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고등법원의 트랜스젠더 난민인정 판결을 환영한다.>
– 앞으로 더욱더 체계적이고 원칙에 기반한 난민심사를 통해 난민인정의 폭을 넓혀나가야 한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18일, 행정법원이 2019년 3월 15일에 판결한 난민불인정처분을 취소하였다. 이번 사건의 당사자인 A씨는 본국에서 트랜스젠더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겪은 박해를 피해 한국으로 와서 난민신청을 하였다. 한국의 고등법원은 성(별) 정체성에 대한 박해를 근거로 난민을 인정한 첫번째 판결을 내렸다.
서울고등법원은 A씨의 난민신청을 받아들인 근거로서 유엔난민기구가 난민협약 및 난민의정서의 해석지침으로 발행한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9호: 난민의 지위에 관한 1951년 협약 제1조 제A항 제2호 및 1967년 의정서의 맥락에서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에 근거한 난민 신청]을 참고하여 난민 인정 요건을 판단하였다고 밝혔다.
그 지침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성적 지향과 구별되는 성정체성이란 “개개인이 깊이 느끼고 있는 내적이고 개인적인 젠더에 대한 경험이며, 이는 타고난 성별과 일치할 수도,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 여기에는 신체에 대한 개인적인 인식 및 의상, 말투, 행동양식 등 젠더의 표현이 포함된다. ✔️트랜스젠더는 남성 혹은 여성이라는 이분법적 통념에 속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 규범과 가치를 위협하는 존재로 인식될 수 있다. 이와 같은 비순응성 때문에 트랜스젠더는 위해에 노출된다. 트랜스젠더는 사회에서 매우 소외된 처지에 놓이기 쉬우며 난민신청 과정에서 이들이 겪은 심각한 수준의 신체적, 심리적 또는 성적 폭력의 경험이 드러나기도 한다. 스스로 밝히는 성별과 외모가 공식적 문서와 신분증에 나온 법적인 성별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트랜스젠더는 특히 위험에 노출된다. ✔️다수의 국가에서 채택한 입장을 통해 확인되는 바와 같이 성적 지향 또는 성 정체성은 선천적이거나 바꿀 수 없는, 또는 포기하거나 숨기도록 강요받아서는 안되는 정체성의 핵심적인 요소에 해당한다. ✔️모든 사람은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과 관련된 박해를 포함하여, 어떤 박해를 피해 타국에서 비호를 구하고 향유할 권리가 있다. 국가는 어떤 사람이 어떤 국가에서 성적 지향이나 성 정체성을 근거로 고문, 박해, 기타 잔혹하거나 비인도적이며 굴욕적인 대우나 처벌에 대한 충분한 근거있는 두려움을 직면할 가능성이 있다면 그 사람을 해당 국가로 이주, 추방, 인도해서는 안 된다. ✔️성 정체성만을 이유로 어떤 사람을 정신과 보호시설 등에 감금하는 것은 임의적인 자유의 박탈을 금지하는 국제 규약에 대한 위반이며, 일반적으로 박해에 해당될 수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A가 태어나 살아왔던 본국에 일반법원이 아닌 종교법원이 별도로 존재하여 종교적 교리를 강제하는 힘이 강하고, 일반형법에서도 ‘비자연적인 성관계’, ‘남성간의 성관계’ 등을 금지하는 조항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또한 트랜스젠더를 공공장소에서 부적절한 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기소하며 구금시설에서 극심한 인권침해가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A씨는 본국에서 신분과 맞지 않는 여성의 복장을 입었다는 이유로 체포되고 기소되었으며 벌금 및 구금형을 받은 사실이 있었다. 또한 재판부는 현재까지 이러한 본국의 상황이 개선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러한 점에 비추어 볼 때 ‘국적국으로 돌아갔을 때 박해에 노출될 수도 있다는 충분한 근거있는 공포’를 가졌다고 인정한 것이다.
이번 판결은 몇가지 과제를 남긴다.
첫째, 여전히 박해에 대한 공식적 증거를 가진 경우에 한해 난민인정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이번 판결에서도 형사판결문을 소지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대부분의 난민은 급히 피신하느라 증거를 가져오지 못하거나, 종교경찰이나 국가권력이 아닌 가족 등 사인에 의한 박해를 겪는 경우 등 물증을 제시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또한 난민협약과 난민법에서 규정하는 박해는 국가정황보고서를 통해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는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형사재판에 준하는 증거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이는 난민인정 판결을 수사로 착각하는 오류이다. 난민심사와 인정기준을 공문서의 유무 여부로 한정하지 않아야 하며, 의심스러울 경우 신청자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해석하는 선의의 해석 원칙을 적용하여 신청자의 입증책임을 낮추어야 한다.
