까 주저된다.
[사진 3] 체육대회 진행 모습. 데조로님이 중앙에서 서서 오른쪽 팔을 들어 신호를 보내고 있다. 데조로님을 중심으로 두 팀이 각각 한 줄, 총 두 줄로 있다. 맨 앞에 서있는 늘봄님, 연지님이 짐볼을 품에 들고, 뒷 사람에게 넘기길 기다리고 있다.
계속 안 되면 조급하고, 민망하기도 하고, 짜증이 올라온다. 시간은 흘러가고 사람들이 기다리고, 옆 팀은 모두 마쳐간다. 그럴 때 옆에 있는 사람들이 같이 반응했다. “끝까지! 화이팅! 침착해!” 옆에 있는 사람들은 같이 방법을 찾으려 소리를 외친다. 몸을 왼쪽으로 틀어볼까. 그럼 나는 어디에서 어떻게 공을 쥐고 있을까. 좀 더 오른쪽으로 가서 굴려볼까. 제가 에어컨 바람을 꺼볼게요. 발판이 안 되면 내 팔을 휘저을 수 있으니 팔로 공을 때리면? 등을 대고 가볼까. 같이 방법을 찾으며 용기를 내보기도 한다. 서로의 몸이 처음이라 어떻게 하지 긴장도 되고 잘 모르겠기도 하다. 그래도 우리의 작당이 모여 방법을 찾아 마침내 공이 맞고, 마지막 사람이 들어오고, 풍선이 도착하면 같이 환호했다. 마지막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여성이 슝 달려 도착할 땐 묘한 쾌감이 들기도 했다.
[사진 4] 두세 명 씩 짝을 지어 짐볼을 몸에 끼고 반환점을 돌아오기 게임을 하고 있다. 주황팀의 조화영님, 사과님, 초록팀의 고나영님, 김서윤님, 아자님이 반환점을 돌고 있다.
우리는 동그랗게 둘러 모여 체육대회에 함께 한 소감을 같이 나눴다.
체육시간에 가만히 앉아있기만 했었는데, 다 같이 하는 분위기라서 정말 좋았고, 승패가 가려지는 게 아니라서 마음 편하게 임할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거 같구요. 그리고 약간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어서 더 재밌었던 거 같긴 해요. 앞으로도 이런 활동이 있으면 더 참여하고 싶긴 해요.
되게 서로 독려하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도 기억에 남고요. 그래서 되게 뭔가 서로 운동하는 것만이 아니라 알아가고, 그 사람에 맞게 물어봐주고 많이 못해봐서 아쉬운 것도 있고요. 공으로 주고 받기 하거나 풍선이동해오거나 하는 것들은 되게 다급하게 시간에 맞게 해야 해서 되게 재밌었고 다른 게임을 하면 뭐가 있을까 생각도 했던 거 같아요.
처음 했던 체육대회임에도 불구하고 너무 재밌었고, 인원이 좀 더 많았으면 좋겠어요.
[사진 5] 다시 모두가 둥글게 모여 소감 나누기를 하고 있다.
손등, 팔꿈치에 튕겨 풍선들이 바람에 날린다. 통 통 풍선은 허공으로 튀어 올라가고, 풍선을 받아치려 누군가 엇박자 리듬으로 달려간다. 통 받아친 풍선이 다시 뜨면 띠링 전원음이 울리며 휠체어 바퀴가 힘차게 달려간다. 체육대회에서 함께 한 우리 얼굴은 빨갛게 상기되어 있다. 올해 제일 많이 움직였는지도 모른다. 겨드랑이는 이미 땀에 젖어있다! 그래도 괜찮다! 함께 해서 우리는 더 오래, 더 많이 만나고 싶다.
즐거운 마음, 아쉬운 마음, 다음엔 또 다르게 해보자! 싶었던 순간들. 들뜨고 기대되는 마음으로 오늘의 질문을 모아 다음의 체육대회를 만들고자 한다. 비뜰거리고, 굽힌 몸을 새로 뻗어보고, 움직여보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다 같이 찾아보았다. 앞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만나 관계 맺어가는 시도를 계속 해나가려 한다. 앞으로도 있을 다음 활동에서 즐겁게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