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삶에서 평등의 깃발을!
이진희(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지금 어디예요?
장애여성공감의 발달장애여성 회원님들은 내가 평등버스에 몸을 실었던 8월 17일부터 8월 29일, 매일 나의 위치를 궁금해했다. “지금은 부산이고 기자회견 중이에요…” 습관적으로 답 문자를 쓰다가 차별금지법 제정 어느 만큼 왔을까, 이 순간 각자 서 있는 삶의 공간은 어디일까 문득 생각이 길어지곤 했다. “… 기자회견 중이에요. 00님은 지금 어디세요?” 평등버스를 주제로 안부를 나누고 서로에 대한 걱정과 반가움으로 문자대화도 길어진다. 오늘도 다른 일상을 보내고 있지만 어디로 가고 무엇을 해야 할지 서로의 이정표가 되어주는 동료들이다.
2020년 차별금지법제정촉구를 위한 평등버스 <차별금지법 제정하라>로 2주 동안 26개 도시 2,000km의 여정을 함께 사람들은 지금 다들 어디에 있을까. 지역별로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한 네트워크가 시작된 시기와 경험은 각기 다르지만, 지역 인권관련 조례 폐지, 퀴어문화축제 방해 대응 등을 함께해 오며 지역에서 반차별 운동을 다져왔다. 평등버스가 만난 지역과 사람들은 반차별 운동의 동료가 되어 서로에게 평등의 이정표가 되어주고 있을 것만 같다. 그래서 어쩌면 차별금지법은 이미 우리 가깝게 와 있으며, 우리는 평등버스에 실린 이야기들과 평등을 향해가고 있지 않을까.
누구도 남겨두지 않는 평등을 향한 여정, 평등버스
6월에 발표된 10명 중 8,9명이 차별금지법을 찬성한다는 설문 결과는 평등에 대한 대중의 지지가 넓어졌다는 소식인 동시에 많은 이들이 차별에 노출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2013년 19대 국회에서 혐오세력의 반대에 굴복해 차별금지법 법안을 자진철회 한 후 2016년 촛불광장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고 20대 국회가 열려도 누구도 평등을 약속하지 않았다. 국회와 정부의 시계가 멈춰있던 7년, 그러나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의 시계는 멈추지 않았다. 활동의 숨을 고르던 2014,15년엔 각자의 영역과 이슈에서 힘을 키워나갔고, 이 동력들은 2017년 3월 23일 재출범으로 모였다. 이후 정책과 담론 생산, 논평과 언론대응, 교육조직 활동들을 일상적으로 벌이며 2017년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집회, 2018년 차별금지법제정촉구 1회 평등행진 <우리가 간다>, 2019년 2회 평등행진<평등을 말하라>로 전국을 모아내는 집회를 이어왔다. 그러니 2020년 6월 차별금지법 발의는 시간이 지나 사회가 저절로 변한 것이 아니다. 부단히 평등의 물길을 내왔던 이들이 있었기에 이만큼 온 것이다. 이제 국회는 더 이상 차별금지법을 사회적 합의 핑계 대며 국회의 정치적 합의 거리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국회의 책무를 강조하면서도 평등을 국회에만 맡길 순 없었다. 평등의 물결을 거세게 만들 것은 차별받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소리임이 분명하기에 국회의 담장을 넘을 평등의 물결을 더 크게 만들기 위해 평등버스는 출발했다. 그리고 평등을 열망하는 사람들의 바람을 가득 싣고, 8월 29일 국회에 도착했다.
