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장애여성공감 성폭력 상담소 20주년 논평, 장애여성 반성폭력 운동, 항거불능에 맞서 반차별을 외치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20주년 논평

 

장애여성 반성폭력운동, 항거불능에 맞서 반차별을 외치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는 지난 2001년 8월 30일 개소하여 올해로 장애여성 반성폭력 운동 20주년을 맞았다. 지난 20년간 성폭력상담소는 정상성을 강요하는 불평등한 사회에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도전해왔다. 장애여성의 목소리로 법적 기준을 확장하고 사회를 변화시키는 반성폭력 운동의 역사에 동참해왔다. 하지만 장애여성의 위치에서 차별과 폭력에 반대하는 활동은 종종 특수한 영역으로 치부되었다. 계속해서 ‘장애’의 무능과 무력함이 폭력의 원인이라고 규정되었다. 그러나 장애여성공감의 반성폭력운동은 장애여성을 불능한 존재로 만드는 구조에 맞서고, 우리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존재들과 항거 불능한 삶을 강요하는 구조에 맞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20주년을 맞아 우리의 요구를 명확히 선언하며 성폭력 가해를 용인하고, 성적 권리를 특권으로 만들어온 권력에 저항하며 소수자들의 연대로 폭력에 저항하는 움직임을 함께 할 것이다. 

 

인권은 능력이나 자격의 문제가 아니다. 

현행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 처벌법) 제6조의 4항과 5항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항거불능 또는 항거곤란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라는 조항은 피해자의 장애 정도가 심하여 저항할 수 없는지, 가해자가 이를 알고 이용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성폭력 범죄판단의 근거다. 하지만 이러한 법적 기준은 성폭력이 발생하는 원인인 사회 구조적 성차별과 권력의 문제를 삭제한 채 피해자 개인의 저항 능력의 유무나 저항의 정도만을 캐묻는다. 이는 성적자기결정권을 권리가 아니라 능력의 문제로 왜곡하고 사법적 판단의 대상이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되는 모순에 빠지게 한다. 

장애여성 성폭력 역시 ‘장애’로 인한 무능이 원인이 아니며,  ‘장애여성의 삶’을 무력하게 만드는 차별의 구조와 불평등한 권력이 폭력의 원인이다. 이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시설화하는 것을 공모하고 모든 시민이 평등하게 인권의 주체로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지 못한 국가의 책임이다. 하지만 지금의 제도는 피해자가 자신의 취약함이나 무능함을 증명하고 피해자로 인정받아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다. 당사자의 필요와 욕구가 정해진 지원제도에 피해자가 자신을 구겨 넣음으로써 오히려 고립되는 시설화된 삶을 강요받는다. 폭력의 피해자를 지원하는 것은 국가의 책무이고 이를 위해 사회적 자원을 요구하는 것은 특혜가 아니라 권리이다.

 

장애여성, 진정한 동의가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주체

장애여성은 성폭력 사건 수사·재판 과정에서 장애로 인한 무능함을 항거불능의 조건으로 증명하길 요구받는다. 장애에 대한 차별과 편견 섹슈얼리티에 대한 보호주의적이고 통제적인 규범과 맞물려 무력하고 무성적인 존재로서 ‘진짜’ 피해자가 되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나아가 현재 성폭력의 법적 범죄구성요건을 ‘폭행과 협박’이 아닌 상대방의 ‘동의’여부로 개정하려는 반성폭력 운동의 흐름 속에서 장애여성 반성폭력운동은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동의’를 개념을 다시 질문한다. 장애인 성폭력을 피해자의 ‘장애’로 인한 항거 능력의 유무로 판단하려는 관점이 변화하지 않는다면 범죄구성요건이 동의로 바뀌어도 다시 장애여성에게 ‘장애’로 인한 ‘동의 능력’의 유무를 질문하는 과오를 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의가 필요한 이유는 상대도 나와 동등한 성적 존재로서 자신의 몸과 성적 행위 등을 포함한 섹슈얼리티에 대한 결정을 스스로 할 권리가 있는 인권의 주체라는 인식에서 출발한다. 하지만 비장애인 중심 사회에서 장애여성의 의사가 무시되고, 질문하지 않는 관계가 일상일 때 장애여성이 경험한 차별과 통제받는 삶의 맥락은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쉽게 삭제된다. 장애여성의 관점으로 ‘동의’의 개념을 다시 쓴다는 것은 ‘동의’를 상대의 표현 여부나 동의 ‘능력’의 문제로만 해석하려는 권력에 맞서는 것이다.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비동의를 표현할 수 있는 관계였는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정보와 자원이 충분했는지, 혹은 동의가 언제든 철회될 수 있는 관계와 상황이었는지 등을 입체적으로 분석하고 동의의 자발성과 진정성을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시설화된 삶에 맞서 반차별을 외치다

앞으로도 우리는 보호라는 이름으로 장애여성의 섹슈얼리티를 시설화하고 당사자의 언어를 삭제해온  억압의 역사에 맞서 동료 시민으로서 장애여성의 이름으로 인권의 주체임을 선언하고 사회를 향한 말하기를 멈추지 않겠다. 

장애여성의 차별과 폭력의 경험을 당사자의 언어로 기록함으로써 성폭력을 가능하게 하는 사회구조의 문제를 드러내고, 이러한 차별적 삶의 조건들이 ‘항거불능’한 상태임을 폭로해 갈 것이다. 이는 장애여성 피해자 개인의 경험 말하기를 넘어 차별적 사회구조 속에서는 비슷한 처지에 놓인 존재들의 사회적 경험과 연결되어 확장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보호주의에 반대하는 다양한 소수자들의 연대를 추동하며, 시설사회에 맞서는 동료되기 안에 성폭력 피해자의 자리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활동은 장애여성이 경험하는 일상의 차별을 자신의 언어로 당당히 말하고, 권리로서 일상의 변화를 요구하는 자기옹호활동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장애여성의 삶을 시설화하고 차별의 구조를 공고히 함으로써 기득권 지배 권력을 유지하게 만드는 시설사회에 맞서 동료 시민으로서 탈시설을 요구하는 사회적 말하기로도 연결된다. 차별이 어떻게 소수자를 시설화하며 폭력과 연결되고 있는지, 드러내기 위해서는 그동안 호명되지 못했던 권리, 묵인되어왔던 복합적이고 다양한 차별을 사회에 알리고, 보이지 않았던 존재들이 가시화되어야 한다. 이에 우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제정과 강간죄 개정을 함께 외친다.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는 지난 20년을 그래왔듯 차별에 분노하고 억압에 저항하여, 장애여성과 동료가되어 매일의 일상을 부대끼며 함께 웃고 떠들며 요란하게 우리의 권리를 얘기할 것이다. 시설사회를 유지해온 견고한 사회구조에 균열을 내기 위해 차별받고 배제되었던 다양한 존재들이 동료 시민으로서 연대하여 ‘탈(脫) 시설’과 서로 의존하고 돌보는 ‘독립’을 더 크게 외칠 것이다. 

 

댓글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