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보건법」속에 존재하는 장애여성
정의로(장애여성공감)
차별과 인권침해의 역사로 이어진 「모자보건법」
지난 7월, 임신 36주 차의 임신중지 수술 브이로그가 논란이 되자 보건복지부가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이후 경찰은 영상을 올린 여성과 수술을 진행한 병원장을 입건하고 살인죄 증거 확보를 위한 수사를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낙태죄 폐지 5년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임신중지는 불법처럼 취급되고, 살인죄를 운운하며 강도 높게 제한된다. 안전한 임신중지 요구에서 ‘생명권’으로 논의를 회귀하려는 현재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내용은낙태죄가 처벌받던 시절 위법성 조각사유로 존재했던 「모자보건법」 제14조이다.
동법 제1항은 예외적으로 다섯 가지 사유로 임신한 여성과 배우자는 동의를 받아 인공임신중절수술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국가가 낙태를 범죄행위로 규정해두면서도 모자보건법이 정한 일정한 예외에 해당하면 예외로 둔다는 것 자체가 언제든지 모든 낙태에 대한 단속을 강화하여 수사와 처벌을 할 수 있다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동안 자기결정권의 존중이 아닌 국가가 이러한 결정을 통해 인구와 정상의 몸을 통제하고 있었다는 것은 과거에서부터 그 내용을 찾아볼 수 있다.
1972년, 가족계획연구원은 인구 증가를 억제하기 위한 제3차 5개년계획을 발표하며 인구 증가율, 출생률 목표, 다양한 피임 방법 등을 설정했다. 이후 1973년에는 모자보건법이 제정되어 모성과 아동의 건강을 보호하려 했지만, 1981년 경제기획원은 우리나라의 높은 인구 증가율과 인구 밀도를 이유로 ‘인구증가억제대책’을 발표했다. 이는 국가가 인구를 통제하고 생명을 선별하는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모자보건법」제 14조는 장애나 질병을 이유로 생명을 선별할 수 있는 차별과 장애여성이 동의 없이 강제적으로 불임 수술이나 낙태를 당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사진 1] 2023년 11월21일, 국회 앞에서 모자보건법 개정을 위한 기자회견을 열었다
장애여성의 의사결정을 지원할 수 있는 법적근거가 마련되어야 한다
그동안 국회에서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나올 때마다 우생학적 관점에서 장애인의 출산에 대해 혐오적 인식을 조장할 수 있는 제14조를 폐지하는 것을 논하였으나 입법 종료로 폐기되기 일쑤였다. 이제 「모자보건법」의 개정은 단지 14조의 폐지만이 목적이 아니라 성과 재생산 건강 전반에 걸친 안전하고 포괄적인 보건의료 체계 구축과 권리 보장의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에는 장애인 학대 예방 및 정신・여성장애인 지원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출산비용 지원, 장애여성의 임신중절 권리성을 보장하기 위한 모자보건법 개정, 피해자 지원체계 강화, 장애친화 산부인과 및 장애인 주치의를 통한 건강권 보장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모자보건법 개정은 여전히 이루어지지 않았고, 장애친화 산부인과의 예산은 작년에 비해 16.7% 감소한 7억5000만원에서 내년에는 6.7% 더 줄어든 7억원으로 배정되어 사업 시작 이후 절반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또한 통합상담소 전환 및 인원 감축 등을 시행하고 성인권교육 관련 예산을 삭감하며 성평등 정책을 실현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출산, 양육 지원제도가 일부 있으나, 현장에 필요한 예산이 삭감되고, 차별적 법안의 개정은 지연되고 있다. 장애여성이 내 몸에 대해서 알고 정보를 찾아볼 수 있는 다양한 교육의 기회와 정보접근권을 박탈당한다.