평등버스에 탄 사람들
2주간 10여 명이 버스로 이동하고, 공동 식사와 숙박을 한다는 것은 엄청난 실무적 준비와 긴장되는 일이었다. 매일 밤 진행됐던 평등버스 라이브 방송만큼 떨렸던 순간은 평등버스가 새로운 지역에 도착하기 직전이었다. 어떤 사람들이 함께할까, 혐오세력 대응은 어찌할지, 평등버스와의 만남으로 무엇을 남길지 그야말로 설레임과 긴장의 라이브였다. 이럴 땐 곁에 있는 동료를 믿고 함께 만들어갈 상황에 몸을 맡기는 것이 최선이다. 평등버스 기획단뿐만 아니라 지역에서 기자회견, 문화제, 간담회 등을 조직하던 활동가와 참여자, 이야기를 실어 보낸 많은 이들, SNS로 평등버스를 쫓는 사람들… 모두 평등버스 탑승자들이다. 평등버스에 탄 사람들은 2007년 누더기 차별금지법 때 삭제되었던 병력, 출신국가, 언어, 가족형태 또는 가족상황, 성적지향 등의 사유로 인해 차별받아온 나이며 당신이고 차별받는 우리 모두였다. 서로를 다 안다고 자신하지 않으며, 타인의 삶을 궁금해하는 사람들, 나에게 차금법이 필요하다고 외치면서 타인과 연결된 삶의 고리를 찾아 우리에게 필요한 이유를 말하는 사람들이다. 2주간의 준비와 2주간의 순회 동안 합을 맞췄던 몸의 경험이 차별금지법 제정운동에 고스란히 남았다. 지역 차제연은 물론 춘천, 원주, 여수, 목포 등 새로운 지역을 연결한 성과뿐만 아니라 2주를 평등만 집중하며 달린 경험은 이후 제정 국면과 제정 이후 운동을 만들어갈 단단한 근육이 되어주리라.
장애인에게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포항시청 앞에서 차별금지법 제정촉구 기자회견을 할 때였다. 기자회견 내내 성소수자 혐오발언을 쏟아내며 방해하던 혐오세력이 장애인 활동가가 발언하러 나오자 “우리는 장애인 차별하지 않아. 인정해. 존중해”라며 조용히 한다. 최근 혐오세력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논리로 이미 장애인 차별금지법과 같은 개별적 차별금지법이 존재한다고 주장한다. 장애인 안에는 장애여성, 장애노인, 장애청소년, 빈곤한 장애인, 장애레즈비언, 장애노동자, 이주장애여성 등 다양한 정체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장애차별 만으로 자신의 경험을 설명하려면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다. 장애여성은 취약한 장애여성, 때로는 장애인 혹은 여성으로 제도의 기준에 맞춰 쪼개지고 납작해졌다. 장애인이나 여성만으로 환원할 때 장애여성의 경험을 온전히 이야기할 수 없다고 비판하며 장애여성운동은 출발했다. 따라서 어떤 구조가 차별을 만들어냈으며, 장애여성이 어떤 차별을 경험했는지 온전히 설명하기 위해선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최근엔 만 65세가 되면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에서 노인장기요양보험으로 전환 시키는 정책을 비판하며 장애인으로 나이 든 노인의 삶을 보장하라는 투쟁도 진행했다. 하루아침에 정책에 의해 장애인이었다가 노인의 정체성만 덩그러니 분리하지 말란 싸움이었다. 이렇게 장애차별 외에도 성소수자로, 여성으로, 노인으로, 노동자로 살아가는 존재로서 경험하는 차별을 사회가 통합적으로 이해하지 않으면 장애인이라는 집합적 정체성 외에 개별적 고유성을 가지기 어렵다. 평등버스가 광주에서 만난 장애인 활동가가 “나에겐 다양한 모습이 있고, 내가 납작해지지 않으려면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라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동정과 시혜로 집단화된 낙인은 장애인 안에 다양한 존재를 인정하며 고유성을 가진 한 사람 한 사람의 얼굴과 삶을 만날 때에야 깨지기 시작할 것이다. 성별, 인종, 국적, 성적지향 및 성별정체성, 가족형태 및 가족 상황, 학력, 병력 등 어느 사유도 배제하지 않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제정될 때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과 삶을 통합적으로 살필 수 있게 된다.
