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강좌 <자기결정권을 둘러싼 쟁점>: 2강 ‘성적자기결정권을 넘어서 완전성의 권리로’ 후기

성적자기결정권을 넘어 온전성의 권리로

 

작성: 나은(장애여성공감 활동가)

 

 

정조에 관한 죄에서 강간과 추행의 죄로

형법 제32장 ‘정조에 관한 죄(1953)’가 ‘강간과 추행의 죄(1995)’로 변경된지 어느덧 24년이 흘렀다. 가부장제 가족 안에서 재산으로써 지켜야 하는 여성의 정조, 순결, 그리고 이를 침해 받았을 때에 도덕적 차원에서 여성이 비난 받았던 ‘정조에 관한 죄’에서 자기 운명을 결정하고 누구와 성관계를 할지 결정할 권리가 있다는 권리의 주체로써 여성을 이야기 하는 ‘강간과 추행의 죄’로의 변화는 그야말로 엄청난 변화였다.

 

보호법익으로써 성적 자기결정권의 한계와 온전성 개념의 의미

강간과 추행의 죄의 보호법익으로써 ‘성적자기결정권’은 모든 인간이 합리적이며 자율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자유주의적 법학의 한계를 내포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매 순간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으며, 개인이 살아온 역사적 맥락과 결정을 내리는 상황과 관계 등이 충분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점이 누락된 것이다. 이에 ‘성적자기결정권’은 본래 취지와 달리 성폭력 상황에서 합리적인 개인이 성적자기결정권을 행사하면 되는 문제로써 성폭력을 협소하게 해석하거나, 피해를 당한 본인 책임이라는 식의 논리가 가능하게 만들었다. 또한 피해자가 판단능력이 있음/없음을 증명하는 상황을 만듦으로써 피해자다움을 강화시키기도 했다.

한편 “성폭력은 내가 통제하는 ‘안전한 세계’에 있다는 감각이 허물어지는 경험으로써 결코 자기결정권‘만’, 신체‘만’, 정신‘만’ 침해하는 것이 아니라 신체의 온전성 침해의 측면”으로 볼 수 있다. 이와 더불어 피해를 경험한 주체들이 가진 다양한 차이(젠더, 인종, 경제적 위치 등)와 사회 구조에 따라 성폭력 경험 또한 결코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적자기결정권과 더불어 온전성 개념을 이야기 할 때 성적자기결정권과 성폭력에 대한 논의의 지평을 확장시킬 수 있을 것이다.

 

장애여성이 온전성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

어쩌면 장애여성이 ‘온전성의 권리’를 주장한다는 것이 조금 낯설게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회적으로 장애가 있는 몸은 불완전하며 극복되거나 치료되어야 하는 몸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때의 온전성은 결코 생물학적 흠결없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온전성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원래 있던 그대로서의 통합성’의 의미로써 온전성은 장애를 가진 존재가 장애를 내 몸이 가진 고유성으로 정체화한다는 정치적 의미를 지닌다. 즉 장애여성이 온전성의 권리를 말한다는 것은 정상성으로써의 온전성이 아닌 정상과 비정상의 이분법에 질문을 던지고 불완전한 존재들의 온전성을 말한다는 것에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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