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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쉴 권리를 쟁취하기 위해, 필수 의료기기 지원 보장하라

낙지(장애여성공감)

숨쉬기 위해 싸워야 한다면

 

한사랑마을에서 탈시설 한 장애여성 이정민 님은 누워서 왼발로 글을 쓰고, 영상을 만들며, 호흡기로 숨을 쉰다. 누워서 탈 수 있는 장애인 콜택시가 없어 이동 시에는 구급차 이외 선택지가 없다. 올해는 정민 님에게 맞는 접근성을 함께 고민하며 보조기기 지원사업에 신청했다. 신청서에는 ‘신체 기능/제한 수준’을 묻는 질문들이 적혀 있었고, 이 기준은 정민 님 몸에 맞지 않았다. 우리는 문항을 지우고 다시 만들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적었다. 평가에서는 정민 님의 “신체 기능을 실제보다 더 ‘좋은’ 것처럼 적은 듯 보인다.”고 말했지만, 실제로 정민 님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고는, “내가 만났던 한 발로 쓰는 사람 중에 가장 섬세하게 (기기를) 사용한다”며 신청서에 대한 문제의식에 동의했다. 

 

지금 정민 님은 몸에 맞는 목관을 사용하기 위해 투쟁 중이다. 정민 님은 기관절개수술을 받아 기도에 목관(기관절개튜브)을 삽입하여 인공호흡장치로 호흡해야 한다. 가래 제거를 위한 석션을 오랫동안 사용하여 기도에 굳은살이 생겼기 때문에, 목관의 길이가 굳은살을 통과하여 삽입될 수 있도록 충분히 길어야 하고 목 안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고정되는 재질이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이러한 제품이 생산되지 않아 미국 회사의 제품을 수입해 쓰고 있었다. 그러나 올해 초 병원에서 정민 님이 사용하던 목관이 단종되었다는 소식을 사실상 통보받았다. 목관의 교체 주기는 한 달에 한 번. 정민 님과 가족들은 병원⋅의료기기 상사 등 수소문을 통해 급하게 재고를 3~4개 확보했으나, 지난 5월 경 재고를 거의 다 사용했다. 당시 병원에서는 다른 대체품을 제안한다고 했지만 대안이 없었기에 그 목관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걸 알면서도 착용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정민 님은 목관을 착용한 후 수시로 열이 나고 숨도 쉬기 어려웠다. 탈시설 이후 차근히 시도하고 지켜 왔던 일상의 움직임을 유지할 수 없었다.

 

시급하게 대책을 찾아야 했으나, 전문적인 지식과 의학적 판단이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에 관련 정보도 하나둘씩 찾으며 진행해야 했다. 정민 님과 가족들, 그리고 숨센터는 기존 제품 수입사 및 제조사, 국내외 의료기기 회사를 찾고 문의했지만 기존 제품은 이미 3~4년 전에 전 세계적으로 단종된 상황이었다. 남은 재고도 대체품도 찾을 수 없었다. 6월 초, 결국 얼마 남지 않은 기존 제품을 다시 사용하면서 재고는 단 하나 남은 상황이다. 하루라도 더 빨리 몸에 맞는 목관을 찾고 안정적으로 지원받을 수 있는 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생존권을 보장할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

 

한국의료기기안전정보원(이하 정보원)의 ‘희소·긴급도입 필요 의료기기 공급 사업(이하 희소 의료기기 사업)’은 “희귀·난치질환자 등의 치료·수술에 필수적이나 국내 공급이 되지 않는 의료기기를 국가가 직접 신속하고 안정적으로 비축·공급”하는 제도이다. 지난 6월 7일, 이 사업에 신청했으나 단종된 경우 방법이 없다는 이유로 반려 처리되었다. 이후 몇 차례 긴급 지원을 요구하는 민원을 제기하고 보건복지부 민원이 식약처에 이송되고 나서야 정보원에서 관련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정민 님이 숨 쉴 권리를 위해서 분투하는 사이 정부와 병원으로부터 그 어떤 안내와 지원도 받지 못했다. 병원에서는 “(목관을 타제품으로 교체한) 다른 사람들은 괜찮더라.” “어쩔 수 없다.” “사실 환자가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의료에 대한 전문성, 권력이 작동하는 병원이란 공간에서 ‘환자’의 위치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정민 님은 폐가 안 좋아질 수 있어 코로나 시기 외에는 목관을 교체하는 데 한 달 반 이상을 넘겨 본 적이 없지만 감염의 위협에 맞서고 분노하며 위험을 감수하고 있다.

 

안녕하세요. 저는 미국 회사에 있는 목관을 사용하는 사람입니다. 최근에 제가 사용하는 목관이 단종된다고 해서 병원에서 추천해 준 다른 회사 목관을 사용했는데 그 목관이 제 몸에 안 맞는지 숨쉬기도 너무 힘들고 생활 자체가 안 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남아 있던 미국 회사 거로 다시 사용했는데 그 목관을 못 써서 지금 아주 어려운 상황입니다. 지금 최대한 저한테 맞는 목관을 찾고 있어요. 그러나 병원도 별로 안 도와주고 정부도 적극적으로 안 도와줘서 너무 힘든 상태입니다. 단종소식을 미리 알려주셨다면 저희도 미리 찾아보고 대비를 했을 텐데  최근에 알려 주셔서 저희도 너무 당황스럽습니다. 

