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도가니’, 분노하는 우리들이 돌아보아야 할 것

[논 평]

‘도가니’, 분노하는 우리들이 돌아보아야 할 것

영화 <도가니>가 거대한 바람을 몰고 왔다. 영화 흥행기록이 보여주는 양적인 성공 외에도 빠른 시간 안에 사회적 공감대와 분노를 불러일으킨 점에서 그야말로 성공적이다. 여세를 몰아, 장애인?성폭력 관련 법과 장애인시설 관련 제도 개선 등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고 남아있는 문제들이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인화학교 재수사를 촉구하는 풀뿌리 서명운동도 일어났다. 이런 분위기라면 일정정도의 현실 변화를 기대해볼만 하다. 

그런데, 현장에서 장애인성폭력사건을 지원해온 본 단체는 지금의 ‘도가니 사태’를 지켜보며 복잡한 심정에 빠진다. 영화로 돌아가 생각을 해보자. <도가니>는 주인공 인호(공유 분)의 시선을 따라간다. 영화에서 인호라는 대리자의 시점은 인화학교 사건 피해자들의 처절한 일상 현실에 접근하는데 완충지대 역할을 한다. 부모가 없는 장애아동, 연고는 있으되 실질적으로 보호를 해줄 수 없는 열악한 환경에 놓인 장애아동의 일상은 대리자의 눈으로만 일부 ‘보여 진다’. 그 누구라도 장애아동에게 놓인 현실의 처절함이 어떤 것일지는 보여 지는 딱 그만큼의 수준 이상 다다를 수 없다. 다만 인호처럼 우리는 ‘엄청난 사건’을 보고 분노하고, 일정정도 거리를 두고 사건 해결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위안을 얻을 수는 있다. 이것이 영화가 높은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는 이유일 것이다.

인호는 소위 ‘보호자들’이(영화 속의 교사들이) 장애아동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인권을 참혹하게 유린 하는 상황을 발견하고, 또 다른 ‘보호자’로서 사건을 해결하는 인물이다. 인호는 우리를 포함해 장애인을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지원자 내지 보호자의 모습과 다르지 않고, 이렇게 ‘힘없는 장애인’과 ‘보호자’라는 구도는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가 의심해야 할 시선이다. 장애인은 시설에서 ‘보호를 받는’ 입장이나 사건해결의 ‘대리를 받는’ 입장에 놓인다. 그런데 장애인을 보호하고 대리하는 것이 누구를 위한, 누구에 의한 선택이냐는 것이다.

한편, 영화에서 사건의 해결은 두 가지 차원, 즉 현실 법제도에서 장애아동이 성폭력피해를 인정받는가와 불의를 저지른 가해자가 처벌을 받는가에 집중된다. 이는 지극히 사회적 ‘상식’ 선에서의 해결이다. 그러나 성폭력피해 장애아동의 입장에서, 현행 법제도 내 수사?재판 과정에 참여하는 것 자체는 가해자 처벌의 성공 여부와 무관하게 엄청난 고통이다. 영화에서 법정 증인신문 중 오줌을 지리는 유리(정인서 분)의 모습이 잠깐 스쳐 지나간다. 그들의 입장에서 근원적 고통과 공포 자체인 법제도, ‘정상’ 사회의 틀 자체는 가치 판단의 심판대 위에 소환되지 않는다는 점을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어린 나이부터 시설에서 자신의 유일하고 중요한 ‘보호자’에게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가장 기본적인 ‘상식’의 경험을 박탈당하고, 사회의 ‘정상성’에서 근원적으로 배제되며 살아온 그들이다. 그 아동들이 사회적 ‘상식’ 혹은 ‘정상성’의 법제도 틀 안에서 피해를 인정받는 것을 가장 중요한 사건의 해결지점으로 생각할거라는 전제는 의심해봄직 하다. 이는 어디까지나 기존 법제도라는 ‘상식?정상성’에 안전하게 기대 살아온 ‘우리’, ‘대리자’의 시선이자 욕망이지 않을까? 피해 장애아동들이 기존의 상식 자체를 냉소하고 뼛속 깊이 불신하는 편이 오히려 설득력 있어 보인다. 

여기서 우리가 근본적으로 되짚어 봐야 할 지점이 무엇인가 질문해야 한다. 장애인 뿐 아니라 여러 소수자 문제 틀 자체가 ‘정상’ 사회의 시점에서 대리되는 것은 한계와 위험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문제에 분노하고 이를 해결하는 것은 기존 사회의 안락함을 위협하지 않는 선에서만 허용되고 공감대를 얻을 수 있다. 영화 혹은 대리자의 시선에서가 아닌, 실제 우리사회에서 장애인에게 어떤 현실이 존재하는가?

장애아를 출산한 부모가 양육을 포기한 채 버리는 현실에서 입양도 되지 않아 수많은 무연고 장애아가 장애인 시설 수용을 필요로 한다(말할 것도 없이 그런 장애인 수용시설의 존재는 <도가니>의 현실이 발생한 일차적 배경이다). 장애여성에겐 임신과 출산이 필요치 않거나 막아야 한다는 인식에서 많은 보호자들이 장애여성의 의사와 상관없이 불임시술을 종용한다. 장애아동?청소년이 학교나 또래집단에서 ‘왕따’나 폭력을 경험하고 그 후유증으로 정신질환까지 갖는 경우가 비일비재 하다. 교육이나 노동의 기회를 비롯한 기본적 사회 관계망을 가지기 힘든 많은 장애여성들은 가정이나 시설, 지역에서 가족(보호자)이나 이웃에게 지속적으로 (성)폭력에 노출된다. 사회적 ‘상식’의 기준을 의심하지 않는 많은 사람들은 지금까지 이러한 현실을 사실상 암묵적으로 용인해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정상/비정상’의 구분을 더욱 공고하게 만들며 ‘정상’사회의 안전함을 지켜왔다.

지금 우리가 ‘분노’하거나 ‘위안’하는 것의 실체는 무엇이고, ‘도가니 사태’의 의미는 무엇인지, 우리들 스스로에게 먼저 질문해야 할 때다. ‘그들’과 나의 거리를 좁히고 직면할 때 <도가니>를 넘어설 수 있다.  

2011.9.30

      (사)장애여성공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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