또한, 모든 인간은 존재로서 존엄하기 때문에 누구도 존재를 인정하고, 규정할 자격을 갖지 않는다. 혐오세력이 “성소수자는 안되지만, 장애인은 존중한다”라는 말을 듣고 싶지 않은 이유다. (이 자리에 공감의 발달장애여성 인권투쟁단 ‘만세팀’이 있었다면 “에이 그거, 인권 아닌데??!!”라고 한 수 가르쳐 주었을 것이다) 혐오세력이 장애인 인권을 존중하여 “장애인을 존중한다”라고 말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포항, 창원, 목포, 광주 등 평등버스가 만난 여러 지역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은 “차별을 없애기 위해서, 장애인의 차별 문제가 심각해서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 “코로나가 제일 무섭다고 하는데, 우리 장애인들에게는 차별이 가장 무섭다”라고 말했다. 장애인 당사자의 말을 귀담아듣지도 않으면서, 장애인이기 때문에 존중하는 것은 동정에 다름 아니다. 장애인 운동은 장차법은 오랜 투쟁으로 2007년 제정하였으며, 이후에도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것을 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운동으로 나아가고 있으며 소수자 운동과 연대하고 있다. 한국 사회 차별금지와 평등의 원칙이 세워지지 않는 한 장애인 차별의 문제도 해결되지 않을 거라고, 지금 장애인에게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다는 운동의 목소리를 더욱 크게 내야 할 때다.
내 안의 소수성을 발견하게 하는 차별금지법
차별금지법이 소수자를 위한 법이기에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소수자만을 위한 법이라고 나쁠 것은 무언가.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통해 특정한 소수자를 구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길 일 테니 반대할 이유 없다. 또한, 소수자를 위한 법이란 테두리를 넘어서면 복잡한 사회 구조와 연결된 차별 속에서 살아가는 내 안의 소수자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니 그 역시 모두를 위한 법의 취지에 부합하는 것이다.
518민주광장에서 광주 활동가는 “민주광장이 민주화의 상징이지만 인권, 평등, 평화는 상징으로 만들 순 없다. 이것이 내 삶, 우리의 삶으로 들어올 때 평등이, 반차별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취약한, 무능한, 더러운, 해로운, 불쌍한, 미성숙한’ 존재라며 낙인찍히며 배제당하는 사회적 소수자들은 나와 다른 사람일까. 나와 무관하지만, 이들의 인권은 존중한다는 확신이 어쩌면, 규범과 질서에 포함되려 발버둥 쳤던 나의 현실을 바로 보지 못하게 하는 것은 아닐까. 차별금지법을 소수자를 위한 법이란 테두리에 한정할 때 내 안의 소수성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다. 평등버스가 만난 사람들은 소수성을 발견하는 것이 천차만별인 사회의 구성원들이 고유성을 존중받고 나답게 살아가는 길을 알고 있었다. 연대하겠다가 아니라 내가 차별받고 있어서 필요하고, 차별받고 있는 당신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차별에 맞서는 동료시민이 되고자 한다면
목포 문화제에서 전남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활동가가 현장 발언을 할 때였다. 무대에 경사로가 없어 그의 휠체어가 10cm의 단 차 앞에서 멈춰야 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경사로가 없네요. 이거 차별인데” 웃으며 한마디 하고 발언을 이어갔다. 그의 존재와 발언으로 모두가 경사로가 없음을 알아차릴 수 있었고, 마침 평등버스 기획단 활동가는 무대로만 향해 있던 조명 기계를 무대 아래 활동가를 향하도록 옮겼다. 조명 아래 그의 얼굴이 자세히 보이고 모두가 언어장애가 있는 그의 말에 집중했다. 때론 평등하고자 하는 우리들도 충분히 준비하여 만나지 못한다. 오랜 시간 제도적으로 체계화된 차별적인 구조와 문화에 익숙해져 차별받거나 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평등을 지향해도 어떻게 구현해야 하나 막막하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를 말하고 성찰하며 겪어나가길 주저하지 않는 문화가 형성된다면, 변화로 이어질 다음을 기약할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는 차별금지법을 반대하는 이들은 알기 어려운 진실일 게다. 차별을 금지하는 원칙이 소수자를 말할 수 있게 하고, 차별 경험 속에서 사회의 과제를 찾아야 모두의 권리가 활성화된다. 그럴 때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우리 모두는 변화될 세상을 만드는 주체이자, 평등한 세상의 일부가 될 것이다.
