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오르는 독립여행
장애여성공감독립생활센터[숨] 활동가 도토
지난 7월 1일, 발달장애여성 자기옹호활동 <독립공작소> 참여자들과 2박3일간 구례로 여행을 다녀왔다. <독립공작소>는 2030 경계선 지적장애여성들이 통제되거나 제한된 관계를 넘어서 서로 존중하고, 받을 수 있는 새로운 관계를 경험하고 실천하는 활동이다. 지적장애여성들의 일상은 보호, 안전을 우선하여 통금이라는 이름으로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기도 하고 친구와 여름 밤 한강 산책을 나가서 치맥을 하는 것은 보호자에게 허락 받기 어려운 일이라 시도를 주저하며 앞으로 해보고 싶은 일 중에 하나로 꼽는다. 그래서 집을 잠시 떠날 수 있는 캠프는 해방감에 무척 설레는 일정이다.
‘탈출이다!’
여행을 가기 전, ‘곰순이’님은 며칠 전부터 짐을 싸놓았다고 하고, ‘푸들’님은 잠을 잘 자기 위해 스탠드 챙겨 갈 거라는 말을 나눴다. 오고가는 말 속에서 떠남에 대한 기대감이 여실히 드러났다. 여행 이름은 만장일치로 ‘불타오르는 독립여행’ 으로 정했다. 이름에서부터 우리의 욕망과 활기가 느껴졌다.
우리가 타게 될 버스가 멀리 보였다. ‘푸들’님은 버스 사진을 찍고 나서 말했다. ‘탈출이다!’ 꽤 통쾌했다. 무엇으로부터 탈출을 의미했을까. ‘푸들’님은 집을 나오니까, 혼자 오니까 좋다고 했다. 가족 또는 함께 사는 사람을 떠난다는 것, 집을 떠난다는 것은 어떤 즐거움을 주었을까? 이 캠프에는 여러 사람이 함께 하지만, 그 안에서 혼자를 느낀다는 ‘푸들’님의 말을 여러번 곱씹어 본다.
내 취향, 내 연애
밤은 연애이야기로 불태웠다. 각자가 생각하는 연애를 떠올리며 잡지나 스티커 등을 붙이는 콜라주 활동을 했다. 빈 종이는 금세 채워졌고, 완성된 것을 숙소 곳곳에 붙였다. 어느새 숙소는 작은 전시관이 되었다. 이제 자신의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이 되었다. ‘쿠로미’님은 힙합이 좋고, 힙합이 사랑이라고 했다. ‘별’님이 붙인 스티커는 다 짝이 있었다. ‘만약 커플티 하기 싫은 거 하자고 하면 어떻게 해요?’ 라는 질문에 ‘별’님은 고민없이 ‘싫어요!’라고 답했다. ‘미니’님은 여성이 남성의 목을 감싸는 사진을 고르며 내가 리드하는 키스를 하고싶다 했다. 마지막으로 ‘푸들’님은 붉은 속옷을 입은 여성을 붙였는데, 나중에 혼자 살면 야한 속옷을 입고 싶다고 했다. 성적인 이야기만 나오면 큰소리로 ‘야해!’라고 했던 ‘푸들’님이었기에 이 활동에서만큼은 솔직한 ‘푸들’님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그런 솔직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도 좋았다.
모두가 생각하는 연애는 다양했다. 타인에게 내 취향, 욕망을 말하기 어려울 수 있는데, 이 공간 안에서 만큼은 솔직한 내 얘기를 했다. 사실 이 종이에 채워진 것 처럼 내 취향, 내 연애를 일상 안에서 주도적으로 실천하기 어렵다. 그러나 이 활동을 통해서 내 취향, 내 연애에 대해 알아보고, 고민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도전의 시간이었다.
여행이 남긴 것
마침 우리가 가는 날이 구례 오일장날이었다. 오일장에서 버스킹을 해보기로 했다. 버스킹에서 무엇을 할지 이야기를 나눴고, 우리 중 대부분이 방탄소년단 팬이란 걸 알았다. 우리는 방탄소년단 춤을 버스킹 무대에서 추기로 했다. 팀 이름을 고민하다가 우연히 나온 공감의 ‘G’를 딴 GTS 의견에, 다들 박수치며 웃었던 기억이 난다. 불타오르는 독립여행의 주요 포인트 중 하나는 GTS의 버스킹 공연이 되었다. 사실 연습이 순조롭기만 한 건 아니었다. 누군가 안무를 틀릴 때마다 불타오르는 갈등을 보이기도 했지만, 다같이 박수를 치며 박자 맞춰 ‘하나둘셋 총!’ (총모양 춤이었다) 외치며 서로의 속도를 맞춰갔다. 춤의 완성이 중요하기 보다 준비하는 과정에서 역동과 갈등을 잘 가져가는 게 중요함을 느꼈다.
구례는 우리와 오랜기간 함께 활동 해온 옥수수님이 사는 곳이다. 덕분에 들린 구례의 밥집, 빵집, 책방 등 가는 곳곳 진심어린 환대에 기분 좋게 다녀올 수 있었다. 가는 곳곳 인사를 나누며 공감 소식이 담긴 잡지, 홍보물품을 나눴다. 이는 장애여성공감을 알리는 것을 넘어서 구례라는 지역에 공감 회원으로서 나와 우리의 활동을 소개하며 새로운 관계를 시작했다. 우리는 이 여행의 의미를 잘 나누며 앞으로의 공작소 활동도 이어가고자 한다. GTS를 계기로 우리의 연애이야기를 담은 디스코 댄스곡을 구상하고 있다.
활동가로서 캠프에 참여하며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하는 것, 그 과정에서 존중하는 관계, 시간을 만들어가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장애여성공감은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장애여성들이 함께 한다. 이 여행도 2030 경계선지적장애여성이 주 참여자이었지만, 지체장애여성 활동가, 2030이 아닌 활동가, 비장애여성 활동가가 함께 했다. 우리 모습이 조금씩 달라도 여행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함께했다. 푸들님이 느낀 것처럼 ‘탈출’ 그리고 함께여도 혼자를 느끼는 감각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감각은 서로 존중 안에서 생겨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또한 연애이야기를 할 때, 나도 낯설지만 내 욕망에 대해서 드러내는 도전을 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이후에는 공감의 다른 회원들이 함께 혹은 혼자 구례 여행을 하는 즐거운 상상도 해본다. 우리가 다시 활동으로 만나기를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