 

만약 저한테 맞는 목관을 찾더라도 그 목관을 구매해서 사용해야 하는데 비용도 지원이 안 돼서 너무 걱정스럽습니다. 저는 휠체어도 맞췄는데 못 타고 있어요. 못 타는 이유는 휠체어에 타고 내릴 때 목관이 움직일까 봐 못 타고 있습니다. 목관이 움직이면 숨쉬기가 힘들어서 병원에 가서 갈아야 하는데 목관이 없으니까, 방법이 없습니다. 원래 위생 때문에 한 달에 한 번씩 목관을 갈아야 되는데 지금 그것도 3개월째 못 하고 있습니다. 개인이 안 찾으면 병원도 신경 안 쓰고 정부도 이런 상황을 모르는데 우리가 어떻게 하라는 말이죠? 지금 저 이 목관이 없으면 숨 못 쉬어서 죽는데 개인이라도 찾아야 되지 않나요? 돈이 안 돼서 이 목관을 안 만드는 건가요? 그럼 이 목관을 쓰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라는 거죠? 저희는 목관이 없으면 죽습니다. 

 

 – 식약처 및 보건복지부의 대안 부재에 대한 문제제기, 이정민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 보건복지부 등 관련 정부 부처는 구별된 역할과 권한을 명분으로 책임을 서로에게 떠넘긴다. 그러는 사이 희소 의료기기 사업 신청뿐만이 아니라 생존에 필요한 의료기기를 사용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절차는 모두 개별의 몫이 된다. 필요한 절차와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당사자가 정보를 적절히 안내받을 수 없다면 소용이 없다. 이 사람에게 지금 필요한 지원이 무엇인지 묻고 자원을 연결하고 체계를 활용하는 역할로서 정부는 생존권을 보장하는 책임을 이행해야 한다.

 

필수 의료기기 긴급 도입 지원 체계 마련하라

 

8월 8일 숨센터와 식약처는 정민 님의 긴급 지원을 위해 면담을 했다. 식약처는 “외국회사의 경우 구체적인 정보 공개를 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대체 목관을 찾기 어려우며, 의료기기 허가 외 제품 생산 요구는 소관 밖이기 때문에 국내 제조사 생산 요청은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언뜻 맞는 말을 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정부가 어떤 관점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지에 따라 정책의 내용과 실천 방향은 달라진다. 여기엔 자본의 논리가 여실히 개입되어 있다. 필수 의료기기 공급을 수입에만 의존할 때, 기업과 병원이 수요가 적고, 수익성이 낮다고 판단하면 공급은 언제든 중단될 수 있다. 압도적인 정보와 권한을 가진 정부는 그만큼의 책임과 자원을 가진다. 영역과 권한 문제로 책임을 방기하는 순간, 권리는 삭제된다.

 

숨센터에서 기존 제품과 가장 사양이 비슷해 보이는 폴란드 회사의 제품을 발견했고, 정민 님은 이 제품의 샘플 사용을 앞두고 있다. 당장 할 수 있는 건 병원에 방문해서 이 제품이 몸에 맞는지 확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병원에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투쟁이 필요하다. 희소 의료기기 사업을 진행하면 지정까지 최소 12주가 걸리고, 이후 급여 적용은 별개의 문제다. 급여 적용에서 심의에 걸리는 시간은 알 수 없다. 정부가 이 문제를 얼마나 책임 있게 추진하는가, 그 의지에 따라 하염없이 길어질 수도, 반대로 짧아질 수도 있다. 이때 희소 의료기기 도입부터 지정 후 급여 등재 전까지 드는 비용은 다 개인이 부담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폴란드 회사에서 보내온 이정민님 목관 샘플과 식약처 희소 의료기기 도입 홍보 리플렛의 사진이다.

[사진 1] 폴란드 회사에서 보내온 이정민 님 목관 샘플과 식약처 희소 의료기기 도입 홍보 리플렛의 사진

 

의료기기 단종 및 공급 불안정은 정민 님과 같은 필수 의료기기 사용자들의 몸을 상품에 맞추라고, 이윤에 따라 달라지는 삶은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위협한다. 생존하는 문제를 병원과 기업의 이윤에 맡길 수는 없다. 정민 님은 시설을 나오기 위해, 독립을 계속해 나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싸웠다. 앞으로도 싸워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멈추지 않고 투쟁하는 힘을 더 크게 만들 것이다. 정부는 모든 사람이 ‘숨 쉬는 문제’ 앞에서 비용을 고민하지 않도록 필수 의료기기 지정 및 관리 체계, 의료기기 긴급지원 등, 실질적인 대안과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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