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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복지법 개악으로 IL운동의 역사를 지우지 말라!

진은선(장애여성공감)

 

230426_전장연_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복지시설(화) 반대 및 장애인 복지법 개정 방향에 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사진 1] 2023년 4월 26일 <장애인자립생활센터 장애인복지시설(화) 반대 및 장애인 복지법 개정 방향에 관한 입장 발표 기자회견> 진행 사진

IL센터는 시설사회에 저항하는 운동 조직이다 

 

장애인자립생활운동(이하 IL운동)은 장애인이 집과 시설에서 배제되는 것이 당연한 비장애중심의 차별적인 사회구조에 저항해 왔다. 20년이 넘는 운동의 역사 속에서 “우리를 배제한 상황에서 우리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구호는 여전히 중요한 가치다. 일상에서, 거리에서 계속되어 온 끈질긴 투쟁은 장애인을 시혜적인 대상으로 낙인찍는 국가의 동정에 저항하며  자립생활 정책 및 사회적 기반을 당사자의 권리로 만들어왔다. 그러나 IL운동을 각 지역의 거점을 두고 실천하는 센터들의 정체성이 기존의 복지관과 어떤 차별성이 있는지 끊임없이 의심받았다.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이하 IL센터)의 역할이 불분명하여 제대로 기능하지 않고 있으며 서비스전달체계로서 법제화로 안정적인 조건을 마련할 것을 강조했다. 해당 내용은 IL센터를 장애인복지시설의 한 종류인 ‘자립생활지원시설’로 편입시키는 것으로 지난 2023년 12월 8일, 장애인복지법 일부개정안이 통과되었다. 하지만 주장과 달리 IL센터는 주거, 활동지원, 노동, 이동 등 시민권을 요구하며 자립생활지원 법제도의 기반을 만들어왔고 2007년 장애인복지법 내 자립생활지원에 대한 국가의 책무(제53조), IL센터의 역할과 근거(제54조)가 명문화되었다. 

 

장애인의 삶의 권리를 보장하고 사회변화를 추진해 왔던 IL센터 운동의 성과들, 동료상담, 권익옹호, 탈시설 자립지원 등 사회복지의 패러다임을 변화시키며 우리가 지향해온 운동의 방향과 가치를 담은 활동의 역사적 의미와 정책적 성과를 외면하는 상황이 안타깝고 분노스럽다. 그렇다면 기존의 복지 체계에서는 장애인으로 살아온 삶의 경험을 ‘클라이언트’가 아닌 ‘동료성’을 기반으로 당사자가 존엄의 주체가 될 수 있는가? 자유와 평등을 위한 권익옹호 활동으로 차별적인 환경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정부는 “그렇다”라고 답변할 수 있는가? 아니 사실, 이런 질문의 의미를 고민해 본 적이 있을까? 시설을 나온 당사자의 삶은 쉽게 문제화된다. 탈시설의 능력이 되는지, 탈시설 이후 성적 문제행동을 발현하지 않는지, 관계를 맺고 지역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수많은 질문 속에서 삶을 평가하는 지표와 심사대에 선다. 그러나 정작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누구와 관계 맺고 싶은지 질문받아 본 적 없는 이들이 겪는 고립감은 주목하지 않고 ‘보호할’ 거주시설이 유일한 선택지가 되는 것이 현재의 장애인복지법이다. IL센터는 비장애중심의 사회에서 노동할 수 없는 몸을 가진 사람들을 배제하고 장애인거주시설 서비스 지원 중심의 정책을 강화시켜 온 기존 사회복지제도에 문제를 제기해 왔다.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시설정책이 말하는 ‘보호’가 안전이라고 느낀 적이 없다. IL센터는 제도의 공백과 문제를 발견하고, 정부와 지자체의 권한 및 책무를 명확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모니터링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관계성은 지역사회에서 권익옹호 활동을 펼치며 살아남을 때 더욱 강화된다.

 

IL운동의 역사를 지우는 차별을 중단하라

 

우리의 전문성은 장애에 대한 이해와 소통을 기반으로 상호적인 관계를 맺기 위한 노력을 통해 만들어지고, 배제된 이들과 함께 권리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이자, 인권은 다양한 차별과 억압, 권력에 대한 저항이자 정치적 행위다. 국가가 IL센터와 협력적인 관계에서 대안을 가지고 토론하지 않은 채 몰아붙인 법 개정은 IL센터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더욱 더 명백히 드러났다. 장애인복지법 개정으로 운동을 위축시키거나 장애인의 권리를 보장해온 IL센터의 운동성과 역사, 책임져 온 역할을 지워버리는 차별을 중단해야 한다. 반성폭력 운동과 연결해 보면 성폭력 상담소(이하 상담소)가 제도화되어 왔지만,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만으로는 성폭력이 발생하는 구조를 바꿀 수 없었다.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 성폭력운동 지원 현장에서 피해자와 함께 권리를 주장하고 목소리를 내는 투쟁은 너무나 중요한 과제였다. 따라서 상담소가 성평등한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구조적인 차별에 저항하는 운동을 하는 것은 피해자를 지원하는 상담소의 ‘전문성’이다. 이러한 전문성은 사회복지자격증을 따고 박사학위를 따는 것에 비롯되는 것이 아니다.  피해를 만드는 환경 변화 없이 피해만 이야기할 때 당사자는 대상화될 수밖에 없다. 함께살아가는 동료시민, 피해자를 지원하고 이것이 나의 문제-우리의 문제임을 인식하며 구조를 바꿔나가는 것이 바로 전문성이다.  장애여성반성폭력 운동단체들은 치료와 보호가 아닌 인권의 보장으로 변화를 만들어가야 젠더 기반 폭력이 근절되는 방향으로 향해갈 수 있다고 외친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서비스의 수혜자가 아닌 보편적 인권의 실현이다. 정권과 정책의 입맛에 맞게 센터 성향을 가르고, 제도에 순응해야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원하지 않는다. 자립생활 권리가 보장되는 권리화된 제도를 만드는 과정에서 IL센터의 역할은 정부가 말하는 전문성과 자율성에서 발휘될 수 없다. 권리를 외치고 만들었던 투쟁의 가치를 인정하라는 것이다. 자율성의 의미를 계속 왜곡하는 일은 보건복지부가 장애인에 대한 구조적 차별이 없다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집단으로 살아가는 시설의 구조가 코로나19 감염병에 얼마나 취약한지, 돌봄 정책이 얼마나 부재하였는지 낱낱이 드러났던 코로나19의 시기를 잊지 않고 기억해야 하지 않는가? 지자체에서 공문으로 장애인활동지원 이용자 감염을 주의하라는 이야기를 할 때, IL센터들은 24시간 긴급상황에 대기하면서 연계할 수 없는 당사자의 돌봄의 공백을 채웠다. 이러한 현실은 지금과 같은 지원체계 속에서는 또 다시 반복될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보건복지부가 역할을 하지 않는 것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 IL센터는 이미 다양한 몸과 장애,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현장에서 서로 돌보고 있다. 법, 제도, 사회가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의 삶과 인권을 지우는데 행정과 예산, 공권력을 낭비하지 말아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을 일궈오고, 지켜오고, 싸우고 있고, 앞으로도 싸울 사람들을 더 이상 무시하지 말아라. 장애인권을 정의로운 방향으로, 누구도 배제하지 않는 삶을 보장하기 위해 IL센터는 오늘도 문을 열고, 서로 돌보며 끈질기게 투쟁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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