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 탈병리화, 젠더/섹슈얼리티] 강의를 열며

[장애, 탈병리화, 젠더/섹슈얼리티] 강의를 열며
 
 
정책연구원 나영정
 
2014년 7월 장애여성공감에서는 새로운 모임을 시작했다. “장애, 탈병리화, 젠더/섹슈얼리티”라는 단어들의 조합으로 연구모임의 이름이 만들어졌는데, 처음에 모임의 키워드로 제시했던 것이 자연스럽게 이름으로 굳어졌다.
 
장애여성공감에서 여러 가지 질문을 마주하면서 이러한 키워드를 함께, 교차적으로 다루는 연구모임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탈병리화라는 장애운동의 목표 중의 하나가 현재 어떻게 논의되고 있는가? 이 목표는 장애를 의료전문가의 진단에서 사회적 장벽과 차별을 해소하는 관점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을 넘어 젠더와 섹슈얼리티의 영역에는 어떤 역할을 하는가? 젠더/섹슈얼리티와 연관된 ‘장애’는 탈병리화의 관점에서 어떻게 논의할 수 있으며, 이 논의는 성소수자 운동과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이러한 질문이 이어졌다.
 
 
근대사회에서 의학의 발전은 한편으로 병리적인 것, 비정상적인 것의 개념을 만들어내고 치료, 격리, 규범을 만들어내었다. 생산성이 없는 몸, 비규범적인 신체 활동은 20세기 초기 사회 발전과 개혁을 이유로 사회적 처벌을 정당화했다. 장애인과 성소수자, 결혼하지 않는 젊은이, 마약중독자, 성판매자들은 사회적으로 격리되고 이러한 ‘비정상성’을 제거하기 위해서 불임이나 낙태를 강요하는 등 단종의 방법이 동원되었다. 한국의 역사 속에서 존재했던, 지금도 이어지고 있는 장애인, 부랑인, 성판매여성들에 대한 수용시설을 떠올린다. 이러한 문제들은 극단적인 형태인 나치의 학살을 제외하더라도 미국, 유럽, 일본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던 현상이고 이러한 사회제도를 바꾸기 위해서 100년이상 인권을 향한 투쟁이 이어졌다고 할 수 있다.
 
장애정치에 있어서 탈병리화란 장애인이 경험하는 차별과 억압의 원인이 장애를 가진 몸 자체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장애에 대한 인식과 감정, 사회적 제도로 설명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몸(신체, 정신)에 손상이나 기능제약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부적절한 것, 잘못된 것으로 만들고 그 근거를 사회전체의 건강과 발전으로 삼는 것을 ‘병리화’라고 설명해보려고 한다. 이때 ‘병리화’는 단지 의학적인 진단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정상의 범주를 구성하고 그것을 규범으로 만드는 과정을 포함하는 것이다.
 
젠더/섹슈얼리티의 병리화
 
특히 성의 영역에서 이러한 병리화의 양상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가가 우리의 주요한 관심사였다. 장애여성을 무성적인 존재로 보지 말라는 장애여성공감의 초기 슬로건을 다시 되짚으면서 누구를 무성적인 존재로 만드는가, 무성성은 왜 문제가 되는가라는 질문도 새롭게 던져보게 되었다. 한편 무성애자라는 정체성이 부상하는 상황에서 무성애가 치료받아야 하는 것으로 설명하는 담론 속에서 장애여성이 어떻게 위치를 잡을 것인가는 중요한 질문이 된다.
 
동성애가 1973년 미국에서 더 이상 정신질환이 아니게 된 것을 발판삼아 성정체성을 탈병리화하기 위한 노력은 끊임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성적지향이나 성별정체성을 전환하기 위한 치료가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고,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조치를 받기 위해서는 성주체성장애라는 분류를 통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라는 정체성의 영역을 의료적 진단과 분리시키고, 의료적 모델에 따른 설명을 가져와서 사용할 것인지, 의료적 조치를 취할 것인가는 각자의 상황과 필요에 따라 결정해야 하는 문제로 만들고자 하고 있다. 하지만 때로 이러한 분리는 깔끔하지 않다. 정체성을 공유하는 한 집단 내에서도 병리화 담론을 차용해서 스스로의 존재를 설명하기도 하고, 실제로 의료적 조치의 욕구를 느끼는 이들은 병리화 담론에 도움을 받기도 한다. 또한 사회적으로 부과되는 낙인이 너무 버겁다고 느끼는 이들은 차라리 ‘사회적 소수자’ 보다 ‘병든 사람’이라는 인정에 더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관용과 배려를 베푸는 입장에서는 당연히 그러하다.
 
성적인 것과 관련된 행동을 병리화하는 설명은 법정에서 가장 빈번하게 울리기도 한다. 사이코패스를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성폭력 범죄를 저지른 이들은 때로 성충동조절장애로 진단을 받고 약물치료를 명령받기도 한다. 때로 어떠한 병력은 감형의 사유가 되기도 하고, 성폭력 가해자라는 낙인보다 질병의 이름을 갖는 것이 낙인을 줄이는 방법으로 여겨질 때 병리화와 범죄화의 관계를 새삼스럽게 고민하게 한다. 사회는 무엇을 병리화하고 범죄화하는가. 어떤 행위는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성풍속을 위반한 범죄’로 여기고, 어떤 행위는 타인의 성적자기결정권을 침해하는 범죄로 인식하는가.
 
장애의 재구성?
 
장애는 몸의 손상이나 기능제약을 이유로 일상생활이나 사회생활에 제약을 경험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때 몸의 손상이나 기능제약을 판단하는 것은 전문가만이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마치 페미니즘에서 섹스와 젠더의 관계를 고려하면서도 섹스의 차원을 과학자들의 해부학적 탐구에 맡겨놓지 않고 섹스 자체가 어떻게 구분되고 구성되는가를 고민하는 것과 비슷하다.
 
따라서 장애정치에서 장애의 범주를 끊임없이 고민하고, 기존에 장애로 인식되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포함하려고 하는 시도는 누군가를, 무언가를 병리화 하려는 시도와는 다르다. 장애는 그동안 인식되지 않았던 어떤 소수자가 드러나면서, 이들이 겪는 사회적인 장벽을 발견하고 그것을 시정하려고 노력하기 위한 명명이며, 부당하게 받아온 차별을 차별이라고 이름붙이기 위함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장애범주를 고민하는 것은 규범적이지 않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을 병리화하는 것과 다르며, 탈병리화하고자 하는 노력과 모순되지 않고, 비슷한 지향을 공유할 수 있다.
 
장애, 탈병리화, 젠더/섹슈얼리티 연구모임에서 매달 세미나를 진행하면서 마련된 내용이 6월 22일부터 강좌로 마련된다. 장애운동의 핵심적인 이슈이기도 한 장애등급제, 장애인의 성적 권리를 둘러싼 다양한 이해관계와 시선이 겹치는 성교육의 현장에서 길어올린 이야기들이 있다. 또한 의학과 사회학, 페미니즘, 퀴어이론 탐구를 통해서 무성성, 만성질환, 탈병리화를 둘러싼 사회현상과 담론에 대한 분석도 시도된다. 법제도에 대한 분석을 통해서 무엇을 범죄로 처벌하고 무엇을 보호하려고 하는지에 주목하고, 문화텍스트에서 장애와 트랜스, 범죄의 상관성을 연구하고 장애를 연기하는 것을 둘러싼 문제들을 통해 다른 몸 되기의 가능성과 한계를 살펴본다. 강좌를 통해 많은 분들과 깊은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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