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새로운, 도전 앞에 선 춤추는 허리

 

장애를 가진 여성들의 예술 하기, 예술가 되기

이진희(장애여성공감 사무국장)
 
장애여성극단으로써 활동 9년째를 맞는 춤추는 허리는 서울형예비사회적기업이라는 여전히 불안정한 구조 속에서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기 위한 새로운 도전을 앞두고 있다. 장애여성의 몸으로 만드는 신체극, 장애여성 배우들이 직접 진행하는 교육연극(Drama -in Education), 장애여성 연출가 양성교육, 어디든지 찾아가는 배달공연, 장애인 가족 연극 워크샵이 바로 그것이다. 9년의 시간을 돌아보고, 그간의 고민을 정리하며 앞으로의 나아갈 바를 조망하고자 한다
 
1. 장애여성이 예술을 한다는 것
 
춤추는 허리가 처음으로 공연을 올릴 준비를 할 때 장애여성의 몸이 무대공연에 적합하지 않거나 한계가 있을거라 조언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것은 아마도 비장애인의 연극을 흉내낼 것이라는 오해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단순한 흉내내기 자체가 쉽지 않았음은 물론, 무의미 했다. (모든 흉내내기가 무의미하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무대에 서기 위한 과정에서부터 이 사회에서 우리의 몸이 가지는 한계와 제한을 경험해야 했다. 장애인문화예술에 대한 다양한 사례와 장애인의 욕구에 맞는 제도적 지원이 전무한 상태, 언어장애가 있는 경우 의사소통의 문제, 종횡무진 움직이며 상황을 파악할 수 없게 만드는 극장의 물리적 구조, 장애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편견 속에서 우리는 각자의 장애와 속도에 맞는 새로운 방식을 찾으며 스스로가 전문가가 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우리는 기존의 연극을 만들어내는 방식 안에서 매일 우리에게 맞는 몸짓과 대사 전달 방식을 찾아야 했다. 또한 배우로서만이 아닌 공연을 만들어내기 위한 전반의 과정을 읽어내고 기획하기에 우리가 가진 경험과 사회적 기반은 너무나 열악함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힘들고 더딘 속도지만, 공연을 만들기 위해 다른 방식을 찾는 것은 비장애인 중심의 사회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우리의 창작과정은 공연만을 만들기 위한 과정일뿐 아니라, 사회가 제한하는 정상적인 몸의 가치에 대한 거부의 몸짓이기도 하다. 결국 예술영역의 주변인으로만 머물던 장애여성이 연극 생산의 주체가 되려고 하는 과정은 정상성 중심의 사회에 대한 도전이며, 변화를 위한 운동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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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장애여성이 만든 공연이 세상과 만난다는 것.

장애여성의 몸과 언어는 그 자체로 전달되지 않고 굴절되거나, 왜곡된다. 그들은 한국말(언어)를 하고 있지만 그것은 어떤 움직임이나 춤으로 보이기도 한다. 또 그들의 말은 언어로써 전달되지 않고, 많은 사회적인 관계와 위치와 편견(긍정적인 편견까지도 포함하는) 끊임없이 작동하여 전혀 다른 말이 되기도 한다. 무대에 섰을 때 역시 무대와 관객사이에선 공연 주제만이 오고가는 것이 아니라, 장애/비장애에 대한 많은 불편하고 복잡한 비언어적이고 보이지 않는 소통들이 오고 간다. 우리는 공연을 하며 새롭게 표현되고 보여지는 우리의 몸을 인식하곤 한다.

무대라는 공간에서 배우라는 이미지는 여전히 정형화된 이미지와 몸을 강요하는 부분이 크다. 공연을 할 수 있는 몸 자체도 정상적인 신체를 상정하고 있거나, 관객 역시 그러한 배우를 상상하고 기대한다. 장애여성 배우의 경우 여성에게 강요되는 정형화된 몸의 기준을 벗어나 있다 라는 억압이 한층 더 복잡하게 작동된다. 따라서 무대 위에서 장애여성 배우는 복잡한 맥락 안에 놓여진 자신의 몸을 경험하며, 넘어서야 하는 편견과 억압에 직면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장애여성 예술인의 삶의 경험을 토대로 새롭게 이야기가 쓰여져야 하는 이유이며, 우리가 공연을 하는 이유이다.

장애를 가진 배우들은 이제 다른 방식으로 보여주길바란다. 이야기의 주인으로 그것을 표현해내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사회와 관객 역시 다른 방식으로 바라볼 준비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준비 속에서 우리가 만든 공연에 대한 냉정한 평가가 있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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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예술.
 

지난 몇 년간 우리는 다양한 관객들을 만나면서 어떻게 해야 우리의 공연을 관객이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지 연구했다. 그래서 우리의 특수한 경험과 입장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내야 보편성을 획득해야할 수 있을까 고민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보편성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사람들이 전문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심지어 장애인 당사자들도)의 함정은 무엇일까? ‘전문성이라는 말의 전제는 비장애인만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을 하고자하는 마음과 그것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의 결과물로 자신만의 독창적인 어떤 것을 창작하고 있느냐에 초점이 맞추어져야할 것이다. 장애로 인해서 경험하는 일상이 어떤 고민과 과정을 거쳐서 표현되는지, 그리고 세상과 어떻게 소통되는지에 대해서 이야기해야한다는 것이다. 마치 장애인이 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과/ 장애인과/ 장애인 예술과/ 그것을 바라보는 대중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처럼 이 문제를 다룰 것이 아니라 통합적 관점에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의 예술을 접근해야 한다. 그리고 장애를 가진 예술인들은 비장애인처럼의 인정이 아니라, 우리의 예술이 어떠한 정치적/미학적/구조적/신체적 특징을 가지는지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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