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지적장애청소녀 성폭력사건 판결 규탄

지적장애 청소녀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을 규탄한다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녀도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녀가 9살 때부터 8년 동안 친족에 의해 성폭력피해를 입어왔으나 이에 대해 법원은 가해자 모두에게 집행유예라는 경미한 형을 부과하였다.

청주지법 형사 11부는 지적장애가 있는 청소녀를 부모대신 양육하면서 피해 청소녀의 할아버지, 큰아버지, 작은 아버지가 각각 8년 동안 성폭력을 해온 것에 대해 그 성폭력 범행을 모두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가해자이며 친족이기도 한 이들이 지적장애청소녀를 계속 양육해야 한다는 것과 가족들이 정신적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것 등을 이유로 이토록 경미한 처벌의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의 판결문을 보면 “나이 어린 피해자를 자신들의 성적 욕구 해소의 수단으로 삼아 번갈아가며 강간하거나 강제 추행한 것으로서, 그 범행 내용 자체로 인륜에 반하는 것이고 사회적 비난 가능성도 매우 크다”고 하면서 “피해자는 자신의 ‘가족’에 대해 소속감이나 친밀감을 느끼기 보다는 두려움과 적대적 감정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하면서도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어려운 경제형편에도 불구하고 지적장애로 양육이 불가능한 부모를 대신하여 최근까지 피해자를 양육해 왔고, 피해자의 정신장애 정도 등에 비추어 보면 앞으로도 피해자에게는 그 가족인 피고인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도움이 필요한 점”과 가족들의 고통, 가해자들의 노령과 질병 등을 이유로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이라고 하였다. 


판결문을 보면 가해자들의 처지와 상황 그리고 가족들의 정신적 고통은 고려되었으나 정작 피해자인 지적장애청소녀의 고통과 상처는 어디서 고려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보호자라는 이름을 달고 남성 친족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자행된 성폭력을 아동기부터 겪었을 피해자가 앞으로 그 고통을 치유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고려가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어떻게 가해자들에게 집행유예 판결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게다가 판결문에서 피해 지적장애청소녀에게 앞으로도 “피고인(가해자)들의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라고 서술한 것은 피해 지적장애청소녀의 삶을 다시 그 가해자들에게 위탁한다는 의미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는 지적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방기한 채 모든 것을 다시 가족에게 환원하는 태도로서, 현재 이 사회가 가진 장애인 생존권에 대한 사회적 책임방기와 혈연중심 가족중심주의 구조에서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러나 재판부가 그 가족이 성폭력 가해자 남성들로 구성되어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면서도 피해 지적장애청소녀에게 가해자들의 어떤 관심과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재판부는 성폭력가해자들이 무려 8년 동안 해왔던 성폭력 가해의 행동을 갑자기 멈추고 앞으로는 피해 지적장애청소녀에게 건강한 관심과 보살핌을 행할 것이라고 진정 믿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피해자가 지적장애가 있으므로 성폭력의 고통이나 상처도 알지 못할 것이니 먹을 것만 주고 잠잘 곳만 제공해 주어도 감사한 관심과 도움이라고 생각하는 것인가. 

우리는 이번 사건이 비장애여아에게 일어난 성폭력일 때에도 동일한 판결이 났을 것인가, 혹은 이것이 비장애남아에게 일어난 성폭력으로 가해자가 여성친족에 의한 사건일 때에도 동일한 판결이 났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판결이 가능했던 것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지적장애여성에게 일어나는 성폭력은 그럴 수도 있는 일, 혹은 안타깝지만 어차피 갈 곳도 없는 그 장애여성을 책임질 사람들은 가족이니 가족이 가해자일지라도 할 수 없다는 의식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여러 남성 친족들이 가해자 임에도 불구하고 그 가족을 피해 여성의 미래를 보살펴 줄 사람들이라고 상정하고 있는 것은 성폭력을 실수에 의한 우발적 사건으로 보며, 성폭력을 발생시키는 사회 구조적 문제를 전혀 이해하고 있지 못하는 태도라고 여겨진다. 우리는 이번 판결에 대해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구조, 혈연가족중심주의, 장애에 대한 사회적 책임회피의 태도가 가져온 결과라고 생각한다. 


재판부는 가해자들이 피해 지적장애청소녀를 ‘양육’해 온 게 아니라 음식과 집을 제공하면서 8년 동안 ‘성폭력’을 가해왔다는 사실을 명확히 이해하길 바라며, 피해 지적장애청소녀는 가해자들을 친밀한 가족으로 느끼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과 적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잊지 않길 바란다. 남성 친족들에 의해 구조적으로 성폭력이 진행되고 조직적으로 은폐되었던 성폭력 현실이 드러난 지금 그 가족은 앞으로 보살핌이 기대되고 상처와 고통을 염려 받아야 하거나 지켜져야 하는 가족이 아니라 해체되어야만 하는 폭력적 집단이다. 따라서 성폭력을 가했더라도 가족이므로 피해자에게 관심과 보살핌을 줄 것 이라는 믿음은 혈연가족중심주의가 만든 허구일 뿐임을 직시하길 바란다.  

성폭력 가해자는 죄질에 맞게 처벌되어야 하며, 피해 지적장애청소녀는 성폭력 소굴인 혈연 가정으로 돌아가는 게 아니라 안전하게 생활하며 성장할 수 있는 공간으로 갈 수 있어야 한다. 피해 지적장애청소녀의 안정적 삶과 치유는 성폭력가해자들일지라도 가족이기 때문에 가족 안에서 책임져야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그에 대한 책임과 제도를 가져가야 한다.


왜.냐.면. 

지적장애청소녀도 성폭력 피해를 입지 않고 안전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가 있기 때문이다.



2008년 12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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