둘째, 또한 앞으로는 2016년 대법원의 성소수자 난민 인정 판단기준이 된 두 가지 요소가 바뀌어야 한다. 당시 대법원은 과거의 박해경험과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의 은폐 가능성을 판단 기준으로 삼았다. 하지만 과거의 박해 유무는 1951년 협약에 따라 난민지위를 인정받기 위한 선결 조건이 아니다. 난민협약이 규정하는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다는 충분한 이유가 있는 공포”란 미래에 박해 받을 위험에 대한 공포로 해석되어야 하고 그 해석의 근거가 과거 박해 경험 유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또한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은폐하거나 “억제”함으로써 박해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제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 자체가 난민협약이 보장하는 보호를 포기하도록 강요받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이러한 좁은 해석으로 인해서 한국의 많은 성소수자 난민이 결국 인정받지 못하고 또 다른 비호국을 찾아 목숨을 건 길을 떠나야 한다.
셋째, 난민심사와 난민인정 재판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국내 법제 또한 정비될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성소수자가 난민으로서 겪을 수 있는 박해에 관한 유엔난민기구 국제적 보호에 관한 지침 제9호뿐만 아니라, 계속해서 발전하고 있는 성소수자의 인권에 대한 국제기준을 공식적으로 천명하여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적용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유엔 인권체계에서도 지속적으로 강조하듯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을 차별금지의 대상으로 명시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해야 한다. 성적 지향과 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금지를 분명히 해야만 난민이 이후 한국사회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다. 그런 사회가 한국에서 태어나 살아가고 있는 성소수자에게도 살아갈 만한 사회다.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를 비롯해 이 논평을 발표하는 단체들은 한국사회에서 살아가는 모든 성소수자가 차별과 모욕, 폭력과 박해로부터 안전하게 그리고 존중받으며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목표에 근거하여 난민심사 기준과 방식의 변화를 계속 요구할 것이다. 또한 A님을 비롯하여 성소수자가 삶을 실질적으로 존중받기 위해서 필요한 평등한 권리를 쟁취하기 위한 노동권, 교육권, 건강권, 성과 재생산권 등을 확보하기 위해서 계속 연대하고 싸워나갈 것이다.
2022년 10월 21일
소수자난민인권네트워크(공익인권법재단 공감,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난민인권센터,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및 개인 활동가들), (주)상담사그룹서로오롯, 공익법센터 어필, 광주인권지기 활짝, 국제민주연대, 난민재판응원단, 노들장애학궁리소, 다양성을 향한 지속가능한 움직임 다움, 대한불교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비움실천행동, 성노동자해방행동 주홍빛연대 차차, 성별이분법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모임 여행자, 성소수자 대학원생/신진연구자 네트워크, 성소수자부모모임,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심리상담하는 성소수자 네트워크 이음, 아시아평화를향한이주MAP, 언니네트워크, 외국인보호소폐지를위한물결InternationalWaters31, 원곡법률사무소, 이주노동자평등연대(건강권 실현을 위한 보건의료단체연합(건강권 실현을 위한 행동하는 간호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약사회, 건강사회를 위한 치과의사회, 노동건강연대,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참의료실현청년한의사회), 공공운수노조사회복지지부 이주여성조합원모임, 노동당, 노동사회과학연구소, 노동전선, 녹색당, 대한불교조계종사회노동위원회, 성공회 용산나눔의집, 민변노동위원회, 사회진보연대, 이주노동자노동조합(MTU), (사)이주노동희망센터, 이주노동자운동후원회, 이주민센터 친구,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전국학생행진, 지구인의정류장, 천주교인권위원회, 필리핀공동체카사마코,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화여대 성소수자인권운동모임 변태소녀하늘을날다, 인권교육센터들,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인권운동사랑방, 장애여성공감, 제주권역퀴어커뮤니티 퀴여움QUTE!, 종로유흥종사자지원협의회, 청소년 트랜스젠더 인권모임 튤립연대,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한국농인LGBT 설립준비위원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한국장애포럼, 한국청소년청년감염인커뮤니티알,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홈리스행동, 화성외국인보호소방문시민모임마중, FIPS 피스모모평화페미니즘연구소, Sweet Potato Productions (총 40개 단체와 네트워크)