평등버스가 부산에서 만난 김진숙 지도위원은 과거 일터에서 성폭력에 노출되었던 지적장애여성 동료에게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는 모습을 탓했던 경험을 들려줬다. 내가 장애여성운동 활동가라서 유독 이 이야기가 특별하게 들렸던 것만은 아니다. 차별금지법을 통해 과거 내가 맺었던 관계들과 새롭게 만날 가능성이 더 열리게 될 거란 기대가 커졌기 때문이다. 타인과 동료시민으로서 관계를 맺기 어려웠단 깨달음은 ‘나는 인권을 지지해요. 차별을 반대해요.’ 라는 선언만으론 다다르기 어려운 감각이다. 차별했던 나를 기억해 냄으로써 차별적인 구조를 인식하게 하는 것, 돌아보고 성찰하고 다시 마주하는 비효율을 통해서 얻게 되는 감각이다. 어쩌면 차별을 모르거나, 침묵하거나 외면하고, 공모했던 나를 마주하게 될 이 과정이 평등역량을 높이며 동료시민으로 서로를 만날 가능성을 열어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코로나19,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모여 말해야 하는 이유
포항 대잠 네거리, 대전 으능정이 거리, 광주 518민주광장, 전주 풍남문광장, 부산 서면 하트조형물, 목포 신항 세월호 선체 앞 등 지역의 역사와 투쟁의 순간들을 함께 했을 장소에 평등버스가 정차할 때마다 벅찬 감정이 들었다. 다른 한 편으론 촉박한 일정과 코로나19로 부담을 안긴 것은 아닐지 반신반의하기도 했다. 목적지가 임박하면 부랴부랴 평등버스 홍보 물품을 장착하고, 뜨거운 환대와 지역의 인권활동가와 매력 넘치시는 사회자들을 따라 몰아치는 일정을 참여자들과 치른다. 채식, 평화, 노동, 장애, 자치, 생태, 정의, 시민, 사회, 인권, 청년, 청소년, 문화, 안전, 진보, 페미니즘, 퀴어, 세월호, 예술, 노동조합… 함께한 단체들의 이름에 새겨진 정체성과 인권의 가치들을 보며 나의 부족함으로 차별금지법과 좀 더 구체적으로 연결하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짧은 시간 동안 지역 활동가들과 반가움, 아쉬움, 발의에 대한 기대와 불안 등 무수한 감정을 나눈 것 같다. 하반기 대응을 질문엔 더 크게 계속 만나야 한다는 다짐으로 눈을 맞추며 괜히 악수에 더 힘을 싣기도 했다.
긴 여정 동안 국회 대응 고민이 불쑥 밀려올 때면 더 열심히 평등버스가 만나는 매일의 현장과 사람들의 목소리를 따라갔다. 혐오세력이 성소수자 혐오발언으로 행사를 방해할 땐 “우리에게는 (HIV/AIDS)감염인 동료가 있다. 우리에게는 트랜스젠더 동료가 있다”라고 더 크게 외쳤다. 감염인? 트랜스젠더? 조금은 낯선 구호가 익숙하지 않아 보이는 참여자들도 있었지만, 그날의 열심히 외친 구호가 다음 만남을 부를 것이라 기대한다. 울산 지역 간담회 참여자는 “노동자 안에 모든 다양성이 있다. 노조에서 반차별에 대한 교육과 인식을 다질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하다 강조한다. 이런 시도가 많아질수록 낯선 존재를 호명하며 만나가는 과정이 쌓일 것이다. 전주 광장에서 한 시민은 “그래 나는 아침에는 여성, 저녁에는 남성이 된다” 당당하게 되받아쳤다. 다른 시민은 “나는 남자가 되고 싶은 것도 여자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니라고! 내가 나로 존재해도 남들과 다른 취급을 받지 않고 싶을 뿐이라고! 그래서 내가 나라고 말하는 게 두렵지 않고 싶을 뿐이라고!”라며 평등버스에 사연을 실어 보냈다. 혐오세력의 엄청난 방해에 인천의 활동가는 “요양원이 가까이 있는데 소음이 심하다. 우리는 좀 차분히 하자”며 지역 주민답게 주변을 살피는 여유로운 힘을 보여 주었다. 평등을 말하는 우리의 힘과 자신감을 느꼈던 순간들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평등이다!” 외치지 않을 수 없는 순간들이다.
