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0 장애인차별철폐의 날에 대한 첫 번째 기억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한정림
저는 올해 봄부터 정식으로 장애여성공감 부설 장애여성성폭력상담소에서 일하게 된 신임 활동가입니다. 20년 가까이 줄곧 병원 안에서만 근무했던 저는 공감 안팎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그저 신기하고 흥미로웠습니다. 특히나, 외모에 대한 엄격한 규제를 하는 집단에 있다가 온 저로서는 모든 것이 자유로운 공감의 분위기도 좋았고, 활동가라는 명칭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러던 중 326 장애인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는데, 올해는 최옥란 열사 10주기이기도 해서 저에게 참으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그 날 집회의 분위기나 참가한 사람들 그리고 연대조직들의 규모나 수적인 부분들이 저를 많이 놀라게 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놀라운 것들이 420 기간의 시작점에 불과하다는 것을 420 당일 그 곳에서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3월 26일 저녁부터 종각에서 철야농성이 진행되고 있었고, 4월 14일에는 보신각에서 문화제도 있었지만 저는 참석하지 못했었기에 4월 20일이 더욱 더 가슴 뛰고 역동적인 집회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모든 행사가 끝나고 이제는 보건복지부 앞으로의 행진만을 남겨두었을 때 박경석 대표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장애인이 인간으로서 권리를 되찾아 올 때까지 투쟁은 계속 된다고 말입니다. 그렇다면 장애인이 말하는 인간으로서의 권리란 무엇일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코, 다른 구성원들이 우리에게 연민이나 동정, 이에 상응하는 특별대우를 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저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또는 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차별 없이 인정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행진 준비를 하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 왔습니다. 420 공동투쟁단의 중증 장애인들이 휠체어에서 내려와 도로를 기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2년 4월 20일 이동권 투쟁을 할 때 있었던 일이 오늘 다시 제 가까이서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 저의 심장을 또 한 번 두근거리게 하였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말하는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인정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 하였습니다. 자본의 속도에 맞서는 장애인의 느림, 느리다는 것, 그것을 인정하는 것 말입니다.
그 날 저는 신임활동가로서 앞으로 제가 이 영토 안에서 어떠한 일을 누구와 함께 진행해 나갈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제게 있어 그 날의 투쟁은 단순히 투쟁만이 아니라, 더불어 축제였습니다. 저녁 8시가 넘어서 정리 집회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에서, 이제는 기성세대로 분류되는 제가 아직 배울 수 있는 투쟁현장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