장애친화산부인과가 있지만, 전문 특수병원 설립으로 해소되지 않는 문제도 있다.현장에서 만나는 장애여성 중 산부인과는 임신한 사람만 가는 곳이라는 생각에 검진을 받아본 적이 없는 경우, 주변에 의해 임신을 걱정하거나 성적관계가 성폭력으로 규정당하기도 하여 당사자의 동의 없이 피임시술을 하는 경우, 임신을 했으나 그에 대한 정보 등이 없어서 살이 찐 걸로 오해하여 임신중지를 결정하는 시기가 늦어진 경우도 있었다. 이렇게 임신을 인지하기 어려운 상황과 주변의 차별, 낙인 등 주변에 자원이 부재한 경우 본인의 안전과 건강이 담보되지 못한 채 시술을 받게 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모자보건법」제14조는 임신중절의 허용한계와 더불어 본인이나 배우자가 심신장애로 의사표시를 할 수 없을 때에는 그 친권자나 후견인의 동의로, 친권자나 후견인이 없을 때에는 부양의무자의 동의로 각각 그 동의를 갈음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장애가 있어 결정권한이 없음을 말하지만, 문제는 장애가 아닌 국가가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억압하고, 당사자의 의사를 조력할 책임은 방기한 것이 크다. 국가는 가족 등 보호자라는 이름의 주변인에게 당사자의 의사가 대리하는 것으로 결정의 전적 책임을 당사자와 주변인에게 전가한다. 의사결정이 침해받기 쉬운 구조를 묵인한 건 단지 「모자보건법」상에만 등장하는 이야기일까? 장애를 이유로 의사를 표현하거나 뭔가를 선택하는 것이 쉽게 대리되는 것은 이 법에만 국한되지 않는 일상이다.
그중에서 장애여성들이 임신, 임신중지, 출산 등의 과정에서 장애, 한 부모 양육, 정보접근권의 한계 등 사회경제적인 이유로 판단이 어려운 존재라고 여겨질 때 성에 대한 관심은 주변의 우려를 낳고 성에 대한 경험은 주변에서 성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상담소에서 만난 장애여성들은 산부인과에 가는 것을 어려워했고 건강검진이나 월경, 피임, 임신 등에 대해 부정확한 정보를 알고 있거나 물어보는 것을 조심스러워하기도 했다. 그동안 받았던 성교육을 벗어나 궁금한 내용을 모아 ‘산부인과’이름이 붙지 않은 ‘색다른의원’에 방문하여 질문도 해보고 실제로 나의 건강을 확인하고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아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 하지 마!’ 라는 금지 중심의 교육이 아니라 내 권리를 인식하고 나의 몸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포괄적 성교육이 이루어지는 일상의 권리보장이 왜 중요한지 알 수 있는 시간이었다.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0년 장애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임신중절 경험이 있다고 답한 장애여성의 100%가 자기 의사가 아닌 주위의 권유로 임신중절을 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렇게 재생산권 실현이 어려운 경우는 일상에서도 역시 이러한 판단과 통제로 인하여 일상의 고립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일상의 고립은 반성폭력 현장에서 너무나 쉽게 일상적으로 목격하기도 한다. 보호자 의사로 시행되는 산부인과 진료는 다만 의학적인 시술에 그치지 않는다. 피해를 다투는 법정에서 당사자의 진술은 충분히 경청되지 않는다. 공간은 다르지만 장애여성이 어떠한 사회적 위치에 놓여있는가, 권리가 아닌 보호로 어떻게 일상의 결정을 흐트리는가를 짐작할 수 있다.
「모자보건법」의 개정으로 장애여성의 의사결정을 반영하기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된다면 단지 성과 재생산권에만 국한되는 내용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장애여성의 가족, 돌봄관계, 교육, 재생산권 등에서 관행적으로 이루어진 차별을 전 생애적으로 폭넓게 연결하여 해석할 수 있는 한 부분의 시작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는 동의와 선택이 어떻게 자신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실현할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이것이 곧 수혜를 받는 누군가, 어떤 집단에 속하는 것이 아닌 실질적으로 성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정책의 당사자가 될 수 있도록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