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여성이 원하고 계획하는 독립을 꿈꾼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장애여성, 독립 이후의 현실과 갈등
장애여성공감의 최근 주요 화두 중 하나는 ‘독립과 활동보조’다. 막상 독립하니 할 일이 별로 없어 지루한 하루를 보내거나, 반복되는 IL프로그램에 때론 지치기도 한다. 지역사회에 나가면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라 기대했는데, 실제 가장 많이 만나고 의지하는 사람이 활동보조인이라는 사례도 많다. 지역사회에서의 일상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경험과 자유로움을 안겨주기도 하지만, 활동보조나 주거지원 제도를 활용할 때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렵거나 지원기관과 갈등이 생기기도 한다. 가족의 간섭, 생활시설의 공동생활과 인권 침해 등을 벗어나 독립생활을 시작한 장애여성들은 매일 새로운 일상의 과제와 반복되는 갈등에 직면해야 한다. <장애여성독립생활 가이드북:나의 독립 찾기>는 이렇게 현장에서 매일 만나는 장애여성 경험과 고민을 반영하여 제작하게 되었다.
가이드북은 무엇을 ‘가이드’ 해야 할까?
최근엔 장애인의 자립생활 매뉴얼과 각종 제도를 안내한 책들이 꽤 제작되고 있다. 하지만 일일이 많은 정보를 열거하고, 중요도에 따라 단계별 매뉴얼을 제시하는 것의 한계를 느꼈다. 정보의 범위는 너무나 방대하고 시간이 지나면 정보의 유효성은 떨어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정보전달의 기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을 덮었을 때 자기 나름의 독립에 대한 가치관을 가질 수 있게 돕는 역할을 하고 싶었다. 많은 정보를 취하기보다는, 다만 하나의 정보라도 내가 선택하고 실행하고, 평가해보는 힘을 가지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모든 정보를 다 싣는 것이 아니라 정보에 접근하고 활용하고 선택하는 과정과 중요성을 주되게 담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여성 독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과제를 ‘관계와 심리적인 독립’으로 바라봤다. 결국 관계에서 평등해지는 것, 물리적인 독립에 안주하는 것이 아닌 독립적인 삶을 꾸릴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을 갖는 것이 독립의 중요한 과제라고 보았다.
사실은 모두에게 어려운 문제, ‘주체적인 관계와 심리적인 독립’
독립하는 과정에서 장애여성은 새로운 관계를 만나거나 기존의 관계에 대해 재설정해야 하는 필요와 욕구를 만나게 된다. 나를 불안하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으로 바라보던 기존의 관계들과는 맞서 독립을 쟁취해야 하고, 사회적 편견으로 나를 바라보며 선택과 결정을 제한하는 관계들과는 싸워서 자기결정권을 지켜야 한다. 하지만 한정된 자원 안에서 장애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관계와 조건은 많지 않다. 또한 물리적인 조건이 만들어진다고 해도 사회 경험의 부족, 처음부터 평등하지 않은 관계 설정 등으로 장애여성이 관계에서 당당해지거나 심리적으로 독립하는 것은 어려운 문제다.
마찬가지로 모든 인간에게 관계와 심리적인 독립은 쉽지 않은 문제이며, 어느 한 순간 달성할 수 있는 미션도 아니다. 변화하는 세상과 관계 속에서, 나의 가치관과 노력을 통해 구축되는 일련의 과정인 것이다. 때론 이 과정에서 세상의 변화를 촉구하기도 하고 나의 변화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외롭고 힘들지만 주체적인 삶과 관계를 만들어 나가기 위한 선택을 지지하며, 이 책안에 그렇게 지지하는 우리들의 마음과 노하우, 경험을 담고자 했다.
우여곡절 가이드북 제작기
이 책은 ‘이렇게 하면 훌륭한 독립이다’라는 추측과 단정을 담지 않았다. 오랜 시간 장애여성공감에서 나눴던 독립에 대한 고민과 좌절들, 현장에서 매일 만나는 장애여성의 독립에 대한 현실과 고민들을 반영하고자 했다. 독립생활 연차가 오래된 자문위원들은 독립에 대한 로망이 아닌 구체적인 고민의 지점을 일러주었다. 또한 장애여성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사전 인터뷰는 원고를 작성할 때 중요한 내용적 근거가 되었으며, 향후 장애여성 독립생활운동의 과제를 던져 주기도 했다.
고백하자면 가이드북 기획팀 역시 제작과정에서 자신의 독립과 마주하는 경험을 하였다. 때론 ‘이것이 바로 독립생활’이라고 주장하다가도 ‘그러는 너는?, 우리는?’, ‘우리부터 잘하자’와 같은 뜬금없는 결론에 이르기도 했다. 당연하게도 독립은 우리 모두에게 과제였던 것이다. 또 끊임없는 회의와 공동 글쓰기는 우리의 인성을 단련해 주었다. 내용구성과 원고 작성이 거의 마무리되었다고 생각했던 10월 말 회의에서는, 아무래도 무언가 이상하다 싶어서 목차와 개요를 다시 점검하고 엄청난 수정과 보완 작업이 필요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11월까지 인쇄가 완료되어야 하는데 우리 지금 뭐하는 걸까요?” 쓰고 수정하고, 의견 받아 또 수정하고… 일이 많아진 공감에서 오랜만에 맛보는 공동작업의 희열이었다. “아~ 영상버전으로 내용에 대한 접근성을 높여야 하지 않을까?” 급하게 제작된 DVD까지. 고단했던 과정은 결과물에 대한 만족감을 더 높인다고 했던가. 덕분에 기획팀 모두가 책이 나오는 날, 입이 귀에 걸렸다.
정답 없는 독립찾기와 대안 없는 막막함, 그래도 장애여성의 삶은 계속 된다.
정답 없는 독립찾기의 어려움과 함께 우리를 괴롭혔던 현실적인 조건은 바로, 장애여성들에게 너무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완성되어 있는 정답은 애초부터 우리와 맞지 않는 시작이었을 거다. 대신에 나의 경험과 욕구로 장애여성의 독립을 재구성하는 재미가 있을 것 같다. 이 책이 많은 IL현장에서 활용되고, 수만 종류의 천차만별 독립에 대한 이야기가 더 많이 세상에 나와서, 장애여성 독립생활 운동에 새로운 흐름을 만들 이야기들이 쏟아지길 기대해 본다.
사회 환경과 문화, 제도는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다. 때론 우리가 만든 제도에 내 자신이 갇히기도 한다. 하지만 제도 안에 갇히는 것이 아니라, 제도의 틈에서 다시 장애여성 독립에 대한 새로운 변화를 꿈꿔볼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독립적인 삶을 욕구하고 도전하는 우리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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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de.or.kr/publis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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