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재발 방지법’이 가진 문제와 한계를 넘어 나아가야 한다. – 보호주의와 엄벌주의에 대항하는 인권운동의 역할을 다짐한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재발 방지법’이 가진 문제와 한계를 넘어 나아가야 한다. 

 

  • 보호주의와 엄벌주의에 대항하는 인권운동의 역할을 다짐한다. 

 

4월 23일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무관용 원칙 확립, 아동청소년에 대한 보호 강화, 처벌 및 보호의 사각지대 해소, 중대범죄라는 사회적 인식 확산이라는 추진 전략을 바탕으로 디지털 성범죄 근절대책을 발표하였다. 4월 29일 국회는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재발 방지법’이라 불리는 성폭력 처벌법 개정안 및 형법 개정안 등을 통과시켰다. 전세계적으로 코로나가 휩쓰는 불안함 속에서도 성폭력을 용인하는 사법부에 대해 강력한 대책을 촉구하며 대중들이 끊임없이 분노하고 항의한 결과일 것이다. 더불어 디지털성폭력, 온라인 성착취 문제를 사회적으로 알리고 피해자의 목소리를 지지해온  사람들의 노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이번에 통과된 법률안은 크게 형법과 성폭력범죄의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약칭 성폭력처벌법), 기타 법률로 크게 세 덩어리로 나누어지는데 형법개정안에서는 미성년자 의제강간 연령기준을 13세에서 16세로 상향하는 것 (단, 피해 미성년자가 13세이상 16세 미만일 경우 19세 이상의 자에 대해서만 처벌하도록 함)과 강간, 유사강간 등의 죄를 범할 목적으로 예비·음모한 사람에 대한 처벌안을 담고 있다. 성폭력처벌법 개정안은 성적 촬영물을 소지·구입·저장·시청한 자를 3년 이하의 징역이나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고 성적 수치심을 일으킬 수 있는 촬영물을 이용하여 협박하거나 강요한 자에게는 각각 1년 이상, 3년 이상의 징역형을 부과하는 내용도 신설했으며 특수강도강간 등, 특수강간 등, 13세 미만에 대한 강제추행 및 공중 밀집 장소에서의 추행의 죄 등의 형량을 상향했다. 기타로 범죄수익은닉규제법을 개정하여 디지털 성폭력 범죄의 경우 해당 범죄들과 범죄수익 간 입증 책임을 완화했다. 청소년성보호법 개정안에는 성매매 대상이 된 아동·청소년을 ‘피해자’로 명시하는 내용이 담겼다. 또한 아동·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범죄 뿐 아니라 단순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도 신상 공개 대상으로 삼도록 했다.

그러나 성범죄 근절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결정한 ‘의제강간 연령 상향’, 형량강화, ‘신상공개 확대’ 등은 가해자 엄벌주의, 피해자 보호주의 프레임을 담고 있어 성폭력이 발생하는 사회 구조적인 문제를 근본적으로 바꿔나가기 위한 대책으로서 한계가 분명하다. 특히 이번에 통과된 법률은 ‘n번방 대책’으로 호명된 것인데 의제강간 연령 상향의 문제는 강간죄를 폭행협박이 아니라 동의의 문제로 전환하는 문제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반성폭력 운동이 지금 가장 중요한 변화로 요구하고 있는 강간죄 ‘동의’여부로의 전환을 뺀 채 정부와 국회가 의제강간 연령 상한만을 따로 떼어내 이번에 포함한 것은 단지 청소년에 해당하는 문제라고 보는 시각이 아닌가? 따라서 이번에 통과된 법률이 최대한 범죄 피해자의 인권을 보호하고, 모든 사람을 성적 폭력에서 자유롭게 할  뿐만 아니라 성적인 권리를 가진 ‘온전한 사람’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조건을 만들기 위해서  문제점과 한계점을 지적하고 더 나은 방향을 고민하고자 한다. 

첫째,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불평등한 사회구조적 권력 차이에 의해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의 주요 맥락들을  더욱 삭제할 우려가 있다.  

장애여성공감은 지금 ‘도가니 사건’ 이후에 벌어졌던 상황을 떠올리며 기시감을 가지기도 한다. 2011년 국민적 공분을 샀던 일명 ‘도가니 사건’은 장애인 시설 종사자에 의한 오랫동안 벌어지고 은폐되었던 장애인, 장애아동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다. 이후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에 대해 형량이 매우 높아졌지만 운동이 의도한 변화를 이끌어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장애인의 경우 항거불능에 해당하기 때문에 폭행협박이 없어도 처벌할 수 있다’는 조항은 가해행위에 대한 단죄보다는 피해자의 장애가 진정 항거불능을 초래했는가를 규명하는데 맞춰지는 경향이 강하다. 장애인을 특별히 보호하겠다는 사법적 논리가 장애인을 무력하고 동의능력이 없는 사람으로 보겠다는 시각과 결합될 때 장애인은 피해를 입증하려 할수록 자신의 무력함을 증명해야 한다고 비판하는 이유이다. 

