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적인 존재들이 ‘합리성’의 기준에 도전한다는 것
작성 : 장은희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보편적 인권으로서 자기결정권의 역설과 모순
인간은 모두 인간으로 ‘태어나기만 한다면’, 자연적으로 권리의 주체 자격을 획득한다고 가정된다. 자기결정권 역시 인간은 ‘합리적으로 자신의 삶을 결정하고, 자신의 결정에 책임을 질 줄 아는 자율적 능력의 타고남’을 기본으로 삼고 있으나 ‘합리적 기준’은 국가권력에 의해 정해지고, ‘헌법상의 권리’로 정의되고 있기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국가의 법률적 기반 없이는 성립될 수 없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즉, 모든 인간은 ‘자기결정’은 할 수 있으나 ‘자기결정권’으로써 실현 혹은 보장받기 위해서는 국민으로 인정받아야 하며, 국가의 제도적 노력, 특정한 사회적 조건을 인위적으로 마련하지 않고서는 실제로 보장될 수 없다는 모순적 상황에 놓여져 있다. 더불어 합리성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지배 이데올로기의 의거한 판단’에서 어긋나는 ‘자기결정’은 ‘자기결정권’으로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국민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국가로부터 ‘합리적 판단을 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인간들’의 삶
난민들은 존재 자체가 불법인 탓에 외국인 보호소나 수용소에 가두거나 추방된다. 또한 난민들은 노동시장의 경쟁자이자 세금 도둑으로 인식되고 있으며, 이 인식을 기반으로 ‘가짜 난민’ 담론을 형성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국가는 난민들이 ‘난민다움’과 ‘국민이 될 만함’을 입증할 것을 요청하는데, 여기에 대해 난민들은 자신의 ‘불쌍한 처지’와 ‘국민에 적합함’을 반복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이들의 경험은 장애인들의 경험과도 일치된다. 사회적 손실과 위험을 최소화 한다는 명목하에 장애인들은 장애인거주시설로 보내진다.
또한 국민의 혈세를 쓰는 장애인 중에는 ‘가짜 장애인’이 많다는 도덕적 낙인으로 인해 국가가 용인한 감시의 대상이 된다. 때문에 장애인은 난민과 마찬가지로 ‘정상화’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거나 혹은 불쌍한 인간으로서 동정과 시혜의 대상으로 자신을 드러낼 때만 비로소 인간으로 존엄을 지키며 최소한의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난민과 장애인들의 교차되는 경험을 통해 아직 국민으로 인정받지 못한 ‘단지 인간일 뿐 아무것도 아닌 자’들은 자기결정권을 포함한 인권을 상실하게 되는 것을 알게 된다.
불법적 존재들이 권리를 개시하는 순간을 기다리며
당연히 시설 혹은 집안에 있어야 하는 불법적 존재였던 장애인들이 이동권 투쟁을 통하여 보편성의 확장을 가져온 것처럼 법-바깥의 인간들이 법-내부로 도입될 때, 그들의 삶은 법과 제도로 하여금 새로운 권리들을 요청하며, 이 요청은 그 자체로 주권과 법, 제도가 행사되는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에 공감한다. 더불어 불법적인 존재자들이 만든 불법의 공간 형성은 ‘자기 결정권’의 내용도 변화시킬 수 있다. 불법적 존재들의 정치적 ‘자기결정’은 ‘좋은 국민’이 보장받는 ‘자기결정권’의 제약을 넘어서 더 많은 가능성들을 내포하고 있으며, 자기결정권에 항상 따라붙은 제약적 단서들, 즉 “국가 안전 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의 기준을 변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비합리적인 것으로 취급받는 존재들’이 합리성의 내용을 변형 하거나 혹은 합리성의 기준 자체를 깨뜨려 버리려는 실천으로부터 새로운 세계로의 출발이 시작된다면, 그 힘찬 출발을 위해 불법적 존재들과 연대를 하는 것이 우리들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