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블뉴스기사)지적장애여성 성폭력사건 무죄선고 논란

지적장애여성 성폭력사건 무죄선고 논란
대구지방법원, 원심 뒤집고 2심서 무죄선고
고질적인 ‘진술 일관성’ 문제 또 다시 등장
에이블뉴스, 기사작성일 : 2009-11-06 11:08:10
조두순사건과 은지사건으로 장애인 성폭력 사건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져 있는 가운데, 대구지방법원이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 혐의로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피고인에게 2심에서 "지적장애인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1심의 판결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그동안 지적장애인 성폭력 사건에서 고질적인 문제였던 지적장애인의 법정 진술에 대한 일관성 문제가 또 다시 터진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 자세히 살펴본다.

1심 판결, 준강간 혐의로 징역 8개월 선고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지난해 7월 1일 지적장애인 오씨(27·지적장애 2급)의 집에서 A씨에 대한 준강간 등의 혐의로 기소당한 피고인 신씨(29)에게 지난 6월 18일자로 징역 8월을 선고했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신씨는 한국도시연구소의 설문조사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던 중 오씨의 집을 방문했고, 설문조사를 하던 중 오씨가 지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작은 방에서 침대에 앉아 있는 피해자의 가슴 부위에 손을 넣어 만지고 안방 및 거실 소파에서 오씨를 안아 추행했다.

대구지방법원 서부지원은 오씨와 오씨의 모친 이씨(52)의 법정진술, 사건직후 오씨가 어머니와 통화한 내역서 등을 증거삼아 신씨가 "피해자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로 사건범행을 부인하면서 피해자와 가족에게 정신적 고통을 가하고 있다"며 실형 판결을 내렸다. 

2심 “진술에 일관성 없다” 1심결과 뒤집어 

하지만 신씨는 이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항소했고, 대구지방법원은 2심에서 1심 판결을 뒤집고 "신씨는 일관되게 범행을 극구 부인하고 있으나, 피해자는 수사기관과 법정에서 당시 상황에 대해 말한 내용이 서로 달라 진술의 전후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난 10월 7일 신씨의 무죄를 선고했다. 

오씨측은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했으며, 오씨의 모친 이씨는 지난 10월 28일 대법원에 탄원서를 제출해 "피해자가 말하는 것은 장애인이라서 일관성이 없다고 하고 비장애인 피고인이 말하는 것은 일관성이 있다하여 무죄라 하니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이씨는 "피해자는 재판장에 오래 있으니 지루하기도하고, 재판이 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검사, 판사, 변호사에게 번갈아가면서 질문을 받다보니 헷갈리는 답변을 했을 것"이라고 억울한 마음을 토로했다. 

현행 성폭력 특별법은 재판부가 14세 이하 아동 및 장애인여성 등에 대한 신문을 진행할 때 검사나 법정 대리인이 신뢰관계에 있는 자의 동석을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이씨는 "그런 제도가 있는 것을 몰랐고, 검사나 다른 사람들도 말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번 탄원서에 "장애인의 조금 부족한 몇 마디 답변으로 진실이 왜곡되고 장애인이란 이유로 일관성이 없다고 하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 아닌가"라며 사건당일 행적이 담긴 아파트 엘리베이터 및 현관 CCTV 자료를 함께 제출했다.

“장애 있는 것 알았으면 곧바로 나왔어야”

피고인 신모씨가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 당시 시각은 7월 1일 오후 3시 7분경.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피고인 신모씨가 아파트 1층에서 엘리베이터를 타는 장면. 당시 시각은 7월 1일 오후 3시 7분경. ⓒ에이블뉴스
 
피고인 신모씨가 아파트 맨 위층이 13층에서 내리는 장면. 당시 시각은 7월 1일 오후 3시 10분경.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피고인 신모씨가 아파트 맨 위층이 13층에서 내리는 장면. 당시 시각은 7월 1일 오후 3시 10분경. ⓒ에이블뉴스
 
피고인 신모씨가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 장면. 당시 시각은 13층에서 내린지 약 72분 후인 4시 22분경. ⓒ에이블뉴스
에이블포토로 보기▲피고인 신모씨가 아파트 현관문을 나서는 장면. 당시 시각은 13층에서 내린지 약 72분 후인 4시 22분경. ⓒ에이블뉴스
 

CCTV에 기록된 바에 따르면, 신씨는 사건당일 오후 3시 7분 설문조사를 진행한 대구시 모 아파트 3, 4호 라인 1층에서 엘리베이터에 탑승했다. 신씨는 3시 10분에 맨 위층인 13층에서 내렸고, 약 72분 후인 4시 22분경 아파트 현관 밖으로 나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그러나 신씨가 이날 설문 응답을 받은 집은 피해자 오씨의 집 903호와 304호 두 집뿐이었다. 이씨는 "304호 주인에게 확인한 결과 304호에서 소요된 설문시간은 10분이 채 되지 않았다. 그러면 신씨가 13층부터 1층까지 계단으로 내려가며 각 집의 초인종을 누른 시간을 20분으로 잡아도 903호에서 머무른 시간은 약 47분"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이씨는 "가해자 신씨는 S대에서 사회복지과를 전공한 자로, 장애인의 특징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따라서 피해자와 대화를 해보고 설문조사가 어려울 것이라고 판단되면 바로 뒤돌아 나와야 하는데도 47분이나 머무르며 온갖 성추행을 했다고 생각하니 더욱 분하다"고 말했다. 

법원, 이중적인 잣대로 진술 일관성 판단

지적장애인의 법정 진술에 대한 일관성 문제는 그 동안 여러 차례 논란의 대상이 되어왔다.

이와 관련 김민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사무국장은 지적장애여성에 대한 성폭력사건을 다루는 재판방식에 대해 "기본적으로 피해자에 대한 불신이나 의심이 많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진술이 너무 일관되면 순수하지 않다, 의도가 있다고 판단하고, 일관되지 않으면 신빙성이 부족하다고 이중적인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 사실"이라는 설명이다.

"진실의 기준을 피해자에서 가해자 쪽으로 옮기기 시작하면 일관성에 대한 기준을 점점 더 엄격하게 따지게 된다. 그런데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사생활 침해라든가 정신적 피해 등으로 매우 힘든 고소과정을 시작할 이유가 없다. 또한 피해자는 정신적 충격으로 경황이 없는 상황에서 가해자가 당시에 무슨 말을 했고 무슨 옷을 입었는지 등을 기억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런 경우 피해자의 현재 상황과 성폭력 사건의 특성 등 굉장히 여러가지 변수를 따져봐야 한다."

전문인 소견 물어 진술 신빙성 점검해야

실제로 최근에는 재판부가 지적장애인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 전문인의 소견을 묻는 등의 변화도 생겨나고 있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는 지난 9월 13일 지적장애인여성을 성추행한 혐의로 기소된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을 뒤집고 2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해자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기 위해 범죄심리학과 교수를 증인 신문에 참여토록 했으며, "피해자의 진술이 경찰 수사 과정부터 항소심까지 매우 구체적이고 일관성 있다. 피해자가 당시 상황을 기억하면서 어느 정도 혼동하거나 착오를 일으켰다는 이유만으로 진술의 신빙성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장애여성공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