이번 법무부 대책에 ‘비동의 간음죄’는 빠지고 의제강간 연령상한이 포함된 것 등을 비판하고, ‘n번방 방지법’에 포함된 것을 문제와 한계라고 지적하는 이유도 비슷하다. 성폭력 사건의 발생 원인으로 상대방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쉽게 제압하거나 무시할 수 있는, 혹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상황이나 조건을 이용하거나 속이는 등 가해자가 나이, 장애유무, 영향력, 힘, 위력, 경제력 등 유・무형의 불평등한 차별을 통해 획득한 권력을 상대방의 의사에 반하여 폭력적으로 행사했는지 여부 파악이 중요하다. 그러나 의제강간 연령 상향은 ‘가해자는 피해자의 나이가 16세 미만인 것을 알았는지’, ‘피해자가 나이를 말하지 않아도 가해자가 알아 챌 수 있는 물적 증거가 있는지’, ‘피해자가 정말 16세 처럼 보였는지’ 등 나이에만 한정하여 수사가 집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법정에서 장애인 피해자가 경험해왔던 무력감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 소위 동의 능력이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 철저하게 물어야 한다. 

둘째, 무력한 피해자로 규정하는 보호주의로는 권리를 보장할 수 없다.

2020년 4월 15일에 열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는 만 18세 이상의 청소년들이 투표에 참여한 첫 선거였다. ‘청소년은 미숙해서 정치적 판단을 하기 어려울 것이다’라는 차별에 맞서 청소년 참정권을 위해 싸웠던 결과이다. 하지만 의제 강간 연령을 16세로 상향하면서,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들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행사할 수 없는, 형사절차상에서 ‘동의’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는 피해자가 되었다. 또 다른 편에서는 ‘청소년들이 너무 똑똑하고 성인만큼 사고∙판단할 수 있어’ 형사 미성년 연령을 14세에서 더 낮추자고 한다. 우리 사회에서 청소년은 어떤 정체성을 가진 존재로 인식하고 있는 것인지 질문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는 청소년에게 ‘어려서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선거를 할 수 있는, 노동할 수 있는, 독립할 수 있는, 성적 즐거움을 가지고 폭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다양한 권리를 유예시킨다. 장애인들에게는 ‘장애가 있어서 보호가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독립할 수 있는 권리를,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성적 자기결정권을 통제한다. 보호와 통제라는 이름 하에 권리와 욕구들은 삭제되고, 성폭력 사건 안에서 무력한 존재 또는 무지한 존재가 되어야 청소년과 장애인은 비로서 성폭력 피해자로서 인정 받을 수 있다. 청소년들이 사회적으로 낮은 위치에 있음을 고려하지 않은 채 청소년이라서, 피해자라서, 어려서 판단이 미숙해서 ‘보호’해야한다는 판단만으로는 청소년들의 권리는 보장될 수 없다. 또한 피해자가 성폭력피해자로서만 소환되고 보호받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시민으로서 자신의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사회는 보장해야 한다. 

앞으로 인권운동의 과제와 역할은 무엇인가.  

대중이 성폭력 범죄 형량 상향 및 신상공개를 강하게 요청하는 것은 그동안 사법기관이 성폭력 사건에 대해 부당한 또는 미온적인 처벌을 하는 등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경찰•검찰 단계에서의 수사 부실, 피해자에게 과하게 요구 되는 입증 책임, 높은 형량 때문에 기소를 기피하는 검찰과 경찰, 가해자들의 편의를 봐주는 수많은 감경요소들과 낮은 유죄율이 국민을 분노케하는 이유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 경찰, 검찰 그리고 판사들의 낮은 인권 의식과 성인지 감수성에 대해서 사법부와 이를 법과 제도로써 견제하지 못한 국회는 여론에 밀려 보여주기식 입법을 통해 책임을 피해 가려 하지 말고, 자신들의 잘못부터 먼저 성찰하고 개혁해야 할 것이다. 또한, ‘n번방 사건’을 계기로 확인된 우리 사회의 잘못된 성인식에 대해 정부가 그간 실시해온 성인권 교육의 실패를 자인하고 근본적인 대책과 제도 마련을 위해 여성, 청소년, 장애인 등 사회 여러 진영과 진지한 논의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에서 필요한 교육이 진정 무엇인지 함께 만들어 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장애여성공감은 성폭력피해자가 사법절차 안에서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과 별개로, 성적 권리를 가진 시민으로서 언젠가 성인이 될 청소년으로, 계속해서 장애인으로 평등하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내놓지 않고 불평등을 방치하고 생산하는 국가에 분노하고 저항할 것이다. 디지털 성폭력 피해자는 중대한 범죄피해를 입었기에 그에 걸맞는 사회적 인정과 회복을 위한 사회적 지원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며 그것을 위해서 주목해야 하는 것은 피해자의 나이가 아니라 피해자의 호소와 요청이며 근본적으로 도전해야 하는 것은 불평등과 부정의라는 점을 계속 소리높일 것이다. 성폭력처벌법이 엄벌주의와 보호주의를 먹고 자라나 부메랑으로 돌아오거나 피해자의 삶이, 성적권리가, 인권운동이 파괴되지 않도록 또다시 길을 떠나야 한다. 이번에 통과된 의제강간 연령상한이 미칠 파장을 똑바로 마주하기 위해서 박수대신, 침묵대신, 논평을 남긴다.   

 

2020년 5월 4일

장애여성공감

 

입장/연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