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죄 위헌 결정에 대한 장애계 논평]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환영한다. 이제 모든 사람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제대로 만들 때이다.

[낙태죄 위헌 결정에 대한 장애계 논평]

낙태죄가 헌법에 위배된다는 헌법재판소 결정을 환영한다. 이제 모든 사람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제대로 만들 때이다.

지난 4월 11일은 한국사회의 헌법재판 역사에 중요하게 기억될 것이다. 우리 장애계는 2017년 한센인에 대한 행한 강제 단종수술에 대해 국가의 책임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 이후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또 하나의 큰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이제 장애와 질병을 가졌다는 이유로 생명과 인권을 박탈했던 역사를 반성하고, 이로 인해 차별과 억압을 받았던 이들에게 국가가 제대로 사과해야 한다. 이러한 사과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는 우생학적 정책, 시설수용을 통한 격리 정책에 대한 폐지와 성과 재생산 권리 보장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 마련을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태아의 생명권 대 여성의 선택권”의 구도가 해체되었다는데 의미가 크다. 두 가지의 권리는 충돌하는 것이 아니며, 두 가지의 권리를 모두 보장하기 위해서 낙태죄가 폐지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이제 이러한 소모적인 논쟁에서 탈피해야 한다.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국가의 의무이다. 그러나 태아의 생명권 보호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사람의 생명보다 무겁지 않다. 태아는 이후 사람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너르게 보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의 생명 보호 의무가 차별 없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있다. 국가는 과연 현재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의 생명권을 제대로 보호하고 있는가에 대해서 답해야 한다.

 

이번 헌재결정의 아쉬움이 있다. 이번 결정은 낙태죄가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지 여부를 다루면서 모자보건법에서 규정한 인공임신중절 허용사유가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검토하였고, 그 허용 범위가 너무나 협소하여 그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나 모자보건법 상 허용사유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판단할 필요가 있다. ▲모자보건법상 허용사유는 형법상 낙태죄 유지에 기여하였다. ▲모자보건법은 인공임신중절 허용사유를 통해서 생명을 선별하고 차별하였다. ▲이로 인해 수많은 장애인/비장애인을 막론하고 시설에 수용된 이들은 때로 적법한 절차도 생략된 채 강제 불임시술, 낙태수술을 받아왔다. 모자보건법이 가진 문제점을 제대로 지적하는 것은 이후 대체법안 마련을 위한 과정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모자보건법을 고쳐 쓰는 것이 아니라 전면 폐기 후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모두의 성과 재생산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 만들어져야 한다.

 

이제 장애인의 생명을 어떻게 차별 없이 보호할 것인가와 관련해 제대로 논의해야 한다. 하지만 일각에서 임신중지에 대한 사유와 기간을 규제하는 것으로 장애감별낙태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는 의문이 크다. 지금까지 낙태죄가 있는 상황에서 24주 이내 매우 제한적으로 인공임신중절 수술을 허용해온 상황에서도 태아의 장애는 쉽게 감별되고, 유산이 당연시 되어왔던 사회문화적 맥락이 있다. 게다가 배아와 태아에 대한 유전자 검사가 점차 민간시장영역에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단지 임신당사자의 결정을 제한하고 통제하는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것은 해결책이 될 수 없다. 국가가 앞으로는 장애아의 감별 낙태를 반대하는 척하면서 뒤로는 민간시장에 무분별하게 유전자 검사를 열어주며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는 기만적 행위를 한다면 국가의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국가의 통제와 시장에서의 선택 이분법이 아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장애인의 성과 재생산권리를 보장하는 것, 그리고 모든 임신과 출산 과정에서 임신의 당사자가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다양하고 양질의 정보와 상담을 필요한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 장애인의 차별을 철폐하는 것, 장애인의 삶의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궁극적으로 여아감별낙태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성차별을 철폐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모든 임신의 당사자들이 최선의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장애계는 더 많은 정보와 의견을 사회적으로 말할 것이다. 국가는 그 정보의 통로를 마련하고 최선의 결정을 실현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라.

 

마지막으로 우리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에 대해서 반대하기 위해 여성의 결정을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논리와 여성을 공격하는 운동에 동원되는 것을 거부한다. 그들은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에 아무 관심도 없으면서 장애인을 구원하겠다고 한다. 빈곤층이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사회적으로 지원하자고 하면서 불평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 목소리가 우리를 대변한다고 여기지 않는다. 삶은 태아일 때와 이후의 삶으로 나눠지지 않는다. 태아만을 보호하는 목소리는 현실의 차별과 불평등을 부정하며 단지 미래를 꿈꾸라는 목소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장애해방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우리는 구원이 아니라 평등을 원한다.

 

2019년 4월 17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장애여성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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