평등버스가 2주 차를 맞이할 때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2단계로 격상되면서 안전을 위해 지역의 규모와 행사를 조정하며 여정을 이어갔다. 지역의 활동가는 “어려움과 공포가 들이닥쳤을 때 쉽게 숨거나 없애 버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코로나 상황에서 안전하게 생활하고 행동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라며 차별금지법과 맞닿는 문제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집회시위가 어려운 지금, 감염병 상황에서 심각하게 드러난 차별 상황을 모여서 말할 안전한 공간을 만드는 것은 타협할 수 없는 권리다.
평등버스가 만난 자부심, 평등의 깃발이 되어
평등버스 기획단은 노네임(no name)이란 율동패를 급조해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목포 문화제 사회자가 ‘무명의 활동가들이 춤을 춘다’라는 소개를 계기로 노네임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름이 없는 사람들의 이름으로 권리를 말한다. 이 자리에 누구의 이름, 어떤 존재도 남김없이 새길 수 있어야 한다. 평등은 사람과 자격을 가리지 않는다. 이 빈자리에 누구든 오시라. 여러분 모두를 초대한다.” 점점 길어지는 소개말은 우리가 광장에 모인 이유를 분명히 해주었다. “광장에 소수자가 존재할 수 있도록 관계들을 어떻게 만들어갈 건지 차별금지법 운동이 질문하고 있다”고 518 광주 민주광장의 문화제에 울려 퍼진 발언처럼 차별금지법은 나의 이름으로 차별을 말하고, 헌법의 가치와 보편적 권리를 모두의 이름으로 다시 쓰는 시작이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면 나는 너무나 안도감을 느낄 것 같다. 처벌 조항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중략) 그 법 하나 막으려고 이러는걸 보니, 나는 그 연약한 이름뿐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그 연약하고 작은 이름 하나가 큰 걸음이 되리라 믿는다”, “차별금지법이 제정되고 나면 한 발짝 더 나아가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가게 될 것이다.” 평등버스에 실어 보낸 사연과 충남 활동가의 발언이다. 차별금지법이 모든 것을 해결하진 않겠지만, 한국 사회 중요한 걸음이 될 것임이 평등버스가 만난 사람들을 통해 한층 더 분명해졌다.
평등버스가 만난 사람들은 차별하지 말란 쉬운 말 대신, 더 평등하기 위한 수고를 선택했다. 앞으로 더 만나며 말하고 때론 갈등으로 서로를 밀어 올리지 않을까. 비장애인이라서 성소수자라서 빈곤해서 이주민이라 청소년이라 비정규직이라 나를 차별했던 꼬리표를 떼어서 자부심의 깃발로 만들어 흔드는 사람들. 이제 이 꼬리표는 자부심과 평등의 상징이 되어 서로를 알아보는 깃발이 될 것이다. 그리고 흘러넘치는 평등의 물결로 머지않아 훌쩍 국회 담장을 넘을 것이라 믿는다. 정기국회 개원 1달이 지났고,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국회에 도착한 평등에 여전히 아무런 답도 내놓지 않고 있다. 힘든 시간이 아직 더 기다리고 있을 테지만, 힘들지만은 않을 이 싸움으로 한국 사회 평등의 토양은 새롭게 다져질 것이다. 그 길에 평등버스를 가득 채운 사람들의 바람이 함께하고 있다. 자신의 삶에서 평등의 깃발을 흔들며 모두의 평등을 향해가는 우리의 평등버스는 오늘도 달린다.
(이 글은 천주교인권위원회 격월간소식지 ‘교회와 인권’과 오마이뉴스에 실린 글을 재구성, 보완하였음을 밝힙니다)
(사진 출처: 차